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상처가 흉터가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심리학 서적에서 읽은 적이 있다. 보통 상실의 상처는 6개월 내에 잊혀 진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상실이 여기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사별과 같은 큰일은 2~3년이 걸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 후 시간이 흐르고 나면 조금씩 조절된다고 한다.
맞는 말인 듯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노래가 있다. 가사를 듣고 있자면 불효자는 왜 울까? 불효자는 부모 살아생전에 잘해드리지 못한 죄송함으로 돌아가신 후에 후회하며 한없이 눈물을 흘린다. 옆에 살아 계실 때는 청개구리처럼 부모님 속을 썩이다 곁을 떠난 후 옷자락을 잡는 모습이다. 영혼이 있을지 없을지는 믿음의 영역이지만 불교에서는 산 사람이 죽은 자를 잊지 못하고 매일 슬퍼하면 죽은 사람이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주위를 맴돈다는 말이 있다. 결국 불효자는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도 돌아가신 후에도 부모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한 사례로 얼마 전 어머님을 극진히 모신 효자 아들의 한 사례를 접했다. 어머니가 오랜 투병생활 끝에 세상을 떠나자 아들은 큰 슬픔에 빠졌다. 그의 아내는 어머니를 여읜 남편이 매일 어머님을 찾아가 슬퍼할 것이라 예상했다고 한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아들은 어머님의 장례식이 끝난 후 특별한 날이 아니면 빈소를 찾지 않았다. 그래서 아내가 물었다. “당신 왜 어머님께 자주 안 가?” 남편의 대답은 의외였다. “나 어머니 살아가 계실 때 할 만큼 했잖아. 어머니도 좋은 곳으로 떠나셨는데 보내드려야지. 그리고 거기 어머니만 계신 거 아닌데 난 거기가면 좀 무서워”라고.
그렇다. 상처가 흉터가 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살아 있을 때 내가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살아있는 동안 미련 없이 행동했다면 그 시간은 짧아지고, 미련이 남았다면 남은 만큼 길어진다. 아내와 사별에 대한 상처도 살아있을 때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그 기간이 달라진다. 배우자가 떠났다고 모두 같은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며 많이 사랑했다고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훗날 후회하지 않으려면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지금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