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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하지 않은 두 개의 문

<욕구들>에서 만난 문장

by 주정현 Nov 24. 2024


아이비리그 대학 졸업을 1년 앞두고 있던 나는 전에는 생각도 할 수 없었던 기회의 풍경을 마주하고 있었다. 겨우 10년이나 20년 전만 해도 여자들은 절대 들어가지 못하게 잠가두었던 문들이 갑자기 활짝 열려 있었던 것이다. (중략) 이런 모든 자유는 복되고 멋진 것이었지만 내게는 또 그만큼 억압적이고 심지어 (물론 당시에는 입 밖에 내어 표현할 수 없었지만) 약간은 부당한 것으로도 느껴졌다. 그런 자유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에 관해 내가 품고 있던 불분명하지만 뿌리 깊은 일련의 감정들과 모순되는 것 같았다고 할까.

캐럴라인 냅, <욕구들> 25쪽


 어머니 세대와는 다른 모양으로 삶을 꾸려갈 수 있게 된 우리 세대의 딸들. 그 기회를 버리고 전통적인 모습의 여성으로 살아가는 내가 바보 같게 느껴질 때도, 그래서 문득 서러워질 때도 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여전히 우리는 여자로 살아가는 일과 나답게 살아가는 일이 충돌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나는 활짝 열린 자유의 문 앞에서 두 가지 길을 동시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하고 만다.


 남성의 길에는 그 두 가지 문이 직렬로 나 있고, 여성의 길에는 그 두 가지 문이 병렬로 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여성과 달리 남성의 세계에서는 가정을 꾸리는 것과 사회적 영역에서의 성취, 이 두 가지가 서로 충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와 다르게 여성의 문은 외따로 떨어져 있다. 두 개의 문 사이의 거리는 직업의 속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두 개의 문을 다 열기 위해 남들의 두 배를 달리는 사람을 우리는 워킹맘이라고 부른다. 몇몇 운이 좋은 워킹맘들 중에는 가까스로 찾은 베이비시터나 가까운 친인척에게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의 문 열쇠를 맡겨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열쇠의 주인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수행하느라 두 배로 바빠지기도 한다.) 우리는 아예 하나의 문을 열지 않은 사람을 비혼주의자라고 부르고 그 반대의 문을 열지 않은 사람을 전업주부라고 부르는 것 아닐까.


 워킹맘의 세계에서 전업주부의 세계로 넘어온 지 올해로 딱 10년이 되었다. 아이를 낳으며 잠가두었던 나의 문이 다시 활짝 열릴 수 있는 날이 과연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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