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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Jul 29. 2024

서해바다 보며 조개구이 먹방

안산 대부도 조개구이

간혹가다 어떤 음식에 매우 강렬한 끌림을 느낄 때가 있다. 특정음식에 대한 욕구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주로 흔히 접할 수 있는 메뉴가 아닌 경우 그 '집착'이 더욱 심해지는 것 같다. 나의 경우에는 조개구이가 그랬다. 일단 조개구이는 '혼밥'이 불가하다. 양이 좀 적은 가게를 골라 혼자 간다고 쳐도 가격이 부담된다. 그런데 왜 혼밥을 해야 하냐고? 내 배우자의 식성 때문이다.


연애 초기에 남자들은 보통 여친이 가자고 하는 곳을 군말없이 따라가게 마련이다. 남편도 대부분 그랬지만 내가 조개구이집을 제안했을 때는 단칼에 거절해서 꽤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알고보니 생선회 이외에 해산물 종류를 그닥 즐기지 않고, 향이 강한 굴이나 조개, 그밖에 껍데기 까기 힘든 갑각류도 안먹는다. (솔직히 이건 귀찮아서란 의심이 강하게 들지만 본인은 부인함)


아무튼 그 당시 종종 나와 함께 조개를 먹어준 이가 베프 S양이다(첫 번째 글에 등장). 집이 먼 이 친구를 위해 나는 기꺼이 안산으로 다리품을 팔았다. 그만큼 조개구이가 먹고싶었던 것도 있지만 바다를 보면서 신선한 조개를 먹는 즐거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탁 트인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우리가 찾아간 식당은 대부도 방아머리해변 부근이다. 

대학때 처음 찾아간(가족들과 간 적이 있었겠지만 생각이 안난다) 서해바다는 뭔가 낯선 모습이었다. 동해안의 하얀 백사장 대신 개펄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던 것. 아무튼 다채로운 바다생물들이 공존하는 이곳에는 갑각류와 조개 등 맛있는 먹거리가 가득이다. 물론 갯벌에서 직접 캐는 건 아니고 수산물 공판장에서 '떼 오는' 해물들이긴 하지만 기분을 내기엔 충분하다.  횟집과 조개구이집이 줄지어 있어 선택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데 가능하면 가격을 눈에 띄게 적어놓는 곳을 찾아가는게 나만의 요령이다. 이날 방문한 사또조개구이는 조개 외에 회와 해물 정식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우선 싱싱한 해산물들이 상에 올랐다. 꽃처럼 칼집을 낸 전복과 도톰한 관자, 바다향이 물씬 나는 멍게, 해삼과 뿔소라가 식욕을 돋운다. 이럴때 반주 한잔은 국롤!

요렇게 반찬...이라기보단 간단한 안주 메뉴도 제공된다. 마요네즈를 넣고 그라탕 비스무리하게 요리한 조개와 소금에 볶은 은행 등을 소량씩 가져다준다. 

옵션이긴 하지만 그래도 바다를 보며 싱싱한 회 한점을 안먹어주면 서운하다. 

드디어 등장한 조개접시! 치즈러버인 나는 조개 위 뿌려진 치즈에 먼저 눈길이 갔다. 비린맛을 덜어주는 소량의 양파도 추가됨. 구성은 키조개와 가리비, 개조개(종종 대합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대합의 크기는 이보다 훨 작아서 모시조개랑 비슷하다. 뒤로 동죽, 백합, 피조개 등도 얼핏 보인다. 

잘개 썬 키조개살은 치즈, 고추장 양념과 함께 지글지글 구워준다. 잘 녹은 콘치즈에 조개살을 찍어먹으면 조개의 감칠맛과 고소한 치즈가 입안을 행복하게 한다. 사실 조개구이의 정체성은 조개찜이라고 부르는 게 좀 더 정확할거 같다. 껍데기 위 조개에 열이 가해지면서 육수에 익어가는 것이기 때문. 만약 조갯살을 그냥 직화로 구워버린다면 수분이 마르고 식감도 딱딱해질 것이다. 

추가로 주문한 대하구이. 굵은 소금을 깔고 익힌 대하 머리에서 진한 풍미가 녹아나온다. 껍질을 까다 보면 손에 냄새도 배고 귀찮다는 이들도 많지만 사실 새우맛의 팔할은 머릿속 내장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런 수고 끝에 만나는 통통한 살은 왠지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대부도 사또조개구이

https://place.map.kakao.com/1247294580


조개는 다른 동물에 비해 채집하기가 쉬워 인간이 농사를 짓기 훨씬 전부터 먹어왔던 식량이다. 원시인이 살던 곳에 대량의 조개가 무덤으로 남아 있을 정도. 음식으로서 조개의 진가는 그 육수에 있다. 바다향을 머금은 조개는 각종 국물요리에 감칠맛을 얹어주는 치트키라고 불릴 법하다. 고기육수처럼 무겁지 않고 담백해 누구나 좋아한다. 


참고로 일본 설화 중에는 우리나라 우렁각시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 이름은 하마구리뇨보, 즉 대합아가씨다. 노총각과 살게 된 대합아가씨는 된장국 끓이는 솜씨가 일품이었는데, 어느날 그녀가 식사준비 하는 모습을 훔쳐본 노총각은 맛있는 된장국 재료가 무엇이었는지 알고 멘붕한다.(직접 언급하기는 좀 그렇다는...)


조개 요리 하면 국 외에 술찜이 있고, 벨기에 사람들은 홍합에 와인과 토마토 소스 등을 넣어 먹는다. 이탈리아의 가난한 어부들은 갓 잡은 조개를 파스타에 얹어 풍성함을 더했다. 개조개나 키조개 같은 큼직한 조개는 오래 끓이면 질겨지는 조갯살의 특성상 국물을 내기보단 살을 저며 회로 먹거나 껍질을 접시삼아 그라탕을 만드는 등의 조리법이 발달했다. 통영의 별미 반찬 유곽은 개조개 살을 다져 갖은양념과 방아잎을 넣고 껍질에 채워 구운 호화로운 메뉴다. 


숯불을 피우고 조개를 올려 먹는 조개구이는 IMF 직후 창업 붐의 산물이다. 거리로 내몰린 직장인들은 생계수단을 마련하기 위해 PC방을 차리거나 요식업에 도전했다. 별다른 재료 손질이 필요없는 조개구이는 진입장벽이 낮은 아이템이었고, 대학가를 중심으로 우후죽순 생겨났다가 오래가지 못해 조금씩 그 수가 줄었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가게들도 여럿 있지만 다소 높은 가격과 계절을 탄다는 점 등은 리스크라고 할수 있다. 


한편 최근에 조개로 인한 식중독 사고가 늘고 있는 현상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조개류는 기온이 올라가면 산란 준비를 하고, 이때 독을 생성하는 개체들이 많다. 한여름에 굴 생식이 금물인 이유가 이 산란기 독 때문이다.(요즘 나오는 3배체 굴은 굴의 생식능력을 없애 독 생성을 아예 차단한 것) 환경오염과 기온변화는 이런 생각지 못한 부분까지 영향을 미친다. 


*아무튼...올해도 나는 조개구이 생각이 나서 함께 갈 사람을 물색중이다. (세명 이상이 가면 더 다양하게 먹을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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