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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튤립 Aug 15. 2024

엄마는 왜, 밥이 완성되기도 전에 우리를 부르셨을까

100일간의 육아 감사일기 #25

내 배가 고파도 아기의 밥을 챙기는 것이 더 중요한 요즘.

그간 엄마가 해주신 셀 수 없이 많은 밥상들이 스쳐 지나갈 때가 있다.


'밥 먹으러 나와~! 다 됐어!' 하고 부엌에서 엄마가 외치는 소리에 방을 나서면, 아직 뚝딱뚝딱 요리를 만들고 계시던 엄마의 흔한 거짓말이 문득 생각난다.


엄마는 왜 요리가 채 완성되기도 전에 가족들을 그렇게 불러 모으려고 하셨을까, 생각을 해보자면-

1. 테이블 세팅을 도와달라는 의미로

2. 갓 만들어낸 따뜻한 요리를 내어주고 싶으셔서

정도가 있었을 것이다.


내가 요리를 거의 마칠 즈음 아기를 보고 있는 남편을 부르는 이유도 바로 위와 같기 때문인데, 기껏 요리를 완성했는데 식사 준비가 되어있지 않거나 요리가 식거나 불어 가는 것 같으면 마음이 그렇게 초조해진다. 내가 준비한 요리를 딱 올려 따뜻하게 먹을 수 있게 세팅이 되어있으면 기분 좋게 바로 식사를 할 수 있어, 누군가가 미리 세팅을 완료해 놓으면 요리한 사람의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다.


엄마의 밥을 매일같이 먹을 수 있었던 이십여 년간 이 사실을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람은 경험을 해봐야 뭐든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법이다.


가끔 부모님 댁에 놀러 갈 때면, 엄마는 항상 나에게 '뭐 먹고 싶어~?'하고 메시지를 보내오신다. 그리운 엄마의 집밥 메뉴가 있을 때면, 그 메뉴를 콕 집어 이야기할 때도 있고 생각이 나지 않으면 아무거나 다 좋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그렇게 대답하면 엄마는 메뉴를 선정하기 어려우실 수 있지만, 나는 엄마가 해주시는 음식이면 정말 다 좋다.


이 또한 내가 엄마아빠에게서 독립해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엄마 밥의 소중함이다. 함께 살 땐, 매일 삼시세끼 주방에서 분주한 엄마의 모습이 당연하게 느껴졌으니 말이다.


엄마가 되어보니, 삼시세끼 자식한테 건강한 음식을 먹이고 싶은 그 마음을-

내 밥은 제대로 못 챙겨도 자식의 밥은 꼭 챙겨주고 싶은 그 마음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있다.

'내리사랑도 있고 치사랑도 있다'는 불가능한 것일까?


내가 아기에게 해주는 것만큼 부모님께 해드리기는 분명 어렵겠지만, 내 마음을 자주 전하고 가끔 보이는 사랑의 행동들을 통해 '치사랑도 조금은 있다'고라도 말할 수 있게 잘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해주신 수많은 음식들 모두가 내가 받은 사랑의 양이라면, 그 사랑을 온전히 갚기는 절대 불가하겠지만 말이다.



오늘은 육아 감사일기 스물다섯 번째 날이다.


휴무일인 오늘, 세 식구가 함께 부모님 댁에 놀러 갔다.

아기의 이유식이 마침 똑 떨어져, 아기 이유식을 부모님 댁에서 만드려고 필요한 도구들을 챙기는데 문득 엄마아빠께 간단한 요리라도 만들어드리고 싶어졌다.


영양가가 풍부하다는 여름감자로 만든 아주 간단한 요리! 레시피는 다음과 같다.

포슬포슬 찐 감자를 으깨서 대파와 전분가루 소금 후추를 넣어 조물조물 반죽을 해준 뒤 지퍼백에 넣고 판판하게 반죽을 편다. 올리브유를 살짝 팬에 두른 뒤 일정한 크기로 조각낸 감자 반죽을 노릇해질 때까지 구워주면 끝! 별로 들어가는 재료는 없지만, 칠리소스나 케첩에 찍어먹으면 별미가 따로 없다.


이유식을 만들고 조금 쉬다가 감자요리를 만들어 저녁 밥상에 내어드렸더니,

아빠께서는 '만들어 팔아도 되겠다! 맛있네, 이건 이름이 뭐야?' 하셨고

엄마께서는 '내 스타일이야! 너무 맛있어~'하고 말씀해 주셨다.


엄마가 맛있는 요리를 해주셔도, 내가 가끔 만들어드리는 요리에도 늘 '식당 차리면 대박 나겠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는 아빠. 그리고 누굴 닮아서 요리를 뚝딱뚝딱 잘하느냐고 칭찬하시는 엄마.


나는 고작 가끔 하는 요리인데, 엄마아빠가 한 입을 베어 물자마자

'어때? 맛있어? 엄마아빠 꼭 만들어주고 싶었어~'하며 듣고 싶은 이야기를 얻기 위한 질문을 계속 이어가곤 한다. 근데 사실 진짜 맛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맛있어!'로 시작된다. 물어봐야 뻔한 대답이지만, 언제나 그 대답이 듣고 싶은 철없는 딸내미이다.


엄마가 되어보니, 살림을 하다 보니, 엄마의 음식들이 더 맛있게 느껴진다.

우리 가족이 건강하고 맛있게 먹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준비하시는 밥상이니 말이다.


내가 끼니를 잘 챙기지 못할 것 같아 해 주시는 음식과 반찬들, 집에 가면 해주시는 푸짐한 건강 음식들. 지금도 열심히 맛있다를 외치고 있지만 더 자주 이야기해야겠다.


그리고 빠릿빠릿하게 테이블 세팅을 해서 맛있게 준비된 엄마의 음식을 빨리 먹을 수 있도록 도와야겠다.


또, 자주는 아니더라도 맛있는 요리도 종종 대접해 드려야겠다.

내리사랑도 있고 치사랑도 있다는 걸 어렴풋이라도 느끼실 수 있도록 말이다.


엄마의 사랑 가득한 밥상을 한가득 먹고 와서 밤이 늦은 지금 시각까지 배가 꺼지지 않는,

포만감이 가득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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