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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헤픈 마음의 비극

이용하거나 이용당하거나

by 은수
선의를 베푼다는 것은 무척 주체적인 행위다. 그러나 경계를 정하지 않은 호의가 반복될 때, 상대는 마치 그것을 자신의 권리로 착각했다. 그 순간, 호의는 기존의 선한 의도를 잃고, 당연히 해 내야 할 의무로 전락하고 말았다.

더 어렸을 때 나의 헤픈 마음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열망의 한복판에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때 나는 타인의 인정을 통해 내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 던 게 분명했다. 그렇게 되기까진 내가 가진 운명적 딜레마가 적잖이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선행의 뒤에 서있던 ,‘나는 좋은 사람‘ 이란 정체성이 내 만족이나 나를 증명할 도구가 되는 순간, 그 선의는 이미 순수할 수 없었다.


완전하지 못한 선의는 구멍이 생기기 마련이다. 특히 경계를 정하지 않은 헤픈 마음은 결국, 스스로 이용당했다고 느끼는 피해자 마음이 되기 쉬웠다.

그 안에 담긴 진실을 알기까지 나는 스스로를 천천히 갉아내며 소진시켰다.


나는 한때 비영리 단체의 일원으로 일한 적이 있다. 봉사직이라 더 좋았다. 돈이 아닌 마음으로 움직이는 일이라는 점이 나를 그곳으로 데려갔다. 나는 꼭 필요한 일원이 되고 싶었다. 궂은일뿐 아니라 그 외 물적, 육체적 시간의 노동을 가리지 않고 도맡았다.

어떤 선의에도 적당한 거리 두기가 필요하단 사실을 모를 때였다. 그것이 나뿐 아니라 상대에게도 결코 좋기만 한 일이 아니란 걸 몰랐다.


선의가 반복되면 그것은 자칫 당연함이 됐다. 결국, 이 같은 어긋남의 원인은 내가 나를 소모품처럼 쓰는 구조에서 시작됐다. 그러니 타인에게 친절한 만큼, 자기 자신에게도 동일한 윤리를 적용하지 않는다면 선의는 반드시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

마음 헤픈 사람들은 자신의 선의를 이용하려는 사람을 만나면 크게 상처를 받고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걸기 쉽다. 헤픈 마음의 순기능을 생각하면 무척 뼈아픈 과정이다.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에서 당연히 지켜야 할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 건 오롯이 내 책임이었다. 그걸 깨달았을 때, 나는 부끄러움과 동시에 그동안 헤매던 미로의 출구를 알아낸 것처럼 마음이 후련했다.


헤픈 마음이란 결국 타인을 향해 열어 둔 문이면서 동시에 내가 스스로에게도 열어 둬야 할 문이었다. 이때 ,우리의 마음 점검은 언제나 필요하다. 행여, 내가 베푸는 선의가 향한 방향이 타인이 아닌 나를 향하지는 않았는지. 반대로 내가 누군가에게 받은 선의를 당연하게 여기진 않는지 말이다.

이것은 좋은 관계를 오래 지키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경계다. 더불어, 경계 없는 친절이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거나 나를 피해자로 만드는 헤픈 마음의 비극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나는 여전히 먼저 손을 뻗는 사람이다. 다만 지금은 그 손이 어디까지 닿아야 하는지, 진정한 선의가 되기 위한 마음 가짐도 알고 있다.

상대가 오해하지 않도록 전하는 마음은 나와 상대 모두를 위하는 길이었다. 결국, 헤픈 마음의 한계는 선의가 무너지는 순간에 오지 않고, 내가 더 이상 나 자신을 무모하게 소모하지 않기로 결심한 순간에 찾아왔다.


여전히 나는, 누구도 이용당하거나 이용하지 않는 헤픈 마음의 순기능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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