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울어줄 수 있는 사람

시 필사 첫날, 그리고 백 아흔 번째 날 다시 만난 시.

by 주정현


박준 시인의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는 작년 2월, 필사 모임을 시작하는 날 처음으로 나눴던 시다. 그리고 모임을 시작한 지 361일 만에 다시 한번 같은 시를 나누게 되었다. 여름부터 필사 모임에 합류했던 J님이 이 시를 보내주셨는데, 처음 받았을 땐 이미 필사했던 시라고 생각해서 "보내주신 시들 중에 박준 시인의 시는 지난 1기 모임 때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이번 모임에서는 함께 보내주신 다른 시만 배달할게요."라고 말씀드렸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1기에서 9기까지, 1년 동안 모임을 운영하면서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이 바뀌었다. 1기 모임에서 함께했던 분들 중 지금까지도 필사 방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세어보니 나를 포함해서 다섯 명뿐. 전체의 30퍼센트도 안 되는 인원이다. 그래서 대다수의 멤버들에겐 이 시가 새로울 테니 다시 한번 이 시를 나눠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예전에 이 시를 읽었던 사람들에게도 1년이라는 시간이 그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다시 읽으면 그때와 다른 감상이 떠오르지 않을까. 그래서 작년 겨울 그리고 올해 겨울, 같은 시를 배달하게 되었다.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 박준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배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사실 1기 첫 모임 때 이 시를 고른 멤버는 나였다. 이를 악물어야 했던 과거의 삶이 떠올라 마음에 와닿았던 시였다. 1년 전 내가 남긴 단상을 다시 읽어보니 역시 '이를 악물어야 했던', '그래서 턱관절에 병이 생길 정도로 이를 악물었던' 과거에 대해 적혀있다.


하도 이를 악물고 살아서 턱관절 치료를 받았던 경험이 있어요. 마지막으로 철봉에 매달려 본 게 언젠가 싶게 까마득한데, 정말 나는 더 이상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하는 '어른'이 되어버렸습니다. 때때로 이를 악물어야 하더라도 오래 생각하면 제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사람들을 생각해봅니다. 늘 그들을 떠올릴 때면 선연히 떠오르는 첫 모습은 웃는 얼굴인데, 왠지 눈가에는 눈물이 고이는 표정이 떠오르네요. 그래서 시인은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두는 눈동자라고 말한 걸까요.


어느 날 턱뼈가 얼굴뼈에서 탈골이 되어 입이 벌어지지 않아 병원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내 나이가 스물일곱이었다. 엑스레이 사진 속의 내 턱뼈는 너무 악물어버린 이 때문에 다 갈려있었다. 갈리고 갈리고 갈려서, 얼굴뼈에 걸려 있어야 하는 부분이 다 마모되어버리자 그만 쑥 빠져버린 것이다. 의사 선생님은 엑스레이 사진을 보시고 이 정도로 뼈가 마모되려면 하루 이틀 이를 악물어서 되는 게 아니라고, 아마도 나는 십 년 넘게 이를 악물며 살아왔을 것이라고 했다.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것이 더 이상 자랑이 되지 못하는 나이 무렵부터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꾸준히 이를 악물며 살아온 것이다.


그때 마음이 참 많이 힘들 때였다. 아마 그래서 더 이를 악물고 버티며 사느라 드디어 마지막 끈이 툭, 끊어진 것이었겠지. 치과 의사 선생님은 이것은 습관의 병이기 때문에 일상을 조금씩 바꿔야 한다며 나의 시시콜콜한 생활에 대해 하나씩 질문을 던졌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언제 힘들다고 느끼는지, 잠은 편안하게 자는지 등등. 간단한 일상 이야기만 나누고서도 의사 선생님은 "아이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를 악물지 않고는 살 수 없었겠네요."라고 위로를 건넸다.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나사 풀린 사람처럼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다. 그 눈물은 상담센터에 더 어울리는 눈물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치과가 아니라 상담센터를 갔어야 했다. 아, 아니다. 그때도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센터에 가긴 했었다. 내 자리가 내담자가 앉는 자리가 아니라 상담자가 앉는 자리라는 게 달랐을 뿐.


1년 만에 그 단상은 조금 바뀌었다. 병원에 갔던 것도 어느새 10년 전의 일이다. 지금 그 치과에 가면 또 그렇게 왈칵 울음을 터뜨릴 수 있을까. 그새 나는 남들 앞에서 울음을 아끼는 사람이 되었다. 눈물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잘 우는 아이여서 저는 제가 눈물이 많은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눈물이 많은 건 사실인데 어른이 될수록 눈물이 사람과 장소를 가려서 나오더라고요. 울고 나면 창피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나이를 더 먹다 보니 제 약한 모습을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어서 이를 악물고 울음을 꾹 참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솔직하게 눈물을 흘려도 되는, 슬픔을 내비쳐도 되는 사람 앞에서는 더 무장해제가 되곤 합니다.

남편은 저보고 그만 좀 울라고 하는데, 저는 '네 앞에서 안 울면 내가 누구 앞에서 울겠니.' 하면서 그냥 좀 가만히 우는 거 내버려 두고 가만히 봐달라고 부탁해요.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시인의 말을 곱씹어 생각하다 보면 위로가 됩니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등을 토닥여주고 휴지 한 통 내밀어주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단상을 쓴 일이 무색하게도, 나는 바로 다음날 가족이 아닌 타인 앞에서 울컥 울어버렸다. 눈물에 대한 방어전선을 그동안 잘 구축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툭, 하고 터져 나와버렸다. 아유, 남들 앞에선, 밖에선 이제 눈물을 아끼겠다고 결심했는데. 심지어 나 제법 눈물을 잘 참는다고 그렇게 공개적으로 자랑도 해버렸는데.


그 부끄러움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는지 "아, 나 왜 이러지. 정말 주책이야. 나 왜 울지."하고 상대방이 말했다. 애써 내 앞에서 눈물을 참으려고 하는데, 아니라고, 괜찮다고, 슬프면 울어도 된다고 말하는 내 눈에 눈물이 왈칵 고였다. 그렇다. 그 눈물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내 슬픔은 꾹꾹 눌러 담아서 잘 참을 수 있는데, 나만 힘든 거면 이를 악물어가면서도 마음의 빗장을 잘 잠글 수 있었는데, 누군가 내 약한 마음을 건드려도 눈물은 안 보일 자신이 있었는데,


내게 솔직하게 마음을 풀어놓은 타인의 눈물 앞에선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눈물이 서리서리 마중을 나갔다.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사람' 앞에서는 눈물이 더 쉽게 나오는 법이었다.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서로의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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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1년 만에 같은 시를 배달하자, 1기부터 쭉 필사 모임을 개근하고 있는(이달 말에 개근상이라도 드려야 할까 봐요) 이진민 작가님은 "음? 복습이다!"라고 답장을 보내주셨다. 나는 "복습 및 심화학습 가능합니다"라며 심화학습자료(?)로 이진민 작가님의 글을 링크했다. 같은 시를 읽고 이렇게 다른 글이 나올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굉장히 좋아해서 두고두고 읽는 글. (전체 조회수 중에서 20회 정도는 제가 클릭한 거예요ㅋㅋ)

https://brunch.co.kr/@jinmin111/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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