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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Mar 03. 2020

황후가 사랑한 보랏빛 채소절임

가지 장아찌 시바즈케 이야기

'한복 입은 이영애'로 승부를 걸었다 실패한 '사임당 빛의 일기'란 드라마.

개연성 떨어지는 스토리 등 문제 많은 작품이긴 했지만 적어도 비주얼 면에서는 나쁘지 않았다.

특히 사임당이 보랏빛 치마로 단장하고 중부학당 학부모 모임에 나타나는 장면은 인상적인 편.

그녀의 등장에 엄마들은 어디 주제넘게 왕비에게나 허용되는 자색 옷을 입었냐며 수근댄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라색은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다. 비운의 정순왕후 송씨가 염색 일을 하며

어렵게 살아갈 때 우물에 담근 천이 고운 보랏빛으로 변했다는 야사도 있다.

다만 이 보라색이 유일하게 인기가 없는 분야가 바로 음식이다. 식욕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다보니..

디저트를 제외한다면 일부러 보라색을 낸 음식은 드문 편인데

몇 안되는 예외 중 하나 일본식 가지절임 '시바즈케'가 있다.

사실 가지 자체만 장아찌로 담그면 나중에는 색이 칙칙한 갈색으로 변한다.  

가지에 고운 보랏빛을 내주는 재료는 차조기라고도 불리는 적자소엽이다.

적자소엽은 우메보시에도 쓰이며 색을 내는 것 외에 재료에 향을 입히고 살균효과도 있다.

이 시바즈케가 태어난 고향은 품질 좋은 야채로 유명한 교토 인근, 오오하라라는 곳이다.

채소의 고장답게 교토에서는 다양한 쓰게모노(절임)를 만날 수 있다.

소금만으로 절인 심플한 것부터 쌀겨를 이용한 누카즈케, 술지게미 절임 등등등....

시바즈케의 기원은 12세기 헤이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세도가였던 가마쿠라의 미나모토씨와 간사이의 타이라씨 두 가문은 덴노 옹립 문제로

무력 충돌을 빚는데 이것이 바로 '헤이케 모노가타리'의 배경인 겐페이 전쟁이다.

전쟁은 미나모토가의 승리로 끝났고, 안도쿠 덴노의 모후이자 타이라 가문 출신인 토쿠코는 자결을 시도한다.

하지만 자살 시도는 실패하고 미나모토 가에서는 그녀를 왕궁 동쪽 요시다로 옮겨 살게 했다.

모든 것을 잃은 토쿠코는 오오하라의 비구니 사찰인 잣코인으로 들어가 여생을 보냈다.

산골짜기 오오하라 주민들은 갑작스럽게 전 황후가 와버리니 대접할 것이 마땅치 않았는데...

평범한 장아찌를 좀 더 고급스러워 보이도록 자소엽으로 물을 들인 게 바로 시바즈케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야채 중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가지인데 왠지 일본에선 고급진 이미지인지,

"가을 가지는 며느리 먹이지 마라"는 속담이 있다고...(씨가 적은 것도 이유라고 하는데 과연..)  

마트에서도 파는 우메보시와는 달리 시바즈케는 아직 한국인에게 마이너한 반찬이다.

다만 일본 식재료 전문점에 가면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대략 500g에 4000~500원)에 구매할 수 있다.

시바즈케는 아작아작한 식감이 살아 있어 가지의 흐물거림을 싫어하는 이에게도 추천한다.

여름철 입맛 없을때 물 말아먹는 밥반찬으로도 제격이다. 특유의 향이 더위로 잃은 식욕을 되살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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