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자healer는 '정치가politician'이다.
한 개인이 온전히 통제할 수 없는 외부환경, 그리고 이와 상호작용하는 신체와 결합된 인간 의식의 특성상 고통은 필연이다.
모든 것은 그냥 놔두면 점점 나빠진다.
약해지고 악화되고 무너지고 부서진다.
일체개고는 모든 치유의 전제이고 출발점이다.
고통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지만 줄일 수는 있다.
고통의 실존을 있는 그대로 수용, 즉 의식의 볼륨을 키워서 고통을 희석시키는 방법도 있고
고통의 원인을 찾고 이를 바로잡아 동일한 류의 고통이 일어나지 않게 예방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의식이라는 과정 안에서 고통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는 일은 없다.
이러한 고통을 다루는 이들을 우리는 치유자라고 부른다.
이들은 사람들의 괴로움을 보고 듣고 느끼고 이를 줄여주려 노력한다.
이러한 작업을 직업적으로 하는 이도 있고 그냥 무상으로 행하는 이도 있다.
어쨌든 치유자들과 만난 사람들은 고통이 줄어듦을 느낀다.
그들은 하나 하나가 다 서로 다른 접근방법을 갖고 있다.
스스로의 존재 자체가 치유 도구이기 때문에 각자의 훈련 경험과 개성, 영적 여정이 치유 과정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치유자들은 정치적으로도 '다양'하다.
좌도 있고 우도 있고 보수도 있고 진보도 있고 스펙트럼이 다양한다.
단, 극좌-극우는 없다.
만약 극좌-극우인 치유자가 있다면 그는 사실 치유자가 아니다.
극좌-극우는 의식의 병리적 현상이며 치유와 양립할 수 없다.
치유자는 정치적으로 진보적일수도 있고 보수적일수도 있다.
정치라는 영역은 한 없이 커보이면서도 정작 한 인간의 총체를 대변하기엔 너무도 작다.
우리는 얼마든지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치유자가 될 수도 있고 보수적인 치유자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치유자 자신은 누구보다도 스스로에게 솔직해야 한다.
진보도, 보수도 만약 그것이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 존재의 치유와 성장 가능성에 대한 굳은 신뢰와 긍정에서 나온 태도라면 OK.
하지만 만약 나의 정치적 성향이 개인적 혹은 집단적 '두려움'과 '트라우마'의 발현이라면 이는 경계해야 마땅하다.
두려움은 모든 치유자의 경계대상 1호이다.
치유자가 무서워하고 피하고 꺼리는 곳으로는 치유의 에너지가 흐르지 못한다.
치유자가 자신의 두려움 속에 있을 땐 내담자와 치유적 동맹을 형성하지 못한다.
두려움이라는 과거는 치유라는 현재와 함께할 수 없다.
그러한 관점에서 치유자들은 항상 자신의 정치적 태도, 성향, 관점을 점검해야 한다.
정치는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중대한 이슈이며 치유자들은 이에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자신을 포함한 각자의 '정치'가 의식의 치유와 성장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관찰로 끝나는게 아니라 내 안의 다양한 관점들이 '공존'할 수 있는 내면의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그렇다.
치유자는 먼저 내면의 정치의 전문가여야 한다.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바깥의 정치에도 참여해야 한다.
안에 있는 것이 바깥으로 펼쳐진다.
민감한 치유자는 안에 있어야 할 것들중 바깥으로 나와선 안될 것을 분별하고 막을 줄 알아야 한다.
깨어있는 치유자는 안에서의 다양한 목소리들의 공존이 가져온 내적 평화를 바깥에서의 외적 평화로 실현되는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모든 치유자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공동체의 모두가 스스로의 치유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정치이다.
고로, 치유자는 정치가다.
이러한 치유의 본질을 놓치고 정치혐오를 내비치는 치유자를 만났다면, 부디 그를 멀리하라.
그는 치유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