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부터 명절이 다가온다는 것은 나에게 엄청난 일이었다. 달리 엄청났다기보다는 엄청난 스트레스였기 때문이다. 아빠의 큰댁은 거제도. 지금은 내가 살고 있는 부산에서 꽤 가까운 길이 생겨 자차로 두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지만 내가 어린이였을 때만 해도 거의 6시간 이상을 가야 하는 대장정이었다. 게다가 어린 나는 지독한 멀미를 하는 아이였다. 명절의 교통 체증은 멀미수치를 한층 상승시켰고 늘 큰댁에 도착할 때 즈음이면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고는 했다.
나의 고난은 그 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지금보다도 더더욱 낯가림 + 내향형 어린이였던 나에게는 일년에 두어번 만나게 되는 수많은 친척들과의 어색한 만남과 인사를 반복해야 하는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질문의 내용도, 주고 받는 인사의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많이 컸구나, 몇학년이니 공부는 잘 하고 있냐는 질문의 무한 반복이었다. 인사도 부끄러워서 겨우 겨우 하는 나에게 엄청난 대가족인 친가쪽 친척들에게 돌아가면서 대답하는 시간은 마치 극기 훈련같았다. 차라리 정말 극기 훈련이 낫겠다 싶었다.
결국에는 어떻게 되었느냐. 늘 명절 직전의 밤이나 명절 당일에는 버티지 못하고 몸살로 끙끙 앓다가 응급실 행을 하게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
어느 정도 시간이 더 흘러서는 공부를 핑계로 부모님만 큰댁에 가시게 되었다. 사실 좀 (많이) 기뻤던 것 같다. 그 후로 더 나이를 먹어서는 명절을 특별하게 보내는 일이 사라져버려, 명절이 평소와 다름없이 보내는 날이 되어버렸다.
이젠 나이를 너무 많이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지 않은 탓에 다른 의미로 명절이 달갑지 않은 날이 되어버렸지만. 참, 여러모로 명절이 내 인생에서 달갑지 않은 의미가 되어버렸음이 조금 슬프기도 하다.
나에겐 어쩐지 아픈 손가락 같은 날이지만, 그래도 다른 모두에게는 반갑고 즐거운 날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내 몫까지 더 보태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