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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겠다는 마음은 스스로를 기꺼이 귀찮게 하겠다는 선언이다. 그냥 흘려보내도 좋을 감정이나 풍경을 굳이 붙잡아 문장이라는 그릇에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남들은 무심히 지나치는 사소한 일에 유독 마음이 체해서, 꺽꺽대며 글자를 골라내는 사람. 쓰는 사람은 결국 세상의 작은 소음에도 귀가 밝은 수선공에 가깝다.
이 고된 작업에 처방하는 첫 번째 약은 '대충 쓰기'다. 첫 줄부터 근사한 명언을 남기겠다는 욕심은 펜을 멈추게 하는 치명적인 독소다. 글은 대단한 영감으로 짓는 성벽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쌓는 흙장난이어야 한다. 일단 쏟아내고 나중에 다듬으면 그만이라는 배짱이 필요하다. 고칠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쓰는 사람에게 주어진 가장 다정한 특권이다.
두 번째 복용법은 '낯선 눈으로 보기'다. 글감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늘 마시는 커피의 온도나 버스 창가에 비친 무표정한 얼굴 속에 숨어 있다. 매일 걷는 길에서 유독 길게 누운 그림자를 발견하는 일. 그런 사소한 관찰들이 모여 결국 누군가의 마음을 건드리는 문장이 된다.
쓰는 사람은 책상 앞에 혼자 앉아 있지만, 사실 세상과 가장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단어 하나에 체온을 담는 행위는 나를 증명하는 동시에, 어딘가에 있을 '또 다른 나'에게 가닿으려는 간절한 손짓이다. 글을 쓰고 난 뒤의 공허함은 내가 누군가에게 진심이었다는 기분 좋은 증거가 된다.
글이 써지지 않는 날에는 차라리 펜을 놓고 운동화 끈을 묶는다. 걷다 보면 막혔던 문장이 슬그머니 뒤를 따라오기도 한다. 글쓰기는 나를 갉아먹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흐릿했던 나를 더 선명하게 사랑하기 위한 우회로다. 오늘 적어 내려간 서툰 문장들이 내일의 당신을 지탱하는 단단한 기둥이 될 것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