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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센짱 Oct 30. 2022

세계시민 나셨네!

너와 나, 우리들의 공통분모

여행자를 호스팅하지만 모든 여행자를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카우치서퍼를 호스트할 때도 호스팅 요청 오는 사람들 제쳐놓고 굳이 내가 따로 서칭해서 마음에 드는 여행자를 찾아 호스팅 제안을 보내는 수고를 자처할 만큼 여행자에 대한 호불호가 있었다. 어떤 여행자를 만나면 덩달아 가슴이 뛰고 마음이 풍성해지는가 하면, 어떤 여행자를 만나면 그저 기가 빨려 이 고생을 내가 왜 사서 하고 있냐 싶기도 했다. 


그렇기에 명료한 정의가 필요했다. 내 시간과 마음을 나누어도 아깝지 않은, 더더더 곁에 머물며 공명하고 싶은 사람들. 내가 기성 코리빙에 들어가지 않고 기어코 커뮤니티를 만들었던 이유가 된 사람들. 그들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특히 좋아했던 친구들과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떠올리며 공통분모를 찾아보고자 했다. 이때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브라이언 & 인다 커플이었다



내가 서울 남가좌동에서 살던 시절, 이주일간 그 둘을 호스팅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두 사람은 카우치서핑으로 세계를 일주하는 중이었다. 처음엔 일주일만 호스팅하기로 했다가, 서로 쿵짝이 잘 맞아 자연스럽게 한 주 더 같이 지냈는데, 그것 마저도 아쉬워 서로 헤어질 때 얼마나 슬퍼했는지. (결국엔 그들을 보러 지구 반대편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찾아가지 않았겠는가. 다만 이번엔 처지가 바뀌어 나는 민달팽이 여행자, 그들은 로컬 호스트. )


무튼 서울에서 우리가 함께 지내는 동안 그들의 동행이 즐거웠던 이유는 그들이 방문하는 장소와 관계 맺는 방식을 내가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출근해 일할 때 그들 역시 부지런히 도시를 탐구하고 시간을  보냈다. 관광이 아니라 탐구. 그러고 저녁이 되면 오늘은 어딜 가고 무엇을 보았는지 나누는데, 나는 그 대화를 통해 퇴근 후 매일 저녁엔 여행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질문이 많은 편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예사롭지 않았다. 어느 날은 광화문에서 목격한 집회에 대해 물었다. 둘이 찍은 사진을 보니,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집회였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설명할 때 마음은 무거웠지만 한편으론 친구들의 관심이 놀랍고 반갑기도 했다. 그들이 '관광객'이었다면 관광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대체로는 그냥 지나칠 것이고, 어떤 이들은 시끄럽다고 불평불만을 늘어놨을 수도 있다그게 아니라 예의어린 호기심조심스럽고 따뜻한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그리고 열린 태도로 질문하고, 공감했다. 마치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남의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감격이 가슴에 솟아올랐다.'

3.1 운동을 본 가네코 후미코는 이렇게 감상을 남겼다. 박열의 아내, 박문자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그녀는 일본인으로 태어났으나 허상 같았던 국익에 자신의 이해관계를 제한하지 않았다. 9살의 나이에 조선 청주에 살던 친척 가족에게 맡겨졌고 오랜 기간 학대받았다. 그녀를 학대하지 않고 연민으로 대한 것은 우연히 찾아가게 된 조선인 마을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굶주리고 있던 그녀를 차별 없이 대하고 넉넉지 않았을 먹을거리를 내어주었다. 그들이 나란히 처한 가난이라는 현실과 연민의 마음이 나와 남의 경계를 허물었다. 그녀는 조선의 독립운동을 하다가 남편 박열과 옥사했다. 영화 <박열>을 보면서 나는 가네코 후미코에게 더 반했다. 나는 과연 그 시절에 그녀와 같이 행동할 수 있었을까? 


그 시절 일본엔 무조건 일본의 편만을 들지 않는 일본인들이 가네코 후미코 외에도 존재했다. 조선 침략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잘 아는 사실대로 어떤 사람들은 카미카제 부대가 되기도 하고, 대량 양민 학살을 주도하기도 하고,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하기도 했다. 이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뭘까. 우리는 역사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그저 일본이라는 나라의 특성에서만 그 이유를 찾기엔 가네코 후미코 같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동족 간의 비극 제주 4.3 사건 역시 설명할 수 없다. 사람이 사람에게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들이 가능할까. 꼬리를 무는 질문의 최종 도착지는 한나 아렌트였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말한다. 악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악은 생각보다 무지 평범하다고. 어느 누구라도 악을 행할 수 있다. 생각하기를 멈춘다면. 

