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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정현 Jan 21. 2021

증자의 돼지

아침에 팬케이크를 굽고 있는데 띵똥, 알람이 울렸다. 3년 전 썼던 일기가 편지처럼 날아왔다. 3년 전 같은 날에 나는 팬케이크를 구웠다 한다. 그랬구나, 그날도 팬케이크를 만들었구나. 막 첫 생일이 지난 막내부터 아직 세돌이 안 된 둘째, 유치원에 다니는 첫째까지... 가장 육아에 지치고 힘들었던 시기의 기록이다. 그때도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서 분투했지만, 시간의 여유도 없었고 그만큼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딱 3년만 지나면 뭔가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그때 내가 한국에 없을 줄 몰랐고, 전 세계에 전염병이 퍼질 줄도 몰랐다. 최근의 일상을 되돌아보면, 그래도 한결 낫다.

없는 여유와 시간을 쪼개서 그때도 글을 썼다. 어떤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았을까. 왜 기록했을까. 무엇을 기록했을까. 그날의 기록을 이 공간에 다시 옮겨보면서,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 아등바등했던 3년 전의 나를 생각해본다.


 어느 날 증자의 아내가 시장에 가려는데 그의 아들이 엄마를 따라가겠다고 졸랐다. 증자의 아내는 "집에 있으면 엄마가 시장 다녀와서 돼지 잡아줄게, 착하지?" 하고 아이를 달랜 후 시장에 갔다. 증자의 아내가 시장에서 돌아오자, 증자는 돼지를 잡으려고 발을 묶고 있었다. 증자의 아내가 "돼지를 잡겠다고 한 것은 아이가 떼를 써서 그냥 달래려고 한 말이다."라고 말하자 증자가 답하길,

 "어린아이에게 장난으로라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어린아이는 어버이의 모든 말과 행동을 다 따라 배우게 됩니다. 어버이가 자식을 속이면 자식에게 속임수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한 후, 그는 망설임 없이 돼지를 잡아 삶아버렸다고 한다.


 한비자에 나오는 중국 고사이다. 이 이야기를 처음 읽었던 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중학생이었을 무렵이었다. 이 이야기는 왜인지 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아이와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할 때마다 죄책감이라는 감정의 이름으로 나를 덮치곤 했다.


 나도 증자의 아내와 같은 평범한 엄마다. 떼를 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때로 '그냥' 하는 약속이 생긴다. 공수표를 남발하는 거짓말쟁이 엄마는 아니지만,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다고, 한창 떼를 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서 달콤한 약속들을 내뱉는다. 그때는 이 떼를 진정시킬 수만 있다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그러다 아이가 진정되면, 약속을 지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슬그머니 올라온다. 아이의 치아 건강을 생각하며 원래 약속했던 사탕이나 초콜릿을 둘에서 하나로 줄이기도 하고, 미세먼지와 추운 날씨를 염려하며(거기에 엄마의 귀차니즘이 양념처럼 살짝 더해져) 주말 나들이 계획은 취소되곤 한다.


 며칠 전에는 둘째 아이가 저녁으로 팬케이크를 해달라고 졸랐다. 아니, 아침식사도 아니고 저녁 메뉴로 팬케이크라니.

"저녁에는 밥과 국과 반찬을 먹어야지, 팬케이크는 끼니가 안 돼. 게다가 팬케이크는 오늘 아침에도 먹었잖아."

 이렇게 말하니 그럼 저녁 식사로 밥과 국과 팬케이크 반찬을 먹겠다고 한다. (..........)


 한창 '엄마와 함께하는 요리놀이'에 재미를 붙이던 시기라, 만약 거품기로 반죽을 하고 싶어서 그런 거라면 반찬으로 계란말이를 할 테니 계란을 함께 섞어보자고 꼬셨다. 넘어오지 않는다. 꼭 팬케이크를 드시고 싶단다. 한참을 설득하다 그러면 저녁밥을 다 먹고 후식으로 팬케이크를 만들기로 약속을 했다. 그런데 아이 뒤꽁무니를 쫒아가며 저녁밥을 먹이고, 다 먹은 그릇을 정리하고 설거지하고, 아이들을 씻기고 막내부터 수유하고 재우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밤 9시가 다 되었다. 잘 시간이다. 저녁밥을 다 먹고 배부르고 기분 좋게 제 언니랑 놀던 둘째는 잠을 자기 싫었는지 아니면 그때쯤 허기가 졌는지 갑자기 소리친다.

"아! 우리 팬케이크! 아직 안 만들었어!!!!"


 아이고야. 사실을 고백하건대, 나는 저녁밥을 다 먹은 이후부터 그놈의 팬케이크를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 그러나 저녁을 배부르게 먹고 나니 아이가 대충 까먹은 눈치길래, 이대로 슬금슬금 시간을 때우다가 얼른 재워버리겠다.... 는 것이 내 계획이었다. 내 발등에 도끼를 내가 찍었다. 밤 9시 넘어 아이가 소리친 순간 내 머릿속엔 온갖 생각이 휘몰아친다. 그냥 좀 떼쓰고 울더라도 무시하고 딱 양치시키고 재워버릴까. 애가 좀 반항하기야 하겠지만 결국 잠을 자긴 할 것 아닌가. 이 밤중에 반죽부터 시작해서 팬케이크를 굽다간.... 그거 다 먹고 재우려면 한 시간은 더 있어야 할 텐데. 내 육아 퇴근을 이대로 미루기엔 내가 너무 피곤하다.


 그러나 어쨌거나 이건 아이와 긴 협상 끝에 했던 약속이다. 그리고 나는 엄마라는, 어른이라는 위치를 이용해서 다시 '계약불이행'을 저지르는 증자의 아내가 되려 한다.




 결과는 어찌 되었을까. 결국 우리는 밤 9시에 팬케이크를 구웠다. 반죽을 거품기로 섞는 순간부터 노릇노릇하게 구운 팬케이크를 뒤집을 때까지 시종일관 딸아이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는 야무지게 꿀까지 콕콕 찍어가며 한 판을 다 먹었다. 달큼한 향기가 나는 그 작은 입이 오물오물 케이크를 먹는 모습이 얼마나 예뻤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를 보며 씩 미소 짓는 아이의 얼굴을 볼 때마다,

 가장 행복했던 건 나였다.

 아이와의 약속을 지켜냈다는 뿌듯함, 부모로서 약속을 지키는 모범을 보였다는 자긍심, 육아 효능감이 수직 상승했던 그 뿌듯한 마음으로... 이렇게 없는 시간 쪼개서 일기까지 남겼다.

 

 어쩌면, 아이에게 돼지를 잡아주는 순간 가장 행복했던 건 아이가 아니라 증자이지 않았을까. 삶은 돼지고기를 보고 좋아하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아마 증자는 행복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이 순간을 꼭 기억해주길 바랐을 것이다. 너와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 돼지를 잡은 이 아버지를 기억하며, 너도 신의를 지키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그것이 증자의 바람이기도 하고, 나의 바람이기도 하다.


2018.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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