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라고 말하지 못했어!
선택지가 한정된 질문이란 걸 알았지만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어. 결국, 너희가 어렵게 내린 결정을 말로 꺼내 놨을 때, 희망 닮은 말도 해줄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2002년 태어난 암사자 '사순이'는 2023년 8월 19일, 20살이 되도록 철창 안에 살았다. 국가에선 개인 소유의 야생동물 사육장 기준을 가로 14미터, 세로 2.5 미터면 충분하다고 봤다.
실제, 시속 50Km-80Km를 달릴 수 있고, 먹이를 찾아 24Km까지 갈 수 있는 암사자지만, 철창에 갇힌 뒤 줄곧 콘크리트 바닥을 서성이며 철창 밖 풀숲은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야생동물인 암사자가 어쩌다 개인 소유물이 됐는지 알 수 없지만, 철창 안 어디에도 사자의 본능을 고려한 단 한 가지 배려도 없었다. 더구나 주로 초원에 사는 사자는 덩치가 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프라이드(Pride)라 불리는 무리 생활을 하는 동물이다. 그럼에도 사순이가 자신의 본성을 철저히 역행하며 살아 낸 시간은 장장 20년이었다. 사자의 평균 수명을 고려한다면 평생에 달하는 기간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사순이는 의미 없이 바닥을 서성이거나 배식구를 긁는 등의 '정형행동'이 심해졌다.
사건이 있던 지난 8월 19일 사육사의 실수로 문이 잠기지 않았고, 철창 안을 벗어난 사순이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흙을 밟아 볼 수 있었다. 새끼 때부터 20년을 길들여진 때문일까? 사순이는 멀리 달아나지 않고, 철창 근처 풀숲에 앉아 20분 동안 가만히 있었다. 흙냄새가 좋은, 나무 그늘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것처럼 보였다.
인간들은 암사자가 철창을 벗어났다며 한바탕 난리를 피웠고, 쉬고 있던 사순이를 향해 산탄총을 발사했다. 야생동물인 암사자 사순이는 인간에 의해 철창 안에서 20년을 살다, 인간의 실수로 밖으로 나왔고, 인간의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래, 꼭 죽였어야 했나?'
꼭 사살했어야 했느냐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마취총을 이용해 무사히 구조됐더라도 다시 철창 안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면 그것도 답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야생동물이 개인 소유물이 되어, 처참하게 사육된 사례는 무궁무진했지만, 이를 관리할 기관조차 대안을 찾지 못해 모른 척하는 실정이었다.
자연이든 동물, 사람 가릴 것 없이 생명 있는 존재의 본성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이미 선택이 아닌 필수의 기본권이다. 20년 동안 본능을 억압받고 철창에서 살아온 사순이는 서서히 미쳐가고 있었을 것이다. 사람이라도 그러지 않았을까? 동물이 느끼는 고통은 정말 사람과 다를까? 누가, 왜 이것을 함부로 결정할 수 있게 된 걸까?
"우리가 만약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이, 사순이처럼 20년을 살았다면, 어떤 결말을 더 원했을까?"
무사히 구조 돼 평생 살던 철창으로 돌아가고 싶었을까? 이제라도 자유를 찾았다며 죽음을 기쁘게 맞이했을까? 구조되어 더 좋은 시설로 갈 수 있다면 선택할 필요도 없었지만, 불가능한 현실이었다. 아이들은 절대 쉽게 입을 열지 않았으나, 결국 내놓은 것은 같은 목소리였다. 내가 사순이라면,
죽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아이들 목소리로 듣게 된 이 말은, 와장창, 마음이 무너지고 깨지 듯 아프게 들렸다. 겨우 말을 내놓은 아이들은 죄지은 것도 없이 사순이에게 미안해했다. 나 역시, '그게 무슨 소리냐고, 당치 않다며 죽는 게 나은 삶이란 없다'라고 말해줘야 했지만, 사순이가 20년을 살아 낸 철창 모습을 떠올리자
더 이상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