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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하루가 저물어 간다.
아침에 동그랬던 머리의 컬은 중력을 거스르지 못하고 잔물결이 되었다. 분명 출근길과 퇴근길, 가방에 들어있는 소지품들은 똑같은데 퇴근길의 가방이 더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기분탓일까. 나 몰래 장난꾸러기 요정들이 숨어들어가서는, 내가 갸우뚱하며 가방을 열자마자 슉슉 숨어버리는 것만 같다.
모든 것을 무장해제하고 누운 밤 -
오늘 입었던 외투의 소매 끝에, 바지의 주머니 속에, 가방 속에 몰래 숨어들어왔던 하루의 조각들이 살금살금 모여든다.
누군가와 나누었던 대화, 예상치 못했던 사건들. 창문에 갑자기 나타난 나방 한 마리. sns 속 릴스에서 자꾸만 반복 재생되던 제목도 모르는 노래. 사람들과 눈을 마주쳤을 때 나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눈동자 속에 담긴 나. 최근 즐겨보는 프로그램 속의 한 장면. 보고 듣고 느낀 하루치의 데이터들이 와글와글거린다.
나는, 그 수다스러운 장면을 바라보며
흐뭇해지기도
피로해지기도
뜨끔해지기도
뿌듯해지기도, 했다가 -
자꾸만 감기는 눈을 이기지 못해
이별을 고한다.
이젠 헤어질 시간이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