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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크티 Feb 28. 2022

기관투자자에게 공모주를 맡겨도 될까요?

수요예측 참가 기준 마련, 기관투자자 증거금제도 부활 등 논의

LG에너지솔루션을 통해 그동안 공모주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에서 만연했던 여러 불합리한 점들이 발견됐습니다. 특히 일반투자자들은 청약 신청금액의 50%를 증거금으로 내는데 기관투자자들은 돈 한 푼 없이 청약에 참여할 수 있는 거였죠. 그렇다보니 순자산 1억원짜리 펀드를 운용하는 A운용사가 수요예측에서 9조5625억원의 주문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 수요예측에서 1경5203조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 주문금액이 나온 배경입니다.



투자자들은 분개했습니다. 비단 '증거금'을 내지 않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증거금이 없으니 기관투자자들이 막무가내 식 청약을 하게 되고, 공모가가 최상단 또는 최상단을 초과하는 가격에서 결정되는 것에 명분을 제공해왔습니다. 일반투자자들은 기관투자자 '허수 청약'의 산물인 높은 공모가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야 금융당국은 관련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기관투자자의 증거금이 없어진 건 2007년부터입니다. 그전에는 기관투자자도 개인투자자처럼 청약 신청금액의 50%를 증거금으로 냈습니다. 하지만 당시 공모주 시장이 침체되고, 규모가 작은 운용사의 참여도 제한적이라는 의견이 나오면서 금융당국은 기관투자자의 청약증거금 제도를 폐지했습니다. 청약증거금은 사실 '청약을 실제로 하겠다'는 담보의 개념인데요. 만약 수요예측에서 공모주를 배정받고도 청약을 하지 않아 실권이 나오면 해당 물량은 주관 증권사가 책임지고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당시 청약증거금을 없앨 땐 시장의 반발이 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관투자자와 증권업계는 반겼죠. 과거에는 공모주 투자가 이렇게 수익이 많이 나는 수단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요예측이 시장의 원리대로 잘 돌아가는 듯 보였습니다. 오히려 증거금이 없으니 더 많은 기관투자자가 참여해 시장의 가치에 부합하는 더 적합한 공모가가 형성될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공모주가 돈이 되는 시장이 되면서 공공선이 무너졌습니다. 기존에도 일부 부자들은 사모펀드를 만들어 이를 통해 많은 공모주를 배정받고 쏠쏠한 수익을 거두곤 했습니다. 그런데 공모주 시장에 많은 자금이 쏠리면서 경쟁이 치열해진 겁니다. 이런 작은 사모펀드 운용사들은 1주라도 더 배정을 받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수량을 적어넣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규제할 자본시장법은 없거든요. 실제로 LG에너지솔루션 기관 청약에서 10곳 중 8곳이 청약 최대치인 9조5625억원을 써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운용사들의 도덕적 해이와 더불어 증권사들도 책임이 있습니다. 주관사인 증권사가 공모주 물량 배정에 있어 상당히 많은 '재량권'을 행사한 것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 배정 결과를 보면 똑같이 9조5625억원의 주문서를 낸 A 운용사는 900주를 받았고, B운용사는 487주를 받았습니다. 또 다른 C운용사는 500주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본금과 순자산, 주문금액 등 정량적 평가 기준 가운데 어느 것도 실제 배정에 일관되게 적용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 작은 운용사들은 "일단은 최대한 많은 물량을 적어내는 방법밖에 없다"고 항변하기도 합니다.



외국계 투자은행(IB)은 보호예수 기간도 없이 많은 물량을 받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외국계 IB의 '담함'이라는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주관사의 경우 향후 글로벌 IB 업무를 할 때 외국계 IB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때를 위해 공모주 배정 시 외국계 IB에게 다소 특혜를 준다는 건데요. 만약에 보호예수 기간을 설정하지 않았다고 공모주를 한 주도 주지 않으면 외국계 IB들이 담합해서 "저 증권사는 우리한테 물량을 안 주니까 앞으로 다른 공모주 청약에도 참여하지 말고 도와주지 말자"라고 할 수도 있다네요. 소위 돈이 되는 고객의 편의를 봐주는 식인거죠. 보호예수 기간을 설정하지 않아도 증권사에서 물량을 주니 외국계 IB들은 보호예수를 약속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으로 보입니다.



수요예측 과정에서 곪고 있는 불공정은 고스란히 개인들의 피해로 돌아왔습니다. 기관투자자가 수요예측에서 증거금을 면제받고, 일반투자자보다 먼저 물량을 배정받는 것은 기관이 적절한 공모가를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관투자자의 '허수 청약'이 늘어나고, 경쟁률은 치열해지고, 공모가는 최상단으로 결정되는 사태가 반복되면서 개인투자자의 공모주 수익률은 더 낮아졌습니다. 그리고 상장 첫날 보호예수가 없는 외국인 기관의 물량이 쏟아지면서 높은 변동성도 감내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금융당국은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느끼고 협의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일정 기준을 충족한 투자일임사만 수요예측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거나, 기관투자자들도 증거금을 내고, 신청 한도를 정하는 법 등이 거론됩니다. 새로 논의된 '증권 인수업무 등에 관한 규정'은 이달 말이나 3월 초쯤 확정 발표한 뒤 4월 증권신고서 제출분부터 적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새로운 규제를 만드는 게 능사는 아닐 겁니다. 공모주 호황기에는 기관의 뻥튀기 청약이 문제라면 불황기에는 공모가 후려치기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좋은 기업들이 기업공개(IPO)에 나서지 않겠죠. 개미들도 공모주 투자로 '치킨 한 마리 값을 버는' 쏠쏠한 재미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시장은 침체시키지 않는 선에서 합리적인 규제안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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