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작년에 비로 참가하지 못했던 세이브더칠드런 국제 마라톤에 참가했다.
마라톤 시작 전 체험활동을 하며 해맑게 웃는 아이를 보니 남편과 나의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졌다. 남편과 아이 뒤를 따라 뛰며, 주말을 가족과 보낼 수 있는 지금에 행복했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가족의 모습을 만들어준 남편에게 감사했다.
일요일엔 친정 식구들과 해운대 모래 축제에 가기로 했었다. 전날 처음으로 마라톤 4km를 뛴 아이의 컨디션이 걱정되었다. 일요일 아침 아이의 이마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체온계로 열을 재어보니 37.7도 미열이 시작되었다. 전날부터 모래놀이한다는 설렘을 안고 잠을 잔 아이는 축제에 가지 못한다는 나의 말에 울음을 터뜨렸다.
결국 아이의 간절함은 나를 모래 축제로 이끌었다. 모처럼 친정 식구 모두 모였다.
바닷가 한가운데 설치된 텐트에 짐을 내리고 수다를 한 보따리씩 풀기 시작했다.
아이는 할아버지와 모래놀이에 빠져 모래성을 만들며 연신 웃고 있었다.
1시간 30분의 기다림 끝에 모래 미끄럼틀을 탔다. 여동생과 남편, 딸은 썰매를 끌며 모래 미끄럼틀 정상으로 올라갔다. 뒤뚱뒤뚱 오르는 모습에 나와 제부, 아빠는 배를 움켜잡고 웃었다. 미끄럼틀 타기가 시작되자, 아빠는 나의 옆에서 불만의 소리를 높여갔다.
“저렇게 모래를 뿌리면 아이들이 매끄럽게 미끄럼틀을 탈 수가 없다.”
“20분에 3,000원은 비싸다.”
“20분이면 1번밖에 못 타겠다.”
끊임없는 비난의 목소리에 잊고 있던 분노가 조금씩 올라왔다.
미끄럼틀을 타고 싶지 않았던 남편은 한 번 타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빠는 “내가 탈게.” 하며 나섰다. 모래 언덕을 오르는 아빠는 아이처럼 해맑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빠는 재미있었는지 연이어 2번을 더 탔다.
아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카메라 화면 속에서 활짝 웃으며 미끄럼틀을 내려오는 아빠를 보자 마음이 이상해졌다. 딸처럼 어린아이가 된 아빠의 모습에 웃음이 났지만, 동시에 울컥했다. 조금 전까지 쌓였던 분노가, 연민으로 바뀌었다.
늦은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아빠는 어김없이 술을 시켰다. 신나게 논 아이는 지쳤는지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부모님을 댁으로 모셔다드리고 집으로 가야 했기에 마음이 바빴다.
이가 좋지 않은 아빠는 대패삼겹살을 조금씩 구워 드셨다. 술 한 잔에 한 보따리의 이야기를 꺼내고, 다시 술 한잔에 우리들의 행동, 말 한마디에 참견하시느라 먹는 속도가 더뎠다.
“아빠, 빈이 눈 좀 보세요. 빨개요.”
“빨리 먹고 가야 할 것 같아요.”
조금씩 화가 올라오는 나의 모습을 눈치챈 엄마가 아빠에게 말했다.
“애가 아프다는데 말 좀 그만하고 빨리 먹고 일어서요.”
엄마의 말에 아빠는 애들은 다 아프면서 크는 거라고 말씀하셨다.
언제나 마누라와 자식을 이기는 술 앞에서 또 한 번 한숨이 가득한 분노가 치솟았다.
아빠의 술자리가 길어지자, 여동생이 먼저 일어섰다.
“아빠 저희는 먼저 갈게요.”라는 말에 아빠는 괜히 시비를 걸었다.
“너희는 맨날 늦게 와서 맨날 일찍 도망가냐?” 익숙한 말투 여전히 변하지 않는 아빠의 이기적인 모습에 내 안에서 무언가 끓어올랐다.
어릴 적부터 반복되던 감정
아빠의 술, 비난, 가족보단 술을 택하던 모습에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의 따듯한 기억들도, 아이의 웃음도, 그 순간 잊혀갔다.
분노가 화산처럼 폭발하려던 그때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어릴 적 아빠의 술주정 앞에 수십 번, 수백 번 참으며 한숨을 삼켰던 엄마의 모습을 보자 아빠를 건드리면 결국 엄마가 힘들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아빠는 자신 앞에 손녀를 앉히고 이마를 짚어 보았다. 그리고 오는 내내 손녀의 어깨를 주물렀다. 딸은 할아버지와 조곤조곤 웃으며 대화했다.
그러다 딸이 아빠의 손을 가만히 바라보며 물었다.
“할아버지, 손이 왜 이래요?”
그 말에 아빠는 자신의 손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말했다.
“어릴 적 일하다가 다친 거야.”
아빠의 대답에 차 안의 공기는 무거워졌다.
그 손으로 세 남매를 키우고, 인생을 살아낸 아빠의 시간을 부정한 나의 마음이 슬펐다.
조용한 차 안에서 아빠는 내 손을 살며시 잡고는 어루만졌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손길 하나가 아빠의 말하지 못한 마음이라는 걸 느꼈다.
끝나지 않은 분노는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오늘 모래 미끄럼틀을 타던 아빠의 웃음 속에서, 조심스럽게 내 손을 쓰다듬던 아빠의 손길에서 아빠는 아빠의 방식대로 우리를 지키고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