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동 준비

by 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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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태생이지만 유난히 겨울은 나에게는 힘겨운 계절이다. 워낙 추위를 많이 타는 탓에 겨울만 되면 왜 동물들이 겨울잠을 자는지 정확하게 이해가 간다. 한편 합법적(?!)인 동면 기간을 확보하여 살아갈 수 있는 삶이 조금 부러워지기도 하다. 인간의 생에도 동면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허황된 꿈을 잠시나마 품어보기도.


원래도 멋을 부리는 일에 크게 연연하는 삶은 아니지만, 겨울에는 멋은 고사하고 매일 생존형 레이어드룩을 어떻게 입어야 할지 고민하며 착장에 신중을 기한다.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보온이 뛰어난 룩이 겨울철 나의 최애 코디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옷장 속 계절별 옷의 지분을 계산 해 보아도 사계절 옷 중 60% 정도가 겨울 옷인 것에서도 겨울을 어떻게든 잘 생존 해 보겠다는 나의 의지가 느껴진다.


몸과 마음의 바이오리듬은 그 흐름을 같이 한다고 하지 않았던던가. 몸의 민감도가 이토록 높아지는 만큼 마음의 그것 또한 덩달아 높아짐을 부인할 수 없다. 사계절마다 나름의 서사를 더해 계절을 타는 나이지만, 겨울은 뭐랄까. 한없이 그 출렁임의 빈도와 진폭이 증폭되는 계절이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마음이 무너졌다가, 또 손톱만큼의 호의와 온기에도 단숨에 몰랑해져버리는 마음. 누군가는 이런 나의 물컹이는 마음을 감성적이라는 고운 말로 예쁘게 포장해 주지만, 막상 그 물컹한 마음을 장착하고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나에게는 사실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조금만 방심해도 손가락 틈새로 다 흘려버릴 것 같은 무언가를 손에 쥔 채로 살아가야 하는 숙명을 안고 태어난 것만 같다.


이렇게 겨울철의 고충을 구구절절 읊고 있는 나에게, 막상 누군가 이렇게 물어볼지도 모른다.

'그러면 희윤씨는 겨울을 싫어하나요?'

이 질문에 나는 무엇이라 대답할 수 있을까. '그럼요, 정말로 절대로 싫어요. 너무 힘들고 -' 라고 대답할 것 같지만 막상 나는 대답을 단숨에 하지 못할 것 같다. 한참을 고민하다 이렇게 답할지도 모른다.

'여러모로 힘든 계절이긴 하죠. 하지만 싫지는 않아요. 겨울만의 매력이 있잖아요. 두꺼운 옷 속에, 추운 날씨 핑계로 몸도 마음도 조금은 다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용서되는 그런 거. 웅크리며 지내는 것이 유별나 보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거. 좀 그래도 괜찮은거.'


겨울은 그런 계절이다. 조금은 웅크리고 게을러지고. 숨기고 덜 드러내어도 괜찮게 느껴지는 계절.

추위를 핑계로 서로가 서로에게 더 따뜻함을 나누려고 애쓰는 계절. 여름이라면 불쾌하게 느껴질지도 모를 옆사람과 밀착된 간격이, 오히려 서로의 온도를 더해 추위를 잊을 수 있는 무언가로 느껴지게 하는 계절.


그런 겨울이 또 다시 찾아왔다.

나는 어김없이 이 겨울을 잘 살아낼 몸과 마음의 준비를 시작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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