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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수 씨는 왜 일만 할까?”라는 질문에 답 찾기

안녕, 나의 창수 씨

by 최선화 Jan 26. 2025


창수 씨는 정말 일만 했다. 

어쩌면 그의 삶의 99%는 노동으로 채워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노동으로 돈을 벌어 가족과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하나의 즐거움이자 자랑이었다. 

20년 전, 환갑이 된 그는 가족들에게 말했다. 

“올해까지만 하고 이제 그만해야지.” 

가족들이 환영했다. 

“그래 아빠, 그동안 고생했으니까 이제 하고 싶었던 거 하고 재미나게 지내요.” 

10년 전, 일흔이 된 그가 가족들에게 말했다. 

“올해까지만 하고 이젠 그만해야지.” 

가족들은 호응했다. 

“그래그래, 아빠 나이에 일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이제 가고 싶었던 곳 다니면서 즐겁게 사세요.” 

며칠 전, 여든을 앞둔 그가 말했다. 

“우리 손주들 세뱃돈만 만들어 놓고 그만해야지.” 

가족들은 이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빠를 제외한 우리 가족은 모이면 모두 질문했다. 

“그는 왜 일만 할까?”
그 질문의 답을 나는 며칠 전 비로소 찾아냈다. 


창수 씨는 가끔씩 언니와 내가 어렸을 때 나누었던 대화를 이야기를 하곤 했다. 이미 그 일화는 여러 번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며칠 전 맥주 한잔 곁들인 외식을 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그가 또 그 이야기를 꺼냈다. 

언니가 일곱 살 때이니 내가 다섯 살 때였다. 그 시절 우리는 ‘선희네’- 집주인 딸 이름이 ‘선희’였다-라고 부르는 집의 단칸방에 세를 들어 살고 있었다. 방 한 칸에 아주 작은 부엌이 달려있는,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문 옆에 놓인 그 방 한 칸이 우리 집이었다. 

어느 날 일곱 살 딸과 다섯 살 딸이 툇마루에 앉아 이야기를 한다. 

“언니, 우리 집은 부자야?” 동생이 묻는다. 

일곱 살 언니는 굉장히 어려운 질문을 받은 것처럼 깊은 생각에 잠긴다. 생각하고 생각한 후에 동생에게 답한다. 

“셋방살이하는데 우리가 무슨 부자냐.”

동생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을 뒤에서 창수 씨가 지켜보고 있었다. 

두 딸의 대화를 듣고는 그는 부와 가난을 생각했고, 자신과 자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결심했다고 했다. 

“예전에는 '비 오면 장사 하루쯤 쉬어도 되지'라고 생각하면서 쉬기도 하고 했는데.... 그날 이후로는 비 와도 나가서 일해야지라고 다짐했어. 쉬어야 한다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웠어.”


외식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날 저녁, 창수 씨가 맥주 한 잔으로 벌게진 얼굴에 함박 미소를 담으며 언니와 나에게 또 그 이야기를 했다. 웃고 넘겼던 여느 때와 달리 나는 목이 메었다. 그의 다짐은 처음 듣는 말이었고, 그 다짐에 이끌려 부모의 시선으로 그 장소와 시간으로 돌아가 두 명의 꼬마가 대화하는 장면을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그는 평생 다섯 살, 일곱 살 난 두 아이의 대화를 마음에 간직하고 살았구나. 언니도 나도 기억에 없는 어느 어린 날의 철없는 대화가 그를 평생 일만 하도록 내몰았구나.’ 그날 내가 언니에게 질문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날 언니가 내게 그 대답을 하지 않았더라면, 창수 씨는 조금은 여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 하나쯤은 하며 살아가지 않았을까. 


오늘은 창수 씨 옆에서 언니에게 다시 질문해야겠다. 
 “언니, 우리 부자야?”
 그럼 언니는 대답할 것이다. 
 “그럼, 우리 부자지. 건강한 부모님도 계시고,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없는 거 빼고 다 있으니 우린 부자지.” 

지금 하는 두 딸의 질문과 답이 아빠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지금은 화석처럼 박제되어 버렸을 45년 전 내가 했던 그 질문을 빼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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