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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정현 Dec 29. 2020

다둥맘의 멀티 페르소나

나이도, 성별도, 성격도 다 다른 세 아이들

 전업주부인 아내는, 일단 나와 상황 자체가 다르다. 매일 24시간을 아이들과 붙어 산다. 다들 개성이 뚜렷한 아이들이다. 말썽을 피워도 일관된 패턴이 있어야 하는데 적어야 네 가지 패턴이 존재하는 셈이다. 그 네 가지 패턴에 맞춰 아이들을 접하다 보면 정신상태가 엉망이 된다. 엉망인 심정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는데 아이들이 그럴 리가 없다.

박철현 저, <어른은 어떻게 돼?> 중에서


 내게 육아가 왜 힘드냐고 묻는다면, 익숙해질 만하면 레벨업 된 새로운 보스가 나타난다고 말하겠다. 신생아 때는 한두 시간 간격으로 배고프다고 보채는 아기를 돌보는 데만 온 에너지를 빼앗긴다. 아기의 백일이 가까워지며 잠을 좀 길게 자는가 싶으면 뒤집기를 하면서 깬다. 조금 더 커서 신체적인 능력이 향상되고 되집기가 가능해지면 드디어 통잠을 자나 싶은데 이가 새로 난다고 수시로 깬다. 육아의 필수 파트너였던 노리개 젖꼭지는 때가 되면 영원한 이별을 고해야 할 금지물품이 되고, 온갖 잡다한 재료를 넣어 푹 끓여주기만 했던 종합 영양식품 이유식은 밥, 국, 반찬의 삼종세트로 변모하면서 편식 없이 다양한 재료를 먹게끔 식습관도 관리해줘야 한다. 사탕과 초콜릿에 대한 적절한 통제력을 가르쳐주며 치아위생관리도 해줘야 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주관이 뚜렷해지고 언어적인 표현이 가능해지는 나이가 되면 속마음도 적절히 헤아려줘야 한다. 아이가 자라는 만큼 부모의 육아도 변해야 한다. 육아는 끝없는 레벨업의 연속이다.


 삼 남매를 키우는 내 경우에는 세 개의 각기 다른 레벨이 존재한다. 열 살, 여섯 살, 네 살이라는 또렷한 숫자로 드러나는 객관적으로 수치화된 레벨이 존재하고, 남들은 모르나 나만 알고 있는 각자의 기질과 성격에 따른 레벨이 또 따로 존재한다. 첫째 여섯 살 때쯤에는 이런 전략이 유효했는데.... 하며 그맘때 나이의 둘째에게 그대로 써먹다간 망한다. (거듭 게임에 비유하자면) 맵이 바뀌면서 최종 보스의 속성도 달라지는지라, 예전에는 나무의 속성을 가진 보스에게 불의 공격이 유효했다면, 새로 등장하신 불의 속성 보스에게 불 공격을 써먹으면 대화재의 참사가 발생한다. 문제는 내게 다른 속성의 공격 스킬이 없다는 것. 쪼렙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얼마 전에 외동을 키우는 엄마들이 '아이를 여럿 키우는 건 어떤 느낌이냐고' 물어왔다. 나는 '나눌 수 없는 사랑을 나눠야 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형제가 많은 아이가 외동 같은 사랑을 받고 자란다는 게 애초에 불가능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아이를 하나만 키웠을 때는 한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었고, 그 아이만 바라보면 되었고, 그 아이에게 맞춰 나를 바꿔나가면 되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온전히 한 아이에게만 사랑을 줄 수 없고, 아이들 나이에 따라 성격에 따라 다 다르게 아이들을 상대해야 한다. 무엇보다 일관된 하나의 원칙만을 고수할 수는 없다. 하나의 원칙이 누군가에겐 약이지만 누군가에겐 독이 된다.


 첫째는 이제 4학년인 만큼 스스로 자기 앞가림을 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자기가 입은 옷가지는 스스로 정리하고, 먹은 식기는 스스로 정리해서 설거지통에 넣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아직 여섯 살인 둘째는 국물이 남아있는 그릇은 부엌까지 흘리지 않고 옮기지 못하기 때문에 그럴 때는 엄마가 대신 정리해준다. 막내는 아직 싱크대에 손에 닿지 않으니 열외다.

