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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Aug 05. 2024

태안 맛기행...이라기보단 꽃구경

태안 안면도 1박2일 투어

남편이 지금은 담당을 옮겼지만, 자동차 기자로 6년을 일해왔다. 덕분에 자차도 없는 우리는 비싼 외제차를 포함해 다양한 차를 시승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이렇게 둘이 떠난 자동차 여행 중 기억에 남는 곳이 태안이었다. 시승차로 갈 곳을 택하는 게 은근 까다로운 것이, 거리가 적당해야 하고(너무 장거리인 남해안은 그래서 결국 가보지 못했다) 코스가 수월한지, 1박을 해야 할 경우 묵을 곳이 마땅한지 등을 고려해야 한다. 태안은 마침 튤립 축제가 열리는 기간이라서 짧은 여행을 다녀오게 됐다. 

서해안 하면 역시 아름다운 낙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작은 펜션에 짐을 푼 우리는 뷰가 멋지다는 리솜아일랜드 리조트를 산보 겸 저녁식사를 위해 찾았다. 사실 워터파크에서 바다를 보며 물놀이를 하고 싶었으나 일단 가격이 비쌌고...ㅠㅠ 수영복을 안 챙겨온데다 남편도 그닥 내켜하지 않아서 간단히 사우나에서 목욕만..

서해안의 노을이 고즈넉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준다. 대략 4~5월 경이 더워지기 전이어서 여행하기에 적당한 듯 하다. 

리조트 내에는 일식당 씨스트로가 있었다. 깔끔한 분위기에 나름 가성비 있는 한끼를 즐길 수 있다. 2인 세트메뉴를 를주문하니 콘샐러드, 과일샐러드에 전복찜이 먼저 서빙된다. 통통한 전복은 육즙이 풍부하게 느껴지면서 연하게 씹힌다. 

사이드 메뉴로 나온 떡갈비

참치회 몇 종류에 광어, 도미, 연어 등이 모듬으로 나온다. 탱글탱글 전복과 문어숙회, 멍게도 곁들여진다. 회의 퀄리티가 괜찮고 단무지와 묵은지 반찬이 기름진 참치회를 먹고 난 후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해 준다. 

마무리로 빼놓을 수 없는 매운탕! 신선한 생선 서덜이 통째로 들어가서인가 매콤하면서 개운한 국물맛이 일품이다. 국물이 짭짤하게 졸아들 무렵 밥을 말면 한 공기가 뚝딱이다. 가족 단위 손님이 많고 아이들을 데려오기에도 무난한 맛집이다.

https://place.map.kakao.com/1297972365

다음날 아침, 우리는 튤립축제를 구경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 펜션을 나섰다. 봄 서해 바다의 풍경이 아름다워 잠시 넋을 놓게 된다. 작은 섬들이 하늘 위 구름처럼 옹기종기 예쁜 뷰를 선사한다. 

아침식사를 위해 찾은 곳은 안면도 한성식당이다. 외관은 그리 눈에 띄지 않는 편인데 리뷰를 보니 평점이 은근 높다. 1만원 정도에 제육볶음과 각종 나물반찬, 양념한 연두부 등이 나온다. 특이하다고 할 만한 메뉴는 아니지만 정성이 들어간 반찬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든든한 한끼를 맛볼 수 있었다. 

https://place.map.kakao.com/1839155937

튤립축제 기간 동안 태안은 말 그대로 꽃천지다. 튤립이 아무래도 많지만 벚꽃이나 아이리스, 히야신스 등 다양한 종류의 꽃들이 알록달록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곳곳에 마련된 풍차, 백조, 대형 곰 같은 조형물이 포토존으로 인기가 높다. 입장료는 1인당 만원이며, 느긋하게 한바퀴 돌면 1~2시간 정도가 걸린다. 행사장 입구에는 갖가지 주전부리를 파는 가게들이 있는데 가성비가 썩 좋지는 않으나 잠시 쉬면서 요기를 하기에 좋다. 

카카오 웹툰 '쌍갑포차' '박속낙지탕' 에서 발췌

사실은..... 태안 하면 떠오르는 꽃게나 낙지는 먹지 못했다. 남편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다 2인분이 기본이라 나 혼자 먹자고 시키는 것도 애매했던 탓이다. 그리고 이런 '특산물'은 아무래도 가격 거품이 낀 곳이 많다 보니 이런저런 이유로 이번 여행 때는 패스... 가을 낙지는 산삼보다 좋다는 대목이 웹툰에 언급되는데 실제로 낙지에는 타우린이 풍부해 기운을 돋우는 데 좋다고 한다. 예전에는 흔한 식재료였지만 지금은 보기 힘들어진 박은 국물에 시원한 맛을 내주는 채소다. 박과 마찬가지로 이제는 잘 쓰이지 않는 비슷한 재료로 대략 수박 두개 크기만한 커다란 동과가 있다. 중국에서는 동과 속을 파서 수프를 담는가 하면 과육을 설탕에 푹 조려 과자 재료로 쓰는 등 다양하게 활용한다. 요즘은 연포탕 부재료로 무를 많이 쓰는데, 박이나 동과를 넣은 국물 맛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낙지가 태안의 가을 별미라면 봄 별미는 (암)꽃게라고 할 수 있다. 살 맛을 즐기려면 가을철 숫게가 좋지만 고소한 알이 들어찬 봄 꽂게는 놓치기 아까운 계절 시식이다. 간장게장 속 진주황색 알을 싹싹 긁어 뜨거운 밥에 비벼 먹으면 그야말로 왕이 된 기분. 괜히 밥도둑이 아니다. 갑각류를 날것으로 먹지 않는 일본에서도 한류를 통해 게장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마니아층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일드 '흰밥 수행승'에는 흰 밥에 반찬 하나씩만 먹을 수 있는 수행승(을 억지로 하고 있는 날라리 주지스님 아들냄)이 어느날 신오오쿠보 한인촌에서 간장게장 맛에 정신줄을 놓는 장면이 눈길을 끈다.  


태안의 꽃게 요리 중 게국지도 티비를 통해 널리 알려진 음식이다. 다만 게국지의 이미지는 본래보다 부풀려진 면이 강하다. 원래 이 지역의 서민들이 게장을 담그고 남은 찌꺼기나 상품가치가 없는 자투리 해물을 김치로 담근 것인데 원조 게국지는 비린 맛이 강하다고 한다. 그대로 먹기보다 찌개로 끓여 먹으며 특별할 것이 없는 '가성비' 향토음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순간 꽃게 한 마리를 통째로 넣어 끓인 찌개가 게국지라는 이름으로 팔리면서 전혀 다른 호화 메뉴로 재탄생했다. 맛으로만 판단한다면 해물이 실하게 들어간 쪽이 확실히 우위겠지만, 예전의 소박함은 어느순간 사라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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