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의 선물 2

삼베학교 에피소드.11-2

by 루화


은은한 햇살이 들어오는 스승님의 작은방.

방 한쪽에 오래된 전통베틀이 놓여있다.


바구니 안의 담긴 삼꾸리와 보자기에 싸인 삼떡.

오래되었지만 무게감 있고 튼튼해 보이는 물레도 눈에 들어온다.


스승님은 기다랗고 넓은 한복상자를 열어 그 안에 담긴 여러 새의 바디를 하나씩 꺼내 보이신다.


“찌금(칼집)이 새 수로 나있다. 이건 찌금이 여섯 개 나있으니 엿새 바디, 요래 십자로 나있는 건 열새 바디. 여덟 새부터 한문으로 표시한다. 구분이 가지?”


칼집을 내서 숫자를 표시한 정겨운 방식이 도구들이 더 따뜻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지게끔 한다.


“우와, 바디살이 엄청 촘촘해요.”


“여덟새와 아홉새를 대봐, 차이가 있지?”


“네. 촘촘함이 미세하게 다르네요.”



스승님은 눈을 반짝이는 제자에게 도구 사용법을 하나하나 알려주신다.


“자, 이번엔 매듭하나 알려줄게.”


날실이 끊어지면 잇는 방법을 손수 선보이신다.


“짜다가 날실이 끊어지면 이 매듭법으로 매듭을 지고 풀솜으로 가닥을 붙여주는 거라. 자, 이 삼실도 가져가서 집에서 연습해 봐라.”


나는 귀한 재료들을 선물처럼 받아 들고 스승님의 작은방을 천천히 둘러본다. 그때, 책장에 꽂혀있는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온다.


책의 겉표지에 [작업일지]라고 쓰여있는 두꺼운 책을 꺼내 들었다.


“이건 내가 김점호 선생님께 배울 때 일지를 기록한 거다.”


“세상에, 엄청 두꺼워요.”


“5년을 배웠는데 배울 때마다 일지를 기록했으니 이리 두껍지.”


지금은 돌아가신 김점호 선생님께 삼베 짜기를 전수받고 스승님이 소장한 보름새 바디로 김점호 선생님은 보름새 직물을 세필이나 짜셨다고 한다. 보름새는 열 닷새 직물로, 마치 명주처럼 가늘고 부드럽게 삼실을 째고 삼아야 한다.


“이젠 삼 농사도 그리 많이 안 지으니 보름새 직물을 짜기도 더 어려워졌지.”


보름새 직물을 짜려면 밭에서 삼을 수확할 때부터 아주 가늘고 고운 삼을 밭마다 다니며 고르고 골라야 짤 수 있을 만큼 아주 귀한 직물이다.


나는 스승님의 일지를 천천히 넘겨본다.

삼베를 짜는 전 과정을 성실하게 기록한 스승님의 일지를 보며 나도 배움 일지를 열심히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스승님, 이게 뭐예요?”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다 뭔가 바닥에 툭 떨어진다.


“그게 거기 있었네.”


곱게 말린 붉은 단풍잎.


“내가 예전에 말려 논거다.”


스승님의 고향에 내리쬐는 햇빛을 받아 붉어진 빛깔이 고혹하게 빛난다.


“하나 가져가라. 선물이다.”


스승님,

저 배가 불러요. 마음도 이만큼 불러요.


나는 집으로 돌아와 붉은 단풍잎을 내가 좋아하는 책 사이에 꽂아두었다.


스승님, 그 어떤 상장보다도요. 그 어떤 재료보다도요. 스승님이 곱게 말려 책 사이에 끼워 둔 이 단풍잎이 더 귀해요. 가장 귀해요.


감사합니다. 스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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