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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정현 Jan 11. 2021

야누슈 코르착의 <아이들>

아이를 이해하고 싶을 때 펼치는 책이 있다

 

 일요일 오후, 막내의 낮잠시간. 가족 모두가 한 숨 쉬어가는 시간이다.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동생을 돌보고 놀아줘야 하는 의무가 있는, 어느 정도 육아를 분담하고 있는 큰 아이들은 이 시간을 빌려 본인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첫째는 책을 읽고 있었고, 둘째는 어제 아빠가 태블릿에 다운로드한 '인형 옷 갈아입히기 게임'을 하고 싶어 했다. 우리가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종이인형 스티커를 터치식 태블릿으로 할 수 있게 만든 게임이다. "딱 한 시간만 하자. 그리고 이거 다 하고 나면 오늘치 피아노 숙제하는 거야." 아이에게 다짐을 받고 태블릿을 건넸다.


 달달한 모카커피를 냉장고에서 꺼내고 책을 한 권 펼쳤다. 옆 자리에서 게임하는 아이의 효과음이 살짝 귀에 거슬리지만 이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 하루의 십 분의 일이라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으면 감지덕지한 게 엄마의 일상이니까. 흐트러지려는 집중력을 애써 붙잡으며 종이 위의 활자로 시선을 옮긴다.


 그런데 첫째는 그게 잘 안 되었나 보다. 읽고 있던 책을 덮고 "나도 그 게임해보고 싶다."며 동생 옆으로 간다. 둘째는 흔쾌히 언니도 같이 하자며, 나 한 번 언니 한 번 차례를 나눈다. 민머리 나체의 살구빛 종이인형은 아이들 손 끝에서 근사한 공주님으로 재탄생한다. 가상의 옷장에 들어있는 인형 옷 중에는 돈을 지불하거나 15초 광고를 봐야만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들도 있다. 그래도 아이들은 절대 기본 아이템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예쁜 공주님을 위해 기꺼이 광고 버튼을 누르며, 15초에 맞춰 칼 같이 스킵 버튼을 눌러 아이템을 획득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아이들답다.


 엄마와 약속한 한 시간은 생각보다 훌쩍 지나갔다. 아직 스스로 시계를 볼 줄 모르는 나이라 엄마가 마감시간 5분 전에 미리 경고를 해줘야 한다. "이제 슬슬 게임 그만하고 피아노 숙제해야지." 언니와 차례를 바꿔가며 절반씩 게임을 했던지라 둘째는 좀 아쉽다. "엄마, 지금 언니가 꾸미고 있는데 언니 차례 끝나고 나 한 번만 더 하고 끝내면 안 돼?" 나도 그 정도도 용납 못하는 무정한 엄마는 아니다. 그러라고 허락해줬다. 그리고 거실에 계속 울려 퍼지는 15초 광고음을 같이 인내하며 듣는다. 시계를 흘긋 보고, 아이의 얼굴도 흘긋 본다. 아이는 옆에서 따갑게 내리 꽂히는 엄마의 시선을 느끼며, 화면 위의 공주님을 예쁘게 꾸미는 데 여념이 없다.


 그런데 일이 터졌다. 약속한 대로 게임을 끄고 마무리하려는 순간, '저장하시겠습니까?' 버튼에 아이가 '아니오'를 눌러버린 것. 왜 손가락이 거기로 삐끗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직 한글 읽기가 서툰, 곧 여섯 번째 생일을 앞둔 둘째의 미숙함일 수도 있고, 엄마의 눈치가 보여 빨리 게임을 끝내야 한다는 긴장 때문일 수도 있고, 그냥 일이 그렇게 될 운명이었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어찌 됐건 아까 꾸민 공주님은 영영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진짜 종이인형과 데이터 종이인형의 숙명의 차이란 이런 걸지도. "지금 꾸민 공주님이 제일 예쁜 공주님이었는 데에!!!!!" 망연자실하게 태블릿을 손에 든 둘째가 대성통곡을 한다.


 울 수 있다. 그럼, 울 수 있다. 충분히 속상할 만한 일이다. 아이는 아직 어리다. 저 어린 마음에 속상해서 울 수도 있지. 그런데 울음을 들으니 슬슬 짜증이 몰려온다. 저 울음은 좀 심하다. 귀가 쨍하고 울릴 정도로 높은 데시벨의 짜증스러운 소음이 거실을 가득 채운다. 징징거림도 아니고, 흐느낌도 아니고, 그보다는 좀 더 분노가 섞인 울음. 내가 아이에게 버럭 소리 지를 때의 고함소리와 닮았다. 영어로는 tantrum이라고 하는 이 울음에 대한 적확한 단어가 존재하는데 한국어에는 정확히 대응하는 단어가 없다. 위로해 줘야 하나. 그런데 저걸 어떻게 달래지.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그리고 내가 예전에 배운 바로는 저런 발작적인 울음에는 어떤 위로의 말도 소용이 없다. 잠시 가만히 놔둬야 한다. 스스로 조금 사그라질 때까지.


 하아, 그런데 엄마도 사람인지라 비명 가득한 울음소리를 그대로 듣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너, 있잖아. 슬픈 건 알겠는데, 네 울음소리를 계속 듣고 있자니 내 속도 부글부글 끓어오를 것 같거든. 거실에서 이러지 말고 놀이방에 가서 마음 좀 가라앉히고 올래?"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놀이방에 들어간 아이가 계속해서 고함을 지르고 발을 구르더니 이윽고 장난감을 집어던지는 소리가 난다. 어허, 이건 아니지. 혼자 마음 가라앉힐 시간을 주겠다던 엄마는 방문을 벌컥 열어젖힌다.


