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 #41.
딸을 키우고 있다. 넘나 사랑스럽고 귀엽다. 내 페북은 이미 덕분이가 점령중이다. 덕분이 덕분에 요즘 내 삶은 사랑으로 가득차있다. 밤에 잠안자고 울 때 빼놓고 ㅋ
그러던 어느날, 나에겐 새로운 임무가 부여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바로 '전사warrior'다. 그렇다. 빌어먹을 X나게 두들겨 맞다가 한 번 주먹질 좀 했다고 그동안 실컷 맞은 사람이 욕먹는 이 잣같은 세상에서 딸을 지키려면, 아빠는 전사가 되어야 한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 한다.
#1. 젠더사슬로부터 딸을 보호하기
젠더의 사슬이 여전히 강고하게 남자와 여자를 묶어놓고 있다. 겨우 사회적으로 규정된 몇 안되는 제한된 역할을 던져주곤 이른바 남자와 여자라는 반쪽짜리 인간으로 만든다. 그렇게 반푼이로 만들어 놓아야 노예로 부리기 쉽기 때문이다. '남자니까 이 일을 하렴' '넌 여자니까 저 일을 하렴'
사랑하는 딸을 '젠더'의 사슬로부터 보호해야한다. 여자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온갖 구속구들로부터 지켜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싸워야 한다. 누군가 내 딸에게 무엇이 여자답고 무엇이 여자답지 못한지를 함부로 지껄인다면, 그 입을 닥치게 만들 것이다. 닥치지 않는다면 덕분이와 나의 나와바리에서 내쫓을 것이다. 덕분이의 여자다움안 덕분이가 스스로 결정할 것이다. 내 역할은 그것을 지켜보고 축복하는 것이며 딸이 스스로 맞설 힘이 생길때까지 지켜주는 것이다.
#2. 여혐 방사능 제거하기
여혐이라는 방사능이 내가 숨쉬는 이 대기중에 너무도 두껍고 무겁게 깔려있다. 오랫동안 들이마시면 좀비가 된다는 여혐.... 어느 순간 좀비가 되어 여자 혹은 남자를 증오하며 공격하는 일이 최근들어 잦아졌다. 우려스럽게도 그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전사는 이를 좌시하지 않는다.
전사로서 응당 사람들의 마음을 증오와 불행으로 채우는 '여혐'과 맞서 싸워야 한다. 여혐을 해결하면 남혐도 저절로 해결된다. 둘은 빛과 그림자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주적은 여혐이다. 대놓고 혹은 교묘한 말로 여성을 깎아내리거나 혹은 찬양하는자 둘 다 주적이다. 여성성을 찬양하면서 정작 정작 자신 안의 여성성을 외면하고 경멸하는 마초좀비도, 여성성을 갈구하면서 그것을 경멸하는 일베좀비도 전사의 주먹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물론 그들도 좀비가 되고 싶어서 된것이 아니다. 그래서 전사는 관대하다. 좋은 말로 할때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여혐을 멈춘이들과는 함께할 수 있다. 여성들이 경험해온 혐오와 폭력에 대한 공감과 이해라는 백신(a.k.a 페미니즘)을 맞은 이들은 안전하다. 그들은 더 이상 여혐남혐 증상에 시달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 관용이란 없다. 그들은 호의를 악의로 둔갑시키는 좀비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마동석이 답이다.
아마 나 또한 덕분이를 100% 여혐으로부터 지킬 순 없으리라. 돌아가신 할머니, 어머니, 여동생, 아내가 겪었던 성차별, 성희롱, 성폭력을 어쩌면 덕분이도 겪게될 수 있다. 내가 세상의 모든 것을 통제할 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사는 굴하지 않는다. 일단 서원은 크게 세워야 한다. 고로 내 서원은 다음과 같다.
"세상의 모든 딸들이 여혐으로부터 자유롭기를"
#3. 전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적과 싸우다보면 분노에 증오에, 심지어 혐오에 나를 잃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를 지켜주는 무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 폭력은 나의 무기가 아니다. 비폭력도 나의 무기는 아니다. 내 무기는 새로운 세상에, 새로운 젠더에 어울리는 새로운 언어이다. 남자와 여자라는,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말은 이제 벗을 때가 되었다. 덕분이는 '덕분성'에 어울리는 단어를 스스로 찾아내고 이를 문장으로, 문단으로, 이야기로, 담론으로 만들어낼 것이다. 해방의 언어로 자유로운 삶을 직조할 것이다.
나는 여혐이라는 오래된 망령이 진화의 산물도 유전자의 명령도, 신의 섭리도 아닌, 그저 우리의 상상의 산물임을 잊지 않을 것이다. 어떠한 명분도 그럴싸한 지식도 그것을 정당화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우리는 꿈꾸는 존재이고 여혐이란 악몽도 성평등이라는 길몽도 꿀 수 있다. 이제 악몽과 불면의 밤을 끝낼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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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이 아빠로서 나는 이제 한 사람의 전사다. 적은 그래봤자 좀비고, 나와 덕분인 지금 부산행 열차를 타고 있다. 결말은 정해져있고 덕분이는 살 것이다. 그렇다면 내 운명은?
공유와 달리, 적어도 좀비신세로 끝나진 않을 것이다. 이미 백신을 맞았기 때문이다. 고로 아빠들이여, 페미니즘을 맞아라. 두 번 맞아라. 아니, 항체가 형성될때까지 맞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