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이 순간을 떠오르면 눈물이 다시 또 고인다.
문득 날씨가 좋아 하늘을 올려보다가도 울컥. 제법 따뜻해진 바람에도..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 받다가도.. 나는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이 눈물샘이란 놈은 불쑥불쑥 튀어나와 눈동자를 분주하게 만들어댔다.
4월의 어느 햇살 좋은 토요일이었다.
주말까지 마쳐야 할 일이 있어 아이들과 처가댁으로 향하던 길.
늘 가던 길이었지만 그날따라 그 길목은 유난히도 화창하고 아름다웠다.
‘곧 꽃도 피겠지. 그때는 아내와 아이들과 다시 와봐야지’ 라는 생각에 잠기니 잠시라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때였다. 처가댁 언덕쯤 다다르자 뒷자석에 앉아 있던 큰 아이가 지루한지 몸을 베베꼬며 물었다.
“아빠, 다 왔어?”
“응. 다 왔어”
“근데 아빠 일찍 데리러 오면 안 돼? 나 할머니 집 오래있는 거 싫어.”
큰아이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지만 할 일이 많았던 터라 그냥 묵인 할 수 밖에 없었다. 아이들을 돌보는 시간에 쫒기다보면 분명 제 할 일을 다 끝내지 못할 게 뻔할테니 그래도 처가댁에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장서방”
문턱에 발을 내딛던 순간. 언제부터 기다렸던지 바짝 긴장한 채로 장모님이 나를 불러세웠다.
“진희가..”
그녀의 딸이자 나의 아내.
하지만 그녀는 선뜻 말하지 못하고 입안에서 딸아이의 이름을 몇 번이고 더 구르다가 뱉어내듯 토해냈다.
“진희가 어제부터.. 숨을 제대로 못 쉬네..”
올게 왔구나 싶었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무릎에 힘이 풀려 하마터면 그대로 주저앉을 뻔 했다.
솔직히 그날의 기억은 그게 다다. 장모님이 이후에 무슨 말씀을 더 하신 것 같았지만 정확히 기억나질 않는다. 다만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운전대를 잡고 있었고 그렇게 의식의 흐름대로 병원에 도착해 있었다.
도착한 병실 안에서의 아내의 모습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겨우 가는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병원에 오는 내내 울지말자고 다짐했었는데 막상 그녀의 모습을 마주하니 울컥한 가슴이 뜨거운 눈물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또다시 의식의 흐름대로 흐르는 눈물을 그저 받아들일 수 밖에.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작게 떨리는 그녀의 손을 잡고 나는 나직히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진희야. 나왔어.”
그러자 신기하게도 아내의 가쁜 숨이 곧 잦아들었다.
다행이었다.
옆에서 같이 경과를 지켜보던 의사선생님이 한마디를 보탰다.
“최진희환자분이 남편분을 기다렸나 봅니다.”
그녀의 곁에서 그녀가 더 편하게 숨쉴 수 있게 기다려주는 게 나의 온전한 임무였다.
그렇게 1시간이나 흘렀을까.
아내의 숨이 또 거칠게 새어나왔다. 기진맥진한 숨이 날것 그대로를 뱉어내듯 요동쳤다.
스스로 숨을 쉬기도 어려운 상황에 산소호흡기조차도 별 도움이 없었다.
“최 진희씨 보호자 분. 임종을 준비하셔야겠습니다.”
최선을 다한 의사는 아내의 마지막 진단을 내렸다.
“하..아”
기가 막혔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도.. 손을 잡는 것도.. 안아보는 것도.. 이젠 진짜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안간힘을 쓰며 너는 나를 기다렸구나. 조금 더 빨리 올 것을.. 아이들 핑계에 너를 너무 기다리게 했구나.’
생각하니 눈물이 연신 흘렀다.
나는 아내의 얼굴을 감싸안고 우는지 말하는지 구분이 어려운 말들을 뱉어냈다.
마지막 아내가 떠나는 길에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순간 적어도 아내가 듣고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여보.. 고마워.. 사랑해.. 우리 아이들은 내가 잘 키울게. 걱정하지마.
이제 아프지 말고 편히 쉬어. 그리고 나중에 다시 만나자."
"사랑해 여보"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 또 나를 배려하느라 이별을 조금 아껴둔 것이리라.
헤어지는 인사도 없이 가버리면 내가 평생을 가슴 아프게 살아갈 것을 현명한 그녀는 이미 알고 나에게 선물을 주고 떠난 것이었다.
그렇게 아내는 나와 아이들에게서 영영 먼 여행을 떠났다.
.
.
누군가의 임종을 지킨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아버지의 임종이 그랬고 아내의 죽음이 그랬다. 누군가의 임종을 지켜본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나이가 많든 적든. 준비를 했든 하지 않았든. 마찬가질 일 것이다.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는 것이 보내는 사람에게도 떠나는 사람에게도 좋은 일이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죄책감은 갖지 말았으면 한다.
다만,
아쉬움을 남기지 않고 싶다면 살아있을 때 온전한 마음을 표현하면 된다. 언제 찾아올지도 모르는 가까운 이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기거나 죄의식은 갖지 말자. 먼저 간 이들도 남은 가족이 무거운 삶을 살기를 원치 않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