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필사 첫날, 그리고 백 아흔 번째 날 다시 만난 시.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 박준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배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하도 이를 악물고 살아서 턱관절 치료를 받았던 경험이 있어요. 마지막으로 철봉에 매달려 본 게 언젠가 싶게 까마득한데, 정말 나는 더 이상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하는 '어른'이 되어버렸습니다. 때때로 이를 악물어야 하더라도 오래 생각하면 제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사람들을 생각해봅니다. 늘 그들을 떠올릴 때면 선연히 떠오르는 첫 모습은 웃는 얼굴인데, 왠지 눈가에는 눈물이 고이는 표정이 떠오르네요. 그래서 시인은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두는 눈동자라고 말한 걸까요.
어릴 때부터 잘 우는 아이여서 저는 제가 눈물이 많은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눈물이 많은 건 사실인데 어른이 될수록 눈물이 사람과 장소를 가려서 나오더라고요. 울고 나면 창피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나이를 더 먹다 보니 제 약한 모습을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어서 이를 악물고 울음을 꾹 참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솔직하게 눈물을 흘려도 되는, 슬픔을 내비쳐도 되는 사람 앞에서는 더 무장해제가 되곤 합니다.
남편은 저보고 그만 좀 울라고 하는데, 저는 '네 앞에서 안 울면 내가 누구 앞에서 울겠니.' 하면서 그냥 좀 가만히 우는 거 내버려 두고 가만히 봐달라고 부탁해요.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시인의 말을 곱씹어 생각하다 보면 위로가 됩니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등을 토닥여주고 휴지 한 통 내밀어주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