생각하기 위해서는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가네코 후미코가 일본인이라는 도식 밖에 자신의 정체성을 확대하여 3.1 운동에 참여하는 조선인들의 모습의 감격할 수 있었던 선행적으로 '질문'과 '사유'가 있었을 것이다. 상하수직적으로 증오의 대상이 정해져서 하달되는 시대에 발칙하게도 '질문'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일본을 떠나 조선에 살았던 경험, 그곳에서 조선인들과 가난 앞에 그저 나란히 평등하게 취약한 인간 대 인간으로서 만나 관계 맺은 경험 없이도 가능한 것이었을까? 하여 나는 여행한다. 그리고 여행자들을 맞이한다. 질문하고 사유하고자 하는 여행자들을 만나려고 한다. 


여행에는 힘이 있다. 번 여행을 다녀온 곳은 그렇지 않은 곳에 비해 신경이 쓰이게 된다. 행복한 추억이 있는 것만으로 어떤 장소의 안위가 신경 쓰인다. 아끼는 친구가 생겼다면 그곳의 비극은 더욱 슬프게 다가온다. 남일이 아니게 된다.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지진이, 독일에서 일어난 크리스마스 마켓 테러가, 과테말라의 기후변화로 인해 막막해진 농부들의 생계가,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전쟁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유족들의 고통에 공감했던 브라이언과 인다처럼. 


물론 여행으로 공감과 소속감이 반드시 확장되는 건 아니다. 더 많은 나라에 간다고, 더 오래 해외 생활을 한다고 자동적으로 그런 태도가 형성되진 않는다. 여행 끝에 ‘역시 내 나라 최고! 다른 나라들은 다 어딘가 미개하군’ 하고. 인스타 시대의 여행은 소비 행위에 그치기도 쉽다. 관광지를 빠르게 훑고 지나오는 관광보다 요즘 유행하는 한달살기처럼 지역과 관계를 맺는 느린 여행 쪽일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여행하는 태도다. 해외로 자주 나가지 않아도 세계에 다정한 시선을 가진 내 다른 친구 종원에게서도 나는 브라이언 & 인다 커플과 같은 태도를 찾는다. 근데 이런 사람들을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관광객, 여행가, 카우치서퍼, 디지털노마드처럼 여행의 스타일로 구분된 정의가 아닌 여행하는 태도와 그 아래 마음 차원에서의 공통 분모를 찾는다면 - 


“세계시민 나셨네!” 

한참 여행하던 시절, 파타고니아 또레스 델 파이네를 트레킹 하는 3박 4일 여정 중에 여러 나라 친구들을 사귀고 그들과 나누는 우정 속에서 말갛게 웃고 있는 내 사진을 보고 전 남친이 툭 하고 던진 코멘트가 불현듯 생각났다. 디지털 노마드, 코스모폴리탄 등의 표현에 비하면 너무 투박한 표현이라 그땐 풋, 하고 웃었지만, 생각할수록 그만큼 내가 지향하는 가치를 잘 담고 있는 표현이 없었다. 


자신의 관심, 취향, 공감, 우정, 관계, 소속감을 자신이 태어난 곳에 한정시키지 않는 사람. 자신의 울타리를 끊임없이 넓혀가고자 하는 사람. 그런 세계를 위해 남의 일이라고 선 긋지 않고 참여하고 행동하는 사람. 내가 생각하기에 세계시민(Global Citizens)이란 그런 사람이었다. 브라이언 & 인다 커플, 가네코 후키모, 종원 사이 공통 분모. 그리고 나도 공유하고 싶은 그 분모. 


서울눅스란 커뮤니티의 정체성 역시 자연스레 정리됐다. '세계시민들의 코리빙 커뮤니티’로. 마치 가게 간판을 달듯, 아직 조악하기 그지 없는 홈페이지에 소개문을 포함해 업데이트를 하는데 가슴이 찌잉한다. 앞으로 만나게 될 세계시민들을 생각하니 감격이 가슴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어떤 여정에 있던 이곳을 통해 우리 모두 세계시민이 되어갈 수 있길 바랐다. 그렇게 일단 선언은 했고 바람도 가슴에 품었는데, 관건은 그다음 순서였다. 이런 사람은 어떻게 찾을까?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우리를 발견하게 할까? 그리고 어떻게 선발한담....? 음, 일단 집을 좀 더 꾸미자. 바니바니 바니바니 당근! 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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