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쓴 맛을 본 날

제 4장: 받아쓰기 성적표와 커피

봉희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된지도 벌써 세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시간표에 빠지지 않는 국어시간은 봉희에게 날이갈수록 공포의 시간이었다. 국어시간만 되면 배도 아프고 머리도 아파왔다. 봉희 담임 선생님은 국어책 진도를 나아가면서 더 복잡하고 받침까지 있는 단어들로 받아쓰기를 시작한다. 봉희의 받아쓰기 실력은 좀처럼 좋아지지 않는다. 봉희 집에서 봉희의 받아쓰기나 학교 공부에 관심 있는 가족은 없었다. 봉희 아버지는 이른 새벽에 벽돌공장으로 출근하시고 큰 어머니는 곱게 화장하고 친구들을 만나러 다니셨고, 봉희 어머니는 매일 부엌에서 벽돌공장 인부들의 삼시세끼를 차려주고 난 후에도 가족들의 식사, 빨래, 청소 등의 집안일에 종일 바쁘셨다. 봉희 어머니는 봉희가 학교에서 선생님이 봉희를 잘 가르쳐줄 거라고 믿고 있었다. 봉희는 어머니를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아 학교에서의 받아쓰기 성적을 어머니에게 보여준 적이 없었다.

어느 날 점심 시간에 봉희의 받아쓰기 점수가 20점 이상을 넘을 낌새가 전혀 없음을 눈치챈 담임선생님은 봉희를 책상 앞으로 부르신다.

“봉희야, 1학년 들어온지 세 달이 다 되어가는데 너의 받아쓰기 점수가 좋아지지 않는구나!”

“봉희야. 혹시 엄마가 집에서 한글 안 가르쳐주니?”라고 하신다.

“ 네. 엄마는 항상 빠쁘셔요”

“ 그래도 봉희야. 지금 글자를 웬만큼 익혀야지 다른 공부도 따라갈 수 있단다.

봉희야, 내일 엄마 학교로 오시라고 해라. 선생님이 엄마랑 이야기를 조금 해야

할 것 같다. ”

“ 선생님. 엄마 바쁘신데요.”

“ 그래도 너의 받아쓰기 점수를 아시면 학교를 오셔야할 거야. 그리고 내일 어머

니 오실 때 커피 타가지고 오셨으면 좋겠다. ”

“ 네. 선생님”

그런데 선생님과 대화의 마지막 단어인‘커피’라는 것이 봉희의 가슴에 꽂혔다. ‘ 커피가 뭐지?’ 봉희는 커피를 타가지고 오라는 선생님의 말에 ‘커피’라는 단어를 잃어버지지 않으려고 봉희 입안에서는‘커피, 커피, 커피....’라는 단어를 계속 중얼거린다. 봉희가 모내기를 마친 논두렁을 근심에 찬 얼굴을 하고 걸었던 이유는 담임선생님이 어머니를 학교로 오라는 것과 커피라는 것을 가져오라는 말을 듣고 나서였다.

‘ 엄마한테 어떻게 말할까? ’

‘ 어떤 엄마한테 말해야 하나?’

‘ 도대체 커피라는 것을 어떻게 타가지고 와야하나?’

‘ 언니, 오빠한테 혼날 것 같은데 어떻게 말하지 ’

오만가지 생각이 봉희 머리 속에 교차한다. 논길을 건너면 저 멀리 벽돌이 높게 쌓여져있는 봉희 집이 다가올수록 봉희 마음은 높에 쌓아올려진 벽돌처럼 단단해지고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봉희는 어머니에게 100점 만점의 받아쓰기 점수에서 10점, 20점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보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커피’라는 것을 타가지고 오라는 말이 더욱 말하기 어려웠다.

‘ 우리 집에 커피라는 것도 없는데 그것을 엄마에게 어떻게 말하지?’ 봉희는 생각한다. ‘엄마는 분명히 커피라는 것도 모를텐데. 집에 돈도 없어서 커피를 사지도 못하는데 커피를 어디서 구해나?’봉희는 걱정으로 울음도 나오지도 않았다.

