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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선화 Jan 31. 2024

너는 어떤 할머니가 될래?

그림책 읽은 후.... 김인자 작가의 <할머니는 1학년>

지인은 몇 개월 전 발레를 시작했다. 몸에 근육이 없던 지인은 발레 시작 몇 개월 만에 팔과 등에 약간의 근육이 붙은 것 같다고 했다. 건강해지려고 시작했는데 재미도 있다며 만족해했다. 말 끝에 지인은 자기는 나중에 '발레 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했다. '발레 하는 할머니'라니, 어떻게 이런 멋진 꿈을? 나는 곧 새하얀 머리에 주름진 피부지만 자세는 꼿꼿하여 우아한 모습으로 발레를 하고 있을 할머니 발레리나 모습의 그를 상상했다. 상상만으로도 그의 모습이 멋져 보였다. 그러면서 나는 그동안 '어떤 할머니가 되어야지'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음을 깨달았고, 내 주변 할머니들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가장 먼저, 우리 아이들의 할머니이자 나의 엄마인 금례 씨. 금례 씨는 '그림 그리는 할머니'다. 금례 씨는 나를 대신해 10년 동안 우리 아이들의 육아를 맡아주셨다. 육아에서 손을 떼자마자 금례 씨는 바로 중학교에 입학해 공부를 시작했다. 모르는 것을 자식이나 손주들에게 묻거나, 모르는 채 슬쩍 넘어가며 무난한 학생으로 중학교를 졸업한 금례 씨는 바로 고등학교에 입학해 23년 2월 고등학교도 우수하게 졸업했다.

몇 년간의 중고등학생 시절을 보내며 금례 씨는 서양화(유화)를 접하고 그림 그리기 재미에 푹 빠졌다. 그의 나이 일흔 즈음이다. 방에 이젤과 캔버스를 놓고 매일 그림을 그렸다. 그림 그리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지 몰랐다며 캔버스 앞에 앉아 밖이 어둑해지는 것도 모른 채 그림 그리기에 푹 빠져 지냈다. 그가 그린 그림은 본인 집은 물론이고, 자식들 집과 형제자매들 집으로 널리널리 퍼져 그들 집 벽에 걸렸다. 언젠가 금례 씨는 '집에  수리하러 방문한 기사님이 그림이 너무 좋다며 사고 싶다고 해 작품 한 점을 팔았다'의기양양해 하시기도 했다.

최근 금례 씨는 인물화를 그린다. 사진과 똑같이 본인도 그리고, 남편 창수 씨도 그린다. 자식도 그리고 손주도 그리고, 유명배우도 그린다. 쉼 없이 그리는 그는 '그림 그리는 할머니'다.


작년 여름 '비건쿠키 만들기' 수업에서 만난 분은 '우쿨렐레 치는 할머니'이다. 그는 손주와 노래를 부를 때 더 신나고 즐겁게 부르기 위해서 우쿨렐레를 배우고 연주한다고 했다. 우쿨렐레를 치며 노래 부르는 그의 모습은 정겹고 따뜻했다. 모습뿐 아니라 노래 부르는 목소리 또한 청아하고 감미로웠다. 나는 그의 손주들이 어릴 때부터 귀호강하며 할머니의 사랑 가득한 음악과 함께 즐거운 유년을 보낼 것을 생각하며 정서적으로 얼마나 안정될지, 마음은 얼마나 따뜻할지를  생각했다. 지난달에는 그의 연주와 목소리가 담긴 유튜브 영상을 공유해 주셨다. 그는 손주가 조금 크면 손주는 우쿨렐레를 연주하고 자기는 기타를 연주할 계획이라며 요즘 기타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우쿨렐레 치는 할머니', '기타 배우는 할머니', '손주와 기타-우쿨렐레 연주를 하는 할머니'가 내 지인이라니, 그 사실만으로도 왠지 내 어깨가 올라간다.




 '공부하는 할머니' 책에서 만난 할머니다. 김인자 작가의 그림책 <할머니는 1학년>은 여든셋에 처음으로 글자를 깨친 간난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간난 할머니는 양면초등학교 1학년이다. 1학년은 모두 일곱 명의 학생이 있는데, 여덟 살 학생이 네 명, 할머니 학생이 세 명이다. 갑작스러운 받아쓰기 시험에 '이렇게 갑자기 시험 보는 법이 어디 있냐'라고 따지는 학생, 받아쓰기 40점 받고 공부 좀 할걸 하고 후회하는 학생, 가정 방문에 온 선생님께 직접 만든 도토리묵을 한 접시 내드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묵은지 한 통을 싸주는 학생, 체험학습 가는 날 반 친구들 모두가 먹을 만큼 김밥을 싸 오는 학생, 쉬는 시간에 우유가 아니라 커피를 마시는 학생, '일기 쓰기 참말로 싫다'투덜대고 숙제영감한테 대신해 달라고 슬쩍 내미는 학생. 이 학생이 바로 간난 할머니다. 간난 할머니가 학교 가는 길은 오래도록 고이 간직한 고운 꿈길. 한평생 꿈꿔 왔던 중학교도 가고, 고등학교도 가고, 대학교도 가는 고운 꿈길을 간난 할머니는 책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검은 비닐봉지 하나 들고 가볍게 걸어간다. 그림책 마지막 장에 사각모 쓴 할머니가 웃고 있는 사진 그림이 있다. 나이가 들어도 꿈꾸고 도전하는 모습이 얼마나 당당한'공부하는 할머니'가 말해주고 있다.  




나는 어떤 할머니가 될까? 아직 멀고 멀기만 할머니가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 본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글 쓰는 할머니, 그림 그리고 이야기 만들어 아가들을 위한 그림책 작가가 된 할머니, 지금 최신가요는 못불러도 할머니가 된 20년 후의 최신가요 열 곡 정도는 따라 부를 있는 할머니, 세계일주 하며 손주에게 '나 오늘 오로라 봤어~'라고 멋진 사진 보내는 할머니...


'발레 하는 할머니'가 될 거라고 말한 지인처럼 나는 아직 명확하게 어떤 할머니가 되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확실하다.  '그림 그리는 할머니' 금례 씨처럼, '우쿨렐레 치는 할머니'처럼, '공부하는 할머니'인 간난 할머니처럼,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서 꿈꾸고 즐기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것. 그리고 내 주변 할머니들이 직접 보여주었던 것처럼 나도 나의 꿈과 함께 고운 꿈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야겠다는 것.  


이 글을 읽는 이들도 "너는 어떤 할머니가 될래?"라는 질문을 한 번쯤 자신에게 던져보길, 즐겁고 행복한 할머니가 된 모습을 그려보길 권해본다. 고운 꿈길을 걸어보자고, 즐기는 노년 모습을 그려보자고, 자신 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위한 삶을 살아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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