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어릴 적 우리 집에는 그림책이 없었다. 책이라고는 교과서가 전부였다. 집 형편이 먹고사는 게 우선이었기에 나는 책이 집에 있다는 걸 알지도 상상하지도 못했었다. 부모님이 집을 사고 형편이 나아질 때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였다. 당시는 전반적으로 책이 귀했던 시절이었다. 귀한 물건인 만큼 책은 개별적으로 서점에서 사기보다는 출판사 영업사원이 집을 방문해 전집으로 판매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야 우리 집에도 전집이 들어왔다. 계몽사인지 삼성출판사인지 금성출판사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 보기에 적절한 위인전 전집이었다. 당시 영업사원은 어떤 책을 원하냐고 물었는데, 책을 본 적이 없었던 우리는 '위인전이요'라고 답했다. 그릇이 전시되어 있던 장식장 한 칸이 책으로 가득 찼다. 그때 위인전이 아니라 세계명작동화나 소설 전집을 들였다면 나는 더 상상력이 풍부한 소녀로 성장하지 않았을까라고 웃으며 생각해 본다.
언니가 결혼을 하고 조카가 태어났다. 책을 좋아했던 언니는 발품을 팔면서 그림책을 집으로 들였다. 책장에는 책이 가득했고 조카들은 책 속에서 자라났다. 우리 아이들 또한 언니가 물려준 책들과 함께 어린 시절을 책에 묻혀 지낼 수 있었다. 책은 이야기가 담긴 마술도구이자 장난감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그림책을 늘 가까이했다. 책을 쌓아 누가 더 높이 올리는지 시합을 했고, 누가 먼저 책장에 넣어 정리하는지도 시합했다. 책으로 길을 만들고 책 속에 있는 단어 찾기나 글자 찾기를 하면서 책과 친해졌다. 더불어 집 앞에 어린이 도서관이 생겼고, 더 다양한 그림책을 빌려서 더 많은 이야기들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어릴 때 못 봤던 그림책을 아이들을 키우며 보았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자, 아이들은 그림책보다는 글밥이 많은 책으로 갈아탔다. 그러다 보니 나도 그림책에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다 작년에 다시 그림책을 펼쳤다. 친구가 그린 그림책을 보면서 그림책 속에 나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음을 발견했다. 친구가 그린 그림책만 그런 게 아니었다. 다른 그림책에도 나의 과거 이야기, 현재 이야기, 미래 이야기가 펼쳐져 있었다. 영유아를 위한 책인 줄 알았는데, 나를 위로하고 나를 성찰하게 만들었다. 몇 줄 안 되는 글 속에서 마음이 따뜻해지고 뭉클해졌다.
나는 요즘도 어린이 도서관에서 그림책을 본다. 글밥은 적고 그림은 다정하다. 그림책 속에서 사랑스러운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미숙하고 부끄러운 나도 만난다. 책이 두껍고 어려워 읽기 거북하다면, 그림책으로 시작하는 글 읽기는 어떨까. 그림책 속으로 함께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