 그렇지만 뭐든지 어른의 도움 없이, 하나부터 열까지 자기 힘으로 일을 완수하길 좋아하는 둘째는 엄마가 도와주겠다고 손을 내밀 때마다 울 것 같은 표정을 한다. 자존심이 상한다는 거다. 자기도 어떻게든 혼자서 해보고 싶어 한다. 네가 정 그러길 원한다면 해보라고 허락해줬는데, 그릇을 옮기다가 국물을 옷에 흘렸다. 괜찮다고, 너는 여섯 살이니까 아직 실수할 수 있다고, 옷은 빨면 된다고 얘기했는데도 이미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은근히 완벽주의자 성향이 있어서 이렇게 하나라도 틀어지고 망쳤다고 생각되면 마음을 푸는 데 한참 걸린다. 그에 비해 대충 80퍼센트만 엇비슷하게 맞추면 된다고 생각하는, 완성의 기준이 나와 현저하게 다른 첫째와는 다른 면에서 부딪힌다. 첫째에게는 흔들림 없는 규칙과 기준의 선을 분명하게 제시해 줄 필요가 있고, 원칙주의자인 둘째에게 섣불리 '규칙' 따위의 말을 제시하면 생각지도 못한 데서 부작용이 나타난다. 문제는 한 집안에서 두 아이에게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하다 보면 '이건 불공평하다'는 볼멘소리가 튀어나온다. 게다가 아직 어려서 이 모든 규칙에서 열외인 '깍두기' 막내의 존재는... 공평함을 원한다면 이미 시작부터 글렀다.



 언젠가 내 손윗형제인 오빠와 서로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다 보니 오빠에게 이런 억울함이 있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워낙 영민했던 오빠는 친정엄마와 나는 전혀 기억도 못하는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를 하나하나 시시콜콜하게 기억해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곤 하는데,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이후에 자라는 아이를 보며 어린 시절을 떠올리다 보니 그때의 억울했던 기억들이 문득문득 생각난다고 했다. 어른이 되고 보니 사실 그게 당연한 거였는데. 나이 차이가 나니까 일단 기준이 다르고 기대하는 게 다른데, 첫째 입장에서는 동생은 되고 나는 안 되는 그런 상황이 반복되는 게 그렇게 섭섭했다고. 어쩌면 우리 첫째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을까. 그런 억울함이 한 겹 두 겹 쌓여서 두터워지기 전에 엄마가 먼저 알아차리고 한 번씩 토닥이며 녹여줘야 할 텐데... 그런데 그걸 또 일일이 신경 쓰며 맞춰주다 보면 엄마의 정신상태가 엉망이 된다. 사실 능력 밖의 일이기도 하고.


 여러 명의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들 모두 다 온전히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들게 만드는 건 어쩌면 불가능한 영역일지도 모른다. 다들 부모의 사랑은 무한하다고 말하지만, 그 사랑은 무한할지언정 에너지는 유한하다. 그 에너지를 아주 공평하게 1/n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무래도 어린애들에게 조금 더 신경을 쏟게 된다. 게다가 이 꼬마 몬스터들의 속성이 나랑 상극일 때도 있고 상생일 때도 있어서 나름 공평하게 대한다고 해도 그 결괏값은 예측 불허하다. 그리고 이 서툴고 투명한 엄마의 기술이 아이들의 눈에 빤히 보일 때면, 불만이 생긴 아이들은 이렇게 외친다.


"엄마는 나보다 ㅇㅇ이를 더 사랑하지?!?!?!?!"


 이것은 진짜 그야말로 매직워드(Magic Word). 엄마의 마음에 비수처럼 날아와 꽂힌다. 순간 엄마의 눈빛은 흔들리고 그걸 포착하는 아이들의 눈은 날카롭다. 엄마가 자신에게 하는 말에도 민감하지만 다른 형제에게 하는 말뿐만 아니라 몸짓, 눈빛, 소통하는 모든 도구를 옆에서 빤히 쳐다보며 엄마를 쥐고 흔든다.


말썽을 피워도 일관된 패턴이 있어야 하는데 적어야 네 가지 패턴이 존재하는 셈이다. 그 네 가지 패턴에 맞춰 아이들을 접하다 보면 정신상태가 엉망이 된다. 엉망인 심정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는데 아이들이 그럴 리가 없다.


 도쿄에서 네 아이를 키우는 작가, 박철현의 에세이를 읽다가 울컥 눈물이 날 뻔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내 정신상태만 피폐한 게 아니었구나, 하며 위로가 되었다. 어차피 이럴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나는 그냥 차별주의자 멀티 페르소나 엄마로 살아야지. 세상에 완전무결한 공평함이 어딨겠나. 일단 너희부터가 나를 공평하게 대하질 않는데.


 나이도 성별도 성격도 다 다른 세 아이들. 그렇지만 또 아이들이 저마다 다 달라서 아이들로부터 여러 가지를 배운다. 제발 날 좀 혼자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 싶은 엄마 껌딱지의 시기가 지나면, 제발 엄마랑 같이 시간 좀 보내자고 바짓가랑이를 붙잡게 되는 사춘기의 시기가 온다. 굳게 닫힌 큰애의 방문을 보다가, 빼꼼히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동생들의 얼굴을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한 아이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답답하다가도, 다른 아이의 기차 화통 삶아먹은 듯한 고함소리를 들으면 저 적막함과 고요함이 고맙다. 아이들마다 각기 다른, 저 오락가락하는 패턴을 롤러코스터 타듯 경험하고 나면 결국 하나의 결론에 다다른다.


아이 키우는 데 정답이 어디 있겠나. 그냥 키우는 거지.


박철현 저, <어른은 어떻게 돼?>,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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