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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센짱 Jan 06. 2022

세계를 집 안으로

여행자는 로컬처럼, 로컬은 여행자처럼

우리 집 커뮤니티는 특이한 구석이 많다. 집의 하드웨어도, 소프트웨어도 전형적인 한국 가정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다양한 국적, 문화권, 인종의 사람들이 섞여서 살고,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스타트업 이벤트가 계기가 되어 왔다가 한국에 반해 아예 서울이 거점이 된 불가리아 출신 대한외국인 크리스, 프랑스 문화원에 재직 중인 이란계 프랑스인 시민, 포르투갈 마데이라 등 유럽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이젠 일년에 3분의 1은 한국에서 시간을 보내는 새로운 루틴이 생긴 덴마크출신 노마드 에밀 등 - 모두 우리의 식구였다. 1, 2년 이상 장기로 함께 한 친구도 있고 2-3개월 지내다 가는 친구들도 있다. 숙박만을 찾는 단기 에어비앤비 게스트는 받지 않는다. 지금은 여력이 없어 하진 않지만 초기엔 카우치서퍼(Couchsurfer)들도 적극적으로 호스팅했다. 


서울눅스를 오픈하기 전에 살았던 망원동 쓰리룸 커뮤니티 시절에도 호스팅해왔는데, 같이 살던 동거인 커플이 장기 체류 외국인 친구들 - 주로 노마드들 - 을 들이는 것을 그만하고 싶다 하면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두 사람과 계속 산다면 외국인 친구들을 호스팅하길 그만두어야 했고, 외국인 친구들을 호스팅하려면 언니오빠와는 더이상 같이 살수 없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는데 둘 다 포기할 수 없어 한참을 고민했다. 당시 하우스메이트였던 하연 언니와 상준 오빠 두 사람과 더 오래 같이 살고 싶었다. 둘로부터 받는 영감과 영향들을 좋아했다. 함께 했던 즐겁고 따뜻했던 시간들이 다른 선택을 후회할꺼라 경고했다. 


한편 고민이 어렵고 괴로운 만큼 포기하지 못한 채 붙들고 있는 그 가치가 무엇인지도 선명해졌다. 난 왜 외국인 친구들을 호스팅하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가. 이렇게나 좋은 하우스메이트를 포기하고 장기 체류 외국인 노마드들을 호스팅해야 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여행자로 살기 


2018년 다시 서울에 정착하기 전에 나는 한 3여년 간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니며 노마드의 삶을 살았다. 북경, 상해, 부에노스아이레스, 필라델피아에도 있었지만,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건 동남아, 특히 발리와 방콕, 그리고 치앙마이였다. 처음부터 그렇게 길게 다니려고 한 건 아닌데, 어쩌다보니 욕심에 조금씩 조금씩 더 연장되었던 여정은 지인이 하던 스타트업에 합류하게 되면서 잠정 종료를 맞이한다. 진심으로 응원하던 지인과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던 기후변화 해결에 내가 사랑하는 커뮤니티 빌딩의 경험을 활용하여 기여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였지만 그 회사는 원격 근무를 허용하지 않았다. 2014년 발리에서 디지털노마드로 일하는 다양한 직무로 각자 자기에게 맞는 페이스로 더욱 더 생산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런 장의 한가운데에서 일어나는 논의에 참여하며 일의 새로운 방식에 개안해버린 나로선 수용이 어려운 변화였지만 의미 있는 임팩트를 만드는 일에 동참하는 데 의의를 두고 서울살이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자꾸 마음이 좀처럼 불안했다. 
여행을 그만 두고 정착함으로서 내게 펼쳐질 변화가 두려웠다. 크게 두 가지 변화였다. 질문을 멈추는 것과 정답이 있다고 믿는 것. 반대로 말하자면 여행을 통해 나는 질문하고, 정답이 없는 세상에 살 수 있었다. 


질문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가능하면 좋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길 위에 있는 것은 질문이 멈추지 않게 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 또는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른채 내재화되어 있던 믿음이 깨어지는 경험의 연속이었다. 아, 당연한 게 아니구나. 안 그래도 되는 구나. 다른 길이 있구나. 그런 발견이 주는 자유 안에서 나는 더 나다워질 수 있었다. 반면 한국 사회에서 내가 질문할 때마다 이런 대답을 많이 들었다. "원래 그런 거야" 정말 멕이 빠졌다. '원래 그런 게 어딨어!'라고 바로 튀어 오르는 반문은 소심한 내 속에만 머물며 부글부글할 뿐이었다. 착한 사람 컴플렉스가 강한 나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과도 공감대를 이루려고 노력했는데, 그러다보면 결국 나도 그렇게 생각하진 않을까 두려웠다. 길 위에서 내려오는 순간, 발을 붙이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더 빠르게 그리 변할 것이 확실했다. 나는 주위 영향을 정말 많이 받는 귀팔랑이라서 그렇다. 


