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 소식과 오해 사이의 경계

by 마음뚠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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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베란다 창문 앞 까치가 앉았다.

장마처럼 오는 가을비를 피한 건지

이 높은 아파트까지 날아와서 우리 집 창문에 앉더니

큰 울음소리가 들렸다. 너무나 가까이서

“까악— 까악—.”

어릴 적부터 그 소리는 반가움의 상징이었다.

“까치가 울면 손님이 온다.”

할머니의 말이 생각났다.

그날따라 나도 왠지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았다.


까치는 정말 흔히 볼 수 있는 새이다.

바닥에서 겅중겅중 점프를 하기도 하고,

감나무에 걸린 홍시를 야무지게 먹기도 하고

때로 몰려다니면서 까마귀 같은 큰 새도 도망가게 한다.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 까치도 부모가 번갈아 케어해

보름 넘게 바닥에서 안전하게 키워 같이 날아다니기도 한다.

아내와 같이 산책하면서 고양이에게 당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겅중거리며 다니던 새끼새가 어느덧 어미 옆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작은 박수를 치면서 안심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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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좋아 익숙하지 않은 얼굴이 나타나면 경계해서 우는 것이라고도 하지만

우리는 모두 좋은 소식을 기다린다.

그런데 막상 도착한 회사 메일함에는

‘긴급 공지’와 ‘프로젝트 일정 조정’이 줄줄이 들어 있었다.

까치가 알려준 소식은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까치 소식도 다른 상황에 살짝 웃음이 낫다.

그 울음이 ‘좋은 소식’이라는 믿음은

아마도 내 마음속에서 만들어진 환상일지도 모른다.

까치는 그저 울었을 뿐인데,

그 의미를 해석하는 건 늘 사람의 몫이었다.


도시의 까치는 참 분주하다.

전봇대 위, 아파트 옥상, 쓰레기 수거장 근처까지

그들은 늘 바쁘게 왔다 갔다 한다.

어쩌면 우리와 다를 게 없다.

서로의 신호를 오해하고,

좋은 일과 나쁜 일을 구분하려 애쓰며,

각자의 리듬으로 살아간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까치도

사람의 표정과 말을 그렇게 오해하고 있을까?

내가 인사도 못 하고 지나친 날,

그들은 혹시 나를

‘불친절한 인간’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신호로 가득하지만,

그 신호를 이해하는 법은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까치 울음이 들리면

굳이 ‘좋은 일’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그 소리 자체를 즐긴다.

소리와 바람이 섞이는 그 순간,

나는 내 마음이 어디에 서 있는지 알게 된다.

까치의 울음은 이제 내게

누군가의 방문을 예고하는 소리가 아니라,

‘오늘도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신호가 되었다.

그리고 그 정도면

충분히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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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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