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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센짱 Oct 30. 2022

남산 아래 어느 이상한 대가족

19년도 9월 남산 자락 아래 큰 집을 구했다. 방이 다섯 개나 있는. 내가 살아본 집 중 가장 큰 집이었다. 요새 그 희귀한 3대가 같이 사는 확대가족인 것도 아니고, 애국자로 칭송받을 다둥이 엄마인 것도 아니다. 평범한 30대 중반의 비자발적(...) 비혼의 싱글 여성이지만,나름대로의 가족이 있다. 그 구성과 우리가 헤쳐 모이는 방식이 평범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우리 가족을 묶는 것은 혈연, 지연, 학연 그 어떤 것도 아니다. 국적, 성별, 성적 지향성, 종교, 직업 등과도 상관이 없다. 되려 다양할수록 좋다. 공용어는 영어를 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친구들도 꽤 오랫동안 함께 했다. 총 네 마리의 강아지들이 각기 다른 시기에 여러 이모 삼촌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나와 개인적으로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가 있는가 하면, 친구의 친구도 있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인연이 이어지게 된 경우도 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 사이의 싱글들이 가장 많았지만, 대학교 졸업반인 20대 MZ 세대, 커플, 사춘기 아이를 둔 40대 엄마까지 다양했다. 프랑스에서 온 Serge가 50세로 역대 최연장자 멤버로서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데 아마도 그 기록은 머지않아 깨질 예정이다.

아쉽게도 2019년부터 쭉 이어서 계속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은 없다. 짧게는 2개월에서 3개월 사이, 길게는 2년 내외로 같이 지내왔다. 어떤 이는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단기로 왔다가 장기로 다시 돌아오기도 하고, 비자 문제 때문에 단기로만 지냈지만 이번에 세번째 합류라 도합 9개월 같이 살고 있는 친구도 있다. 한편 이런저런 사정으로 한집살이는 어렵더라도 식구 관계를 유지하기도 한다. 시간과 여력이 될 때마다 놀러 오거나 중요한 이벤트에 함께 한다.

나이, 합류 시기, 기간 상관없이 수평적 관계를 맺고, 의견을 내고, 서로를 도운다. 음식을 나누고, 코워킹하고, 영화를 같이 보고, 서울을 탐방하고, 때로 다른 도시로 여행을 다녀왔다. 둘이서, 셋이서, 넷이서 때론 일곱 이서.

시간이 흘러 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한동네 도보로 최대 10분 거리 내에 위치한 세 채의 집에 16명 내외의 인원이 나눠 살고 있다. 핵가족 시대에 나는 확대 가족으로 모자라 팽창 가족을 만들고 있다니... 하하.

그런데 또 한편으론 가족....이란 단어로 우리를 설명할 수 없단 생각이 든다. 쉐어하우스라고 표현하기엔 턱도 없다. 그건 우리가 이 가족을 구성하고 운영하는 방식 때문이다. 합류하고 싶은 사람들은 지원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같은 사는 멤버들은 그 지원서를 다 같이 열람하고 피드백을 낸다. 월 1회 가족회의인 타운홀을 열고, 서로를 알아가고, 더 잘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하고, 더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한다. 전통의 가족이나 쉐어하우스에 비해 의도성이 높으며, 의식적 노력을 상당히 많이 기울인다. 전통적 가족처럼 피로 묶인 관계가 아니다보니 구성원에는 변화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가장 근접한 개념이 코리빙이라, 우리를 의도적 코리빙 커뮤니티(Intentional Coliving Community)라고 부르고 있다.

친구들과 같이 산다고 하면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와, 내 오랜 로망이에요! 진짜 그렇게 살고 계시군요?!” 친구들과 같이 사는 것에 대한 환상을 가진 채 당장 들어올 것처럼 이것저것 물어본다. 그렇지 않으면 정반대의 반응을 보인다. “재밌을 것 같은데.. 난 좀...” 아무래도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흔든다. 상상만 해도 골치 아파지는 듯 자기도 모르게 살짝 미간을 찌푸리기도 한다. 후자의 입장을 너무나도 이해하고 공감한다. 다른 존재들과 같이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으니까!

4년간의 여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갈등? 그걸 말이라고. 때로 지긋지긋하고, 때로 서운하고, 때로 외롭다. 글을 쓰는 이 시점에도 여전히 느끼곤 한다. 나는 이 실험을 언제까지 해도 좋을지 고민한다. 그렇게 희로애락을 겪는 동안 벌써 4년의 시간이 흘렀다. 집을 계약할 때는 예상치 못한 많은 고충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집 계약을 두 번 연장하였다. 식구의 규모도 커졌다. 좀 안정세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할 때쯤 새로운 문제가 터져 나온다. 집 계약서에 사인을 할 때만 해도 미리 내다보지 못했던 문제들이. 지난 모든 일들을 아는 상태에서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과연 어떤 결정을 하게 될까.

앞으로의 글은 역시 쉽지 않았던 여럿이 같이 사는 삶의 실상의 공유이자, 조금이나마 쉽게 만들어보고자 노력했던 실험의 기록이며,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살아서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 - 동고동락했던 이들에 대한 애정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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