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어머니와 커피
그 다음날 청소시간이 마무리 될 쯤 봉희 엄마는 한복을 곱게 입고 안 하던 화장을 하시고 1학년 2반 교실로 오셨다. 밭농사로 검게 그으른 얼굴에 분칠을 해서인지 봉희는 엄마를 보자마자 속으로 생각한다.
’차라리 화장을 하지 말고 오지 . 엄마 얼굴이 너무 하얗게 분칠해서 강시 같다.‘라는 생각을 한다.
봉희 엄마가 교실 앞문을 열고 들어오자, 담임선생님은 간단하게 1학년 2반 학생들에게 종례를 해주신다. 교실에는 봉희와 봉희 엄마만 남아 있다. 봉희 담임선생님은 교탁 쪽으로 봉희 어머니로 모시고 학생 의자 2개를 가지고 온다. 봉희 어머니와 봉희를 앉도록 권한다.
봉희 어머니는 담임선생님께 인사를 마치고 커피 탄 보온병을 선생님 앞으로 내민다.
" 선생님. 봉희 가르치시느라고 고생이 많으십니다. 일찍 찾아뵈어야했는데 늦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커피 좋아하신다고 들어서 커피를 조금 타가지고 왔습니다."
" 아. 어머니! 힘드시게 이렇게 커피를 타가지고 오셨어요. 제가 어제는 봉희에게 장난삼아 커피 타오라고 한 건데. 어머님이 이렇게 커피 타가지고 오실 줄 몰랐습니다."
봉희는 분명하게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커피를 타가지고 오라고” 말한 것을 들었다. 담임선생님의 말은 장난이 아니었다. 봉희는 분명하게 들었다.
봉희는 갑자기 알 수 없는 화가 밀려왔다. 선생님의 장난스러운 말이었던 커피 타오라는 말로 인해 지난 밤 봉희 집은 재난 상태가 된 것이다.
봉희는 담임선생님의 왼쪽 빰에 나 있는 점 위에 있는 털을 확 뽑아버리고 싶었다.
봉희는 속으로 생각했다. 선생님은 함부로 장난삼아서 말을 해서는 안되는 거였다.
’커피를 좋아한다느니, 커피를 타 가지고 왔으면 좋겠다느니‘같은 말을 해서는 안되는 거였다고 봉희는 그 순간 생각했다.
담임선생님은 봉희 어머니가 보온병에 커피를 보시고 옆반으로 가셔서 1학년 3반 선생님을 모시고 오신다. 그리고 보온병에서 따끈 따끈한 커피 한잔을 옆반 선생님에게 대접하신다.
" 어머니, 커피가 달달하니 맛이 있습니다. "
" 네.. 다행입니다."
" 어머니를 오늘 학교로 오시라고 한 이유는 1학년 학생들은 이맘때쯤이면 대부분 한글을 모두 익힙니다. 그런데 봉희는 아직도 모르는 한글이 많습니다. 받아쓰기 시험을 보면 1개 혹은 2개만 정답을 맞춥니다. 그래서 어머님 아무래도 가정에서 한글을 좀 가르쳐주셨으면 합니다. " 담임선생님이 봉희 어머님께 말한다.
담임선생님은 커피를 마시면서 “ 어머님이 한글을 모르시는 건 아니시죠?"
라면서 봉희 어머님께 웃어보이신다.
봉희 어머니는 담임선생님이 이야기하시는 것을 묵묵히 듣고 있는다.
봉희어머니 바로 옆에 앉아있었던 봉희는 어머니의 가빠지는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봉희 어머니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갑자기 소리를 높여 담임선생님께 큰 소리를 지른다.
" 선생님. 저 솔직히 한글을 쓰지도 못하고 읽지도 못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살아가는데 크게 문제는 없습니다. 봉희가 배우는게 느린 것 같습니다. 이런 학생들을 가르치는 방법을 찾는게 선생님이 하셔야하는 일 아닙니까?"
화난 어조와 가쁜 숨을 한번 가다듬으시고 봉희 어머니는 다시 한번 봉희 담임선생님께 소리를 높이면서 말한다.
" 선생님은 저의 딸아이처럼 공부 못하는 아이를 어떻게 가르쳐야하는지 공부하신분 아니신가요? 봉희가 아직까지 한글을 깨우치지 못하는 것은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겁니다. 선생님이 그 이유를 찾아주시고 한글을 익힐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선생님이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에게 커피 타오라는 말만 하지 마시고요. ”
봉희 어머니는 자신 옆에 앉아 있는 봉희 손을 낚아채고 의자에서 일어나게 손을 끌어당긴다.
" 그리고 선생님.. 학생에게 커피 타오라고 앞으로 시키지 마세요. "
말을 마치고 봉희 어머니는 보온병을 챙기시고 봉희를 데리고 교실문을 박차고 나온다.
담임선생님과 옆반 선생님은 들고 있던 커피잔을 조용히 내려 놓으면서 아무 말도 못하시고 봉희와 봉희 어머니가 교실 문을 나가는 뒷모습을 묵묵히 보고 계신다.
