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쉴 틈에 대하여
사춘기와 홈스쿨을 했다지만, 사실 그저 홈(home) 일뿐, 학교(school)였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우리나라 현행 교육제도에서 의무교육인 중학교 과정을 포기한다는 구체적 의사 표시를 보호자인 내 손으로 직접 했다. 또한 ‘아동 학대 방지법’과 연관된 범죄 사실과 무관하단 걸 여러 방식으로 증명해 얻어 낸 결과였기에, 양육자로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지난 몇 개월, 사춘기에게 집중되는 마음의 시선을 돌리려, 나는 집 안팎을 정리하거나 작은 식물 돌보기에 열중했었다.사춘기 두 명에 개와 고양이의 집사도 모자라 식물 집사를 자처하는 사이, 내게 의탁한 식물이 어느새 스무 개쯤 됐다. 비록, 고양이 라떼의 습격을 피해 천장에 매달아 키우는 작은 포트 식물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 작고 약한 것들을 돌보는 동안, 오히려 사춘기 마음을 더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나는 식물 이름을 일일이 적고 그 특성을 공부하듯 외웠다. 흙을 살피고 적당한 습도를 고심했음에도 ‘거북 알로카시아‘와 ’ 하트 아이비‘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동안 내 손에 죽어 나간 식물이 한두 개도 아니지만, 이번만큼은 풀 한 포기도 초록 별로 보내지 않겠다 다짐한 터였다.
‘거북 알로카시아’는 지난번 물을 한번 흠뻑 준 뒤로 무름병 조짐을 보였다. 원래 거북의 등처럼 생긴 잎사귀가 매력적인 녀석인데, 선명했던 초록 잎사귀가 연둣빛으로 흐려지더니 노랗게 변하고 있었다.
하트 아이비 역시, 반질반질 윤이 나던 초록이 언제부턴가 조금씩 생기를 잃더니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마른 잎사귀를 떨궜다. 처음 하트 아이비를 주방에 뒀을 때, 작은 포트의 초록일 뿐인데도 주방 공간을 생기 넘치게 만들어 주지 않았던가! 하지만 두 녀석은 지난 일 따위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나날이 빛을 잃었다.
물을 좋아하지만 과한 물 주기는 주의할 것!
‘거북 알로카시아’의 다소 까다로운 특이 사항은 마치 사춘기 심리를 대변한 선언 같았다. 누구보다 사랑받길 원하지만, 자신이 정한 범위를 넘은 관심에는 단호히 선을 긋는 사춘기 말이다.
관심에도 완급 조절이 중요한 그들은 한껏 초록이다가 하루아침에 생기를 잃거나 마른 잎을 떨궈 양육자 마음을 졸이게 했으니까. 하지만, 하트 아이비가 생기 잃은 원인을 알게 됐을 때, 나는 일의 중요한 순서를 헷갈려 버리고 허둥대는 양육자 모습을 발견하고 말았다.
나는 하트 아이비를 어이없게도 전자레인지 위에 뒀었다. 그러고도 작은 초록 하나 뒀을 뿐인데, 주방 분위기가 달라졌다며 기뻐했었다. 하지만 하루에 몇 번씩 전자레인지가 작동될 때마다 뜨거워진 본체 위에서 아이비는 숨 막히는 고통을 겪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정성껏 돌본다고 착각했을 뿐, 정작 봐야 할 고통에 대해선 공감하지 못한 것이다.
문제를 직시할 때였다. 실수를 인정하고, 지금부터 할 수 있는 최선을 생각해야 했다. 먼저, 나는 알로카시아 화분을 엎어 흙을 쏟아냈다. 뿌리가 다치지 않게 조심하며 작은 화분 속을 비워내자, 엄지손톱만 한 뿌리 뭉치 대여섯 개가 흙에 섞여 나왔다.
이 단단한 뭉치들이 알로카시아의 숨길을 막은 게 분명했다. 아이비 역시 흙을 쏟아내니, 뜨거움을 견디다 썩어버린 뿌리가 후드득 힘없이 떨어져 나왔다. 나는 그것들을 골라낸 뒤 두 개 식물을 다시 화분에 옮겨 심었다.
이제 다시 생기를 얻거나 더 시드는 것 모두 그들에 달렸을 뿐, 더는 내가 할 게 없다며 나는 몹시 낙담했었다. 하지만,
거북 알로카시아와 하트 아이비는 놀랄 만큼 빨리 회복했다. 생명 있는 것에 숨 쉴 틈이 얼마나 소중한 지 몸소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힘차게 초록을 보여주었다. 그뿐 아니라,
양육자가 잊지 않을 것은 넘칠 듯 과한 물 주기가 아니며, 눈여겨봐야 할 진실은 따로 있을지 모른단 사실을 힘주어 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