-제3장: 봉희의 가족 -
봉희 가족은 특별하다. 봉희의 아버지는 한 명이었지만 어머니는 두명이었다.
봉희에게 엄마가 두 명인 사연은 봉희가 사는 마을 사람들은 다 안다. 서신읍에서 최고의 미인으로 꼽히는 큰 엄마는 아버지와 18살이라는 꼬다운 나이에 양반집의 맡며느리로 시집을 왔지만 자식을 낳지 못한 결함을 가진 여자였다. 1950년대 후반에 자식을 낳지 못하는 여인은 아무리 조강지처라지만 그 시절에는 조강지처라는라는 자리에 걸맞는 자격을 얻지 못하였다.
뼈대 깊은 양반집이었던 송씨 집안의 장손이었던 봉희의 아버지는 가족의 대를 이어야한다는 송씨 집안의 어르신들의 성화를 이기지 못했다. 송씨 집안의 어르신들은 용한 중매쟁이를 소개했고, 중매쟁이로부터 소개받은 사람이 봉희 어머니였다. 봉희 어머니는 16살에 송씨 집안으로 두 번째 부인으로 오게되었다. 봉희의 친어머니는 정읍 칠보면에서 일본으로 유학까지 하셨던 엘리트의 외할아버지 맏딸로 태어났다. 부유했던 집안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동경에서 돌아온 후에 외할아버지의 도박으로 가세를 급격히 기울어졌다. 봉희 어머니 밑으로 네명의 동생이 있었고, 밭 두마지기를 가족들에게 남겨두고 송씨집안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봉희 어머니는 엘리트였던 외할아버지로부터 매로 맞으면서 한글을 깨우치려 노력하였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봉희 어머니는 끝내는 한글을 읽지 못하였다고 한다. 동경에서 유학까지 했던 봉희의 외할아버지는 큰딸이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을 몹시도 창피해하셨고, 외할버지에게 글을 읽지 못하는 봉희 어머니는 그의 자존심의 스크래치였을 것이다. 봉희 어머니는 송씨 집안으로 시집 온 후로 외할아버지를 찾아뵌 적이 없었다고 한다. 봉희 어머니는 알고 있었다. 외할버지부터 봉희 어머니는 숨기고 싶은 자식이었던 것을 말이다.
봉희 어머니는 자신이 한글을 깨우치지 못해 자식을 낳지 못하는 큰 어머니를 대신하여 송씨 집안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고 봉희 언니, 오빠들에게 이야기 하곤 했다. 하지만 봉희 어머니는 글자만 읽지 못했지, 대가족의 살림살이를 도맡아 할 정도로 영특한 여인이었다. 돈 계산도 뛰어났고, 봉희 아버지의 벽돌공장의 인부들의 월급 계산도 잘했다. 반찬 솜씨도 뛰어났다. 하는 일마다 똑부러져 봉희 어머니는 마을에서 유명한 살림꾼으로 이름을 날렸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봉희 어머니에게 찾아와 반찬 담그는 법부터 바람피우는 남편을 집에 잡아두는 방법까지 봉희 어머니로부터 해답을 얻기 위해 찾아오곤 했다. 서신읍 마을 아주머니들에게 봉희네 부엌은 사랑방이 되었고, 마을의 아주머니들에게 호탕한 웃음과 걸죽한 큰 목소리, 큰 손으로 못하는 일이 없는 봉희 어머니는 서신읍의 아낙네들에게는 진주같은 존재였다.
봉희 어머니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큰 어머니의 조강지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지 못하는 공부를 자녀들에게 시키는 것이었다. 글자도 가르쳐주고,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을 자신이 낳은 자식들과 이야기 나누는 일이었다. 마을에서는 대장부 여인으로 통하였지만 자식들에게 한글도 가르쳐주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한스러웠다. 봉희의 언니, 오빠들은 학교 공부에 특출한 성적을 내지는 못했지만 봉희 어머니의 가슴 깊이 있었던 두려움. 혹여나 자신을 닮아 글자를 못 읽는 자식이 있을까 하는 불안감을 씻어주었다. 봉희 어머니는 자식들의 책 읽는 소리를 듣고만 있어도 행복이라는 글자를 읽지도 쓰지도 못했지만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