무거운 책가방을 등에 지고 집에 도착해서 봉희는 어머니가 계시는 간이식 부엌으로 들어간다. 봉희 어머니는 놋솥단지에서 하얀 밥을 큰 양동이에 푸고 계신다. 벽돌공장 인부들 새참 준비를 하고 계시는 중이시다.

“ 엄마! 학교 다녀왔습니다. ”

“ 우리 막내왔어. 가방 큰 방에 갔다 놓고 와라. 엄마가 국수 말아줄게”

“ 엄마. 선생님이 엄마 학교로 오래”

“ 뭐라고? 무슨 말이야?”

“ 엄마, 학교 담임선생님이 내일 엄마 학교로 오래요. 엄마 내가 받아쓰기를

너무 못 한데. 그리고 학교 올 때 커피 타가지고 오래”

“ 커피? 그게 뭐냐?”

“ 나도 몰라. 아무튼 내일 엄마 올 때 커피 타가지고 학교로 오래. 선생님이 ”

봉희는 부엌에서 나와 큰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큰 어머니는 다행히 집에 안 계셨다. 봉희 큰 어머니가 집에 계셨으면‘공부도 못하는 애가 태어났다느니, 가시내인 막내는 낳지 말자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니’하면서 봉희 어머니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셨을 것이다. 부엌에서 어머니가 작은 방에 있는 봉희의 큰 오빠를 부른다. 어머니가 봉희의 큰 오빠를 부르는 소리에 봉희도 조용히 큰 방에서 나온다.

“ 민석아, 잠깐 나와봐라. 엄마가 할 이야기가 있다. ”. 봉희 큰 오빠가 작은 방 의 문을 밀고 부엌으로 연결된 툇마루에 앉는 소리가 들린다.

“ 왜요? ”

“ 민석아. 커피가 뭐냐?. 막내 학교 담임선생님이 커피를 타가지고 학교로 오라고 했단다. ”

“ 엄마를요? 왜 오라고 하셨데요. ”

“ 그게 막내가 받아쓰기를 잘 못했는지 받아쓰기 성적이 낮은가보더라. 선생님이 그래서 나를 부른 것

같어”

“ 그 가시내는 공부도 안하고 뭐했데요.”

“ 막내한테 뭐라고 하지 마라. 아무튼 커피라는 게 뭐냐? 처음 들어본다. 엄마는 ”

“ 어머니, 커피는 미국에서 들어온 음료인데요. 커피, 프리마, 설탕을 비율에 맞게 넣어서 마시는 음료예요. 커피, 프리마, 설탕은 시내에 있는 마트에서 사면되요.”

“ 그래. 다행이다. 그러면 커피, 프리마, 설탕만 사서 가지고 가면 되겠네”

“ 어머니. 커피는 따뜻하게 마셔야하는 음료라서 보온병도 사야해요. ”

“ 보온병? 보온병까지 사려면 엄마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 안될 것 같은데..” 봉희 어머니는 한숨을 지으신다.

“ 알겠다. 우선 엄마가 보온병 사 올 돈 구해올테니 네가 자전거 타고 시내

가서 커피 재료와 보온병 좀 사와라”

“ 알았어요. 어머니”

부엌 툇마늘에서 봉희는 어머니와 큰 오빠가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었다. 봉희

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큰 방으로 건너가 TV를 켠다. 갑자기 큰 오빠가 큰방 문을 활짝 열고 봉희에게 소리를 지른다.

“ 이 가시내야! 공부도 안하고 뭐했어? 앞으로 받아쓰기 공책 10페이지 채워서 매일 나에게 검사 맞도록 해. 공부를 못하니 어머니가 고생하시쟎아.”

“ 알았어. 오빠 ”

“ 가시내야, 너가 공부를 안하니 돈 들어갈 일도 아닌데 엄마가 돈 빌리러 옆집 아주머니한테 갔쟎아. 얼마나 멍청하면 글자도 모르냐 ” 하면서 봉희에게 화를 낸다.

봉희는 넉넉하지도 않은 살림에 엄마가 커피와 보온병을 사려고 옆집 아주머니에게 돈 빌리거 가는 상황보다도 큰 오빠의 ‘멍청이’이라는 말이 서럽다. 봉희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봉희는 생각한다.

‘ 큰 엄마가 자주 하는 말처럼 나는 우리 집에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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