봉희는 엄마가 자신의 손을 너무 세게 잡아서 아팠지만 아프다는 소리를 하지 못한다. 어머니의 손이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으로 보아 어머니의 마음이 봉희의 손보다 더 아플거라는 것을 어린 봉희는 느끼고 있었다.
봉희 엄마는 집으로 가는 논두렁 길을 한참 지날 때까지 봉희 손을 놓지 않았다.
논두렁 길이 좁아서 한 사람 뿐이 걷지 못하는 좁은 논두렁길로 접어들 때 봉희 엄마는 그제야 봉희의 손을 놓아주었다. 조용히 봉희에게 말하신다.
" 봉희야, 공부 좀 못해도 된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싸우지 않고 자라면 된다. 봉희가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한 거다. 기죽지 말고 학교 열심히 다니고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면 된다.”
봉희는 왠지 모르게 어머니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봉희와 봉희 어머니는 논길을 지나 신작로 길을 조용히 걷는다.
여름이 들어서는 신작로 길은 따사로운 햇살이 반사되어 두 사람 얼굴을 달아오르게 만든다. 봉희는 엄마의 얼굴을 쳐다본다. 봉희 엄마의 이미와 눈 밑으로 하얀 물방울이 맺혀있다. 날씨가 더워서 땀인지 눈물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지만 봉희는 알고 있었다. 엄마의 얼굴에 흐르는 것은 눈물이라는 것을 말이다.
여름 하늘 아래 태양 빛의 따스한 햇살, 두 모녀의 발자국 소리 위에 리듬을 맞추어 들리는 보온병에 남은 커피의 출렁이는 소리가 구슬프게 들리는 오후이다.
봉희 엄마는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 봉희 언니와 오빠들을 모두 소집시킨다.
“ 오늘부터 한 명씩 돌아가면서 봉희에게 한글을 가르쳐라. 봉희까지 엄마처럼 글을 읽지 못하게 할 수는 없다. 봉희가 앞으로 글을 잘 읽고 못 읽고는 모두 너희들에게 달렸다. 그러니 너희들이 알아서 막내에게 한글 잘 가르쳐라”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큰 방에서 큰 오빠, 큰 언니, 막내 오빠의 투털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막내 저것이 한글 못 읽는게 우리 탓이야. 멍청해서 그렇지 ”
“나 공부할 시간도 없는데 봉희를 언제 가르치냐고. 그리고 가르친다고 막내가 한글을 잘 읽을지 모르겠네”
큰 방옆 툇마루에 앉아 있던 봉희는 엄마의 이야기, 언니와 오빠들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는다.
" 나라는 애는 정말 멍청한 아이인가. 나는 우리 식구들에게 쓸모없는 아이인가’
라는 생각이 드는 봉희 눈에 갑자기 엄마가 커피를 타가지고 왔던 보온병이 보인다. 봉희는 가족들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보다 보온병에 든 커피 맛이 갑자기 궁금해진다.
" 커피라는 것이 무엇이길래 어른들이 좋아할까?‘
봉희는 키발로 부엌 찬장에서 큰 공기사발을 가지고 온다.
보온병을 열어보았다. 아직 따뜻함을 품을 있는 갈색액체가 있었다.
봉희는 사발에 갈색을 띄고 있는 커피를 따른다.
큰 방에서는 오빠, 언니들은 봉희 엄마에게 막내에게 한글을 가르칠 시간이 없다느니, 막내는 가르쳐도 한글을 모를 것이라느니, 자신들이 왜 막내에게 한글을 가르쳐야하는지 잘 모르겠다면서 엄마에게 짜증을 내고 있다. 그리고 누가 한글을 가르칠 것인지 소리높여 싸우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봉희는 큰 공기 사발에 갈색을 띄고 있는 커피를 따른다. 커피라는 것을 한 모금 마셔본다. 봉희는 처음에는 약간 쓴 맛에 얼굴을 찡그린다. 조금 후에 혀끝으로 전해오는 맛은 달달했다. 한 모금 더 마셔본다.
이번에는 봉희의 입안에서는 향긋하고 씁쓸한 것이 가득 채웠다.
봉희 자신도 모르게 입안에서 튀어나오는 말은 " 맛있다." 였다.
큰 방에서 아직도 언니, 오빠뿐 아니라 가족들이 모여서 막내 봉희의 한글 공부를 누가 가르칠 것인지, 언제 가르칠인지 그리고 봉희가 너무 멍청해서 한글을 가르쳐도 소용없다는 열띈 토론의 장이 열리고 있다.
봉희는 가족들의 투덜거리는 배경음에 맞추어 담임선생님이 먹다 남긴 보온병의 커피를 공기 사발로 벌써 네잔째 마시고 있다.
보온병의 남은 커피를 다 마셔 배가 불러온 봉희는 큰 방 툇마루에 누워 별빛이 반짝이는 하늘을 보면서 생각한다. " 한글 좀 못 읽으면 어때!. 나는 커피 만드는 사람이 되어서 행복한 맛을 전하는 사람이 될거야" 라는 꿈을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