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13일 오후.
그녀가 결국 먼 여행을 떠났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장례준비를 치르는 나를 불러세운 건 동서였다.
“형님. 애들 좀 태우고 오겠습니다.”
그랬다.
비록 6살 8살의 어린나이였지만 상주였고 직계 유족이었다. 헤어짐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복잡한 장례준비를 하느라 정신없었던 나는 순간 아이들이란 말에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듯 멈칫했다.
‘아이들에게 이 소식을 어떻게 전한지..’
이 순간을 지혜롭게 넘기지 못한다면 아이들에겐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을텐데 걱정이 앞섰다.
그렇게 얼마 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영문도 모르고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늘 그렇듯 해사하게 웃는 큰 딸과 그저 동그란 눈으로 누나를 졸졸 따르던 둘째 아이가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애석한 마음에 어른들은 당장이라도 달려가 끌어안을 태세였지만 나는 그런 어른들을 우선 말렸다. 그런 분위기에 휩싸이다 보면 아이들에게 어떠한 말을 해줘도 나쁜 기억으로 기억 될 수 밖에 없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엄마의 죽음이 좋은 기억은 당연히 아니겠지만 적어도 공포감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상주 옆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영문도 모르고 따라오던 둘째아이가 물었다.
“아빠 왜 우리만 여기 들어와?”
들어오던 길에 아이들을 애처럽게 쳐다보던 많은 시선들을 느꼈을까. 그런 아이의 질문에 아무 말없이 양쪽 무릎에 앉혀 아이들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나직하고 부드럽게 입을 뗐다.
“보윤아, 건우야. 엄마가 많이 아프시지. 만약에 엄마가 하늘나라로 가면 어떨 것 같아?”
그러자 큰 아이의 눈물에 벌써부터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더니 어느새 똑.하고 떨어졌다.
“아빠, 엄마 하늘나라로 갔어?”
아이는 불안하고 무서운지 엄마를 부르짓기 시작했다.
슬픈 건 큰아이의 펑펑 흘리는 눈물이 말해주니 더 표현할게 뭐가 있겠는가. 누나가 울자 둘째아이도 따라 울기 시작했다. 그런 아이들을 붙잡고 나도 한참을 울었다. 그렇게 울지 말자고 어금니 꽉 깨물고 다짐했건만 결국 터진 눈물은 내 결심이 무색하게 계속 흘러내렸다.
가슴 깊은 곳이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내 슬픔과 아이들 생각이 겹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얼마나 울었을까. 아이들의 울음이 조금 잦아들자 조심스레 엄마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리고 또 한참을 다독이다 진짜 헤어질 인사를 하러 빈소 앞을 찾았다.
빈소 앞 영정사진을 발견한 둘째아이가 반가운 듯 소리쳤다.
“엄마다! 누나, 엄마 저기 있어”
그러자 훌쩍이던 보윤이도 언제 그랬냐는 듯 반가운 엄마 사진에 화색이 돌았다.
엄마의 얼굴이 친근한 아이들은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그 후에도 아이들은 친척 또래 아이들과 뛰어놀며 장례식장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녔다.
여느 때와 같은 모습이라 천만다행이었다.
어쩌면 아이들이 이 순간 최대한 상처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역할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은 가족과 조문객들의 마음을 더 슬프게 만들었다.
이미지출처: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180523/902135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