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마음 한 장

by 고니비니SN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뱃속에 나를 품고 엄마는 달렸다.

자신이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자신에게 온 씨앗을 고이 품고 엄마는 아빠에게로 행했다. 지독하게 가난하던 그 시절 엄마는 뱃속 아가에게 먹이를 주지 못할 만큼 굶주렸다.


집도 없이 간이 칸막이가 쳐진 공간에서 엄마와 아빠는 몇 달을 보냈다. 옆에서 들려오는 무자비한 욕과, 음담패설, 삶의 한탄을 고스란히 들어야만 했다. 자신의 아이를 품고 있는 여자를 지키기 위해 매일 밤 베개 밑에 칼을 숨겼던 아빠는 그렇게 나와 엄마를 지켰다.


엄마, 아빠의 사랑으로 태어난 아이는 작은 몸으로 2달을 버티고 버텨 자신의 생일보다 2개월이 지나서야 출생신고를 마쳤다. 지독한 가난은 아빠의 술과 신세 한탄으로 이어졌고, 쉽사리 그들을 놓아주지 않았다.

2년 터울로 동생들이 태어났고, 숨 막히는 하루가 이어졌다.



엄마의 슬픔과 한탄, 아빠의 고단한 하루의 울먹임을 먹으며 세 남매는 세차게 자라났다.

아끼는 게 최선이라는 아빠는 회사에서 가져온 거칠고 얇은 대형 두루마리 휴지를 화장실에 걸었다. 칸도 구분되어 있지 않은 휴지를 보며 소변은 3칸, 대변은 5칸을 띄어 쓰라고 했다.


습자지같이 얇고 거친 표면이 반복적으로 궁둥이에 닿을 때마다 쓰라리고 아팠다. 하지만 누구 하나 불만을 표현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린 나는 거친 화장지가 남긴 상처에 조금씩 어른이 되었다.


어느 날, 조용히 나를 부른 엄마는 작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 예쁜 상자 안에 담긴 새하얀 화장지.

보드라운 촉감과 향기에 코를 박고 볼을 비볐다. 우리 삼 남매를 위한 엄마의 마음들이 겹겹이 쌓여있었다. 화장실을 갈 때마다 작은 상자에서 나온 엄마의 마음을 아빠에게 꼭꼭 숨겼다.



엄마의 마음 한 장이 삼 남매의 마음과 엉덩이를 보드랍게 감싸주었다. 그렇게 엄마의 마음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보드랍고 새하얀 순백의 마음 한 장이 오늘을 살아갈 힘이 되어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분노 사이에 놓인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