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수 씨가 본 그녀는 "차암, 예뻤다!"

안녕, 나의 창수 씨

by 최선화

어느 주말 저녁, 창수 씨는 나에게 그가 20대 때 고향을 떠났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서울에서 군대를 마치고 고향에 내려가 있었다. 고향에 내려간 지 6개월 만에 5촌 당숙의 소개로 서울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올라와 당숙네서 숙식하며 일을 하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당숙이 '이건 방값이다', '이건 밥값이다'하며 중간에 많은 걸 가져갔다고 했다. 시골 청년이 서울에 올라와 사회의 첫발을 내딛는데 친척이라고 좀 봐줄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좀 당했던 것 같았다고 지난날들을 되새겨 보는 그다. 짧은 그의 말 속에서 1960년대 후반의 서울은 시골에서 올라온 청년이 살기에 녹녹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창수 씨는 당숙과의 지난 일들을 이야기하다가, 당숙의 아내의 친구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바로 창수 씨의 아내인 금례 씨를 당숙의 아내의 친구가 소개했기 때문이다.(지난 48년 동안 나는 창수 씨와 금례 씨가 누구의 소개로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진정 알지 못했었다. 다만 둘이 중매로 결혼했다는 말만 들어왔었다.) 그 당시 당숙의 아내의 친구는 구례에 살고 있었는데, 당숙에게 '동네에 괜찮은 여자가 있는데 소개할 사람 있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래서 창수 씨는 괜찮은 여자가 있다는 말에 선을 보러 구례로 내려가게 되었다.


만남 날짜가 정해지고, 기차표를 끊고, 완행열차를 타고, 밤새 서울에서 전라남도까지 내려가는 시간, 그는 그때 얼마나 떨리고 설레었을까. 기차가 구례역에 도착했고, 창수 씨는 기차에서 내렸다.

창수 씨가 이야기를 이어갔다.

"기차에서 내렸는데, 내가 신고 있던 양말 한 짝이 없어졌더라고.. 하하하."

"엥? 아빠, 양말이 어디로 간 거야~, 하하하. 귀신이 곡 할 노릇이네.."

어떻게 된 일일까? 정말 미스터리다.


20대 순수청년 창수 씨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복잡한 열차에서 밤새 고개를 끄덕이며 조는 모습, 그 속에서 누군가 뺏어갔을지, 혹은 자다가 답답해서 스스로 벗었을지 모를 양말 한 짝. '설렘'이나 '긴장'이라는 마음의 상태와는 그다지 딱 맞지 않은 것 같다. 다만 한쪽은 양말을 신고, 한쪽은 양말이 벗은 채 역 앞에 서있는 그를 상상하니 웃음이 난다. 그 시간들, 기억 저편에 있는 그날이 창수 씨에게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억에 남아있었고, 그 기억을 끄집어 내어 나에게 얘기해 준 것이겠지.


다음날 창수 씨는 지금 나의 엄마인 금례 씨를 만났다고 했다. 선을 보고 나서 어떻게 할지 결정을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아주 속도 좋고 괜찮은 이니 꼭 만나라"라고 옆에서 많은 이들이 얘기했다고.

그래서 아빠는 바로 결정했단다. 그녀와 결혼하기로.

그래서 다음날(?) 결혼을 하고, 엄마와 둘이 완행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고....

(음.. 이게 진정 끝인가요? 설마 내가 중간에 몇 과정을 못 들은 게 아닌가 싶은데... 너무 진도가 빠른 거 아닌가요??? 만나자 마자 결혼...? 정말인가요?)


이야기 끝에 창수 씨가 말했다.

"그때는 시골에서 농사를 지어 얼굴이 까무잡잡해 몰랐는데,

서울 와서 농사일을 안 하고 있으니까.. 얼굴이 뽀얀 게 차암.. 예뻤다."

옆에서 금례 씨, 얼굴에 미소 한가득이다.



지난주 후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하다가 부모님 이야기로 넘어갔는데, 후배는 자기가 그동안 조부모님과 부모님에 대해 너무 몰랐었다고 했다.


"언니, 나는 우리 할아버지가 일제강점기에 만주에서 생활했다는 걸 며칠 전에 알았다니까요."

"언니, 우리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갈 뻔하셨대요."

"언니, 우리 아빠는 중동건설붐이 일어났을 때 그때 거기에 있었다는 거 있죠? 아빠가 살아있었으면 더 물어봤을텐데... 아쉬워요."


후배와 나는 조부모님과 부모님이 겪었던 이야기를 하다가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왜 늘 내 옆에 있던 그들을 궁금해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왜 그들의 경험을 묻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던가?"

나는 창수 씨가 경험한 것과 그가 느꼈던 것들에 대해 묻고 듣는 시간을 조금씩 만들고 있다. 그러면서 그의 경험과 그의 인생이 얼마나 찬란했는지 미약하게나마 알아가고 있다. 나는 그가 나의 보호자일 뿐만 아니라 젊은 청년의 시절이 있었던 한 "존재"임을 알아간다. 책과 영화에서 주인공들을 통해 보았던 것을 내 옆에 있는 창수 씨를 통해 듣는다.

그러면서 나는 그에 대해 궁금한 것이 점점 많아진다.

창수 씨와의 만남과 대화가 더 소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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