 꺼이꺼이 울면서 이미 격한 감정에 휩싸여 제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 뱉는 아이는 엄마의 훈계를 듣는다. 아무리 네가 화가 났어도, 해도 되는 행동이 있고 안 되는 행동이 있다. 아니, 애초에 이게 이렇게까지 심하게 울 일이 아니다. 그거 말고 다른 종이인형 그림은 다 저장 제대로 했잖아? (그렇지만 마지막에 만든 게 제일 예뻤단 말이야!) 내일 또 자유시간에 게임할 수 있고, (내일은 지금 당장이 아니잖아!) 더 예쁘게 만들면 되잖아. (내일 만든 게 더 예쁠지 아닐지 어떻게 알아!) 훈계하는 엄마와 항변하는 딸의 말싸움. 아이는 계속 울음을 삼켰다 뱉었다 하면서 제대로 된 의사소통도 불가능한데, 나는 이 고집을 어떻게든 꺾고 싶어서 미치겠다. 아이는 고개를 돌렸다가, 입을 샐쭉 히 내밀고 침묵하다, 또 어쩔 때는 말대답을 하다가 나를 원망스럽게 쳐다보며 말한다. "엄마, 나 좀 혼자 있게 해줘."





 아이랑 싸우고 나면 성경처럼 펼쳐보는 책이 있다. 내 마음이 힘들 때는 성경을 펼치고, 왠지 사랑이 고플 때는 시집을 펼치는데, 아이를 이해하고 싶을 때는 이 책을 펼친다. 야누슈 코르착의 <아이들>. 아무 문장이라 걸려라 하고 무작위로 책을 확 펼쳤는데 60-61페이지가 나왔다. 이 책은 참 기묘하게도, 마치 내가 일부러 꾸민 것처럼 이런 문장을 떡 하니 던져준다. 


어른들은 가끔 울음의 의미를 이해하기보다는 울지 않는 아이를 원합니다. 그것은 잔혹한 일이지요.


이 작은 폐, 이 작은 심장과 작은 두뇌가 어떻게 이렇게 힘든 일을 감당하는 걸까요?


 페이지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반복해서 읽는다. 책을 읽고 문장에 감화되어 부처의 마음으로 아이의 울음을 넓은 마음으로 감싸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좋은 엄마가 아니다. 그보다는 더 이기적이고 나쁜 엄마다. 나도 힘들다고, 나도 사람이라고, 끝없이 자기 항변을 한다. 그러니까 그냥 계속 읽는다. 시구를 읊조리듯이. 두 문장을 반복해서 열두 번쯤 읽고, 그만큼 읽었는데 부족한 것 같아서 서너 번 더 읽고, 그다음에 침묵하면서 내 마음을 다시 들여다본다. 아이 마음도 상상해보려고 애쓴다. 그 사이 놀이방은 이제 조용하다. 아이의 울음이 멈춘 것 같다. 


 빼꼼히, 아까보다는 좀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어본다. 아이는 만화책을 읽고 있다. "잠깐 책 옆에 두고 엄마랑 얘기할 수 있을까?" 아이는 싫다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럼 엄마가 딱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하고 조심스럽게 말을 더 붙여본다. 아이가 나를 쳐다본다. "아직도 많이 슬퍼?" 


 아이는, 여전히 슬프긴 하지만 아까처럼 슬프지는 않다고 대답한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하니까 또 슬퍼질 것 같아서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딱 하나만 물어보겠다던 엄마는 오늘도 약속을 어기고 추가 질문을 던진다.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나면, 오늘처럼 또 화가 많이 날 것 같아?" 


 아이는 잠깐 생각하는 듯싶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게 소리 지르거나 화내지 않도록 다음에는 노력해볼게. 그런데 나는 아이니까, 나는 아직 어려서 똑같은 일이 또 일어나면 눈물 한두 방울은 뚝뚝 떨어질 것 같아. 그렇게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건 나도 어쩔 수가 없어." 


 "맞아, 넌 아이니까." 하고 내가 대답하며 팔을 벌렸다. 아이가 내게 성큼 다가와서 안겼다. "다음에 또 비슷한 일이 일어나면, 그래서 눈물을 뚝뚝 흘리게 되면 엄마가 오늘처럼 꼭 안아주면서 달래줄게. 네가 그렇게 슬퍼서 우는 건 엄마도 공감할 수 있고 위로해 줄 수도 있어. 그런데 아까처럼 소리 지르고 화내면 엄마도 같이 화가 나서 힘들어. 아직 너는 어리니까 네 마음을 조절하는 게 많이 어려울 수 있지만, 우리 오늘 힘든 거 겪어봤으니까 다음에는 그러지 않도록 노력하자. 엄마도 더 참을성 있게 널 보듬을 수 있도록 노력할게." 


 이런 닭살스런 대화를 하고 꼭 안아주는 것으로 마무리. 아, 이 정도면 훈훈했다. 오늘도 나의 성경책은 제 역할을 한 것 같다. 아이는 꼭 안은 엄마의 품을 벗어나 만화책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나 조금만 더 혼자 있어도 돼?" 하고 묻는다. 아이를 품에서 놔주고, 방문을 향해 일어서 나가다가 나는 문득 생각난 듯(그러나 사실 아까 한참 전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질문을 건넨다. 


"근데, 피아노 숙제는 언제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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