무엇보다 국경을 넘어선 연대와 연결은 충만감을 줬다. 너무 이야기가 잘 통해서 영어로 말하고 있다는 자각조차 잊을 때 특히 짜릿하다. 그럴때 내가 타고 태어난 조건들을 잠깐 잊었다.  -강대국들 사이 자원이라곤 사람 밖에 없다는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 보수적인 경남에 작디 작은 소도시 출신, 가방끈 짧은 부모, 다혈질 아빠 아래 자란 소심하고 눈물 많은 여자애 -  세계 속 한 사람이라는 그 자각은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조건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방구였다.




집을 떠나지 않고 길 위에 계속 있고 싶어


어떻게 하면 집을 떠나지 않고도 길 위에 있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여행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으로 이어졌는데, 내가 내린 답은 다음이었다. 낯설게 보기. 늘 지나가던 그 길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힘. 늘 경험하던 일상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는 일. 내 안의 지독한 자기 혐오에 파문을 던지는 일. 그것이야말로 여행의 정수라고 믿는다. 그 감각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여행은 끝나지 않는다. 그 감각을 유지하는 방법이 여행자를 호스팅하는 것이었다. 


한국 밖에서 온 친구들은 내가 익숙하다 못해 거기에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치던 것을 새롭게 발견하거나, 업신여기던 것의 가치를 재평가할 수 있도록 도왔다. 우리만의 문제라고 생각하던 것이 사실 나라 상관없이 우리 세대가 겪는 시대적 문제라는 것도 이해하게 되었다. 잘 사는 삶의 표본이 제한되어 있는 한국 사회에 비해 더 다양한 형태의 일, 라이프스타일, 여행방식을 구사하는 이들을 만나며 '이렇게도 살아갈 수 있구나' 하는 자극과 상상력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꼭 집 안에서 같이 생활을 해야 했을까. 


카우치서핑에는 호스팅하는 것 외에도 밋업(Meet-up)기능이 있다. 따로 숙소가 있는 여행자와, 호스팅을 할 여건이 되지 않는 호스트가 집 밖에서 만나 교제를 나누는 방식이다
. 이런 기능을 활용해서 집 밖에서 만나면 되지 않냐는 질문이 충분히 가능하다. 굳이 같이 살지 않고. 물론 고려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밋업을 하기 위한 시간을 따로 낼 수 없었다. 거기다가 약속을 잡는 과정은 어찌나 피곤한지. 서로 바쁜 일정 사이에 가능한 날짜를 겨우 파악해 약속을 잡고 나면 각자에게 적당한 거리에 있으면서 방문 가치가 있는 접선지를 고르는 그 과정 - 으으 내겐 유난히 벅한데 한쪽에 사정이 생겨서 다시 한번 더 해야 될 때 난 이미 만남의 의사가 건너가버린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성사된 만남의 퀄리티는 만족스러운가? 제한된 시간의 상당 부분을 처음 만났으니 안할 수 없는 기본 정보 교환에 할애하게 되는데, 그 자체로 흥미롭고 즐거운 때도 있지만 횟수가 늘어날 수록 피상적이고 지루해졌다. 나는 더 깊이 있는 관계와 더 높은 밀도의 시간을 원했다. 자기소개 이제 그만! 내가 원래 서울 사람인지 아닌지 더 이상 묻지 말고, 영어 잘한다는 칭찬은 이제 됐고, 너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를 여행했고 하는 등의 기본적인 이야기 스킵스킵스킵!!! 


그래서 호스팅 하는 편이 좋았다. 시간 장소 약속과 재조율하는 커뮤니케이션, 수없는 첫인사 과정을 생략하고, 같은 생활 공간을 공유하면서 상황이 맞아떨어져 자연스럽게 같이 밥 먹고 산책 하고 일 하면서 중간 중간 나누는 대화가 좋았다. 적당히 오래 머물면 같은 사람에 대해서도 매일 새롭게, 그리고 깊게 알게 된다. 그렇게 맺는 관계는 정직하고 진실되다 믿었다. 그렇게 함께 곁을 내어준 사람들에게 얻는 배움은 유독 설득력이 강하고 오래 지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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