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에게 여백을 준다

by 고니비니SN

어릴 적, 우리 집에서 공부는 잘해야 하는 의무였다. 공부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아빠는 자신의 한을 자식들이 이루어주길 바랐다. 공부를 못 해서 잘 살지 못한다는 아빠의 공식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나 보다. 아빠의 공식은 사랑으로 시작됐지만, 결국 부담과 공포로 다가왔다.


매년 새해가 되면, 아빠는 삼 형제를 데리고 시장 문구 도매상에 갔다. 칸 노트, 연필, 색연필, 지우개 등 1년 치 학용품을 대량으로 구입했다. 우리는 원하는 디자인의 노트와 연필을 기분 좋게 고를 수가 없었다. 그것은 곧 감시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단 한 칸도 허투루 쓰지 말라’ 말했다. 노트의 여백 하나, 연필의 길이 하나하나까지 감시의 대상이었다. 몽당연필은 다시 모나미 볼펜의 빈 플라스틱 통에 끼워 다시 써야 했다.

아빠의 검열은 예고 없이, 기분대로 시작되었다.

“쓰고 있는 학용품 가지고 거실로 나와.”

아빠의 한마디에 삼 형제는 서로의 눈치를 보며 책상을 뒤져 연필, 노트, 색연필까지 모두 가지고 거실로 나가야 했다.



아빠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면 고함이 터져 나왔고, 때론 체벌도 뒤따랐다.

동생들이 한 줄 이라도 비워 쓰거나, 낙서하거나, 연필의 길이를 충족하지 못했을 경우는 어김없이 함께 혼났다. 첫째인 내가 동생들 교육을 못 시켰다는 이유였다. 그때 나는 연대책임을 배웠다. 그 무서운 책임감은 어른이 된 지금도 가끔 나를 숨 막히게 한다.



고작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동생의 몫까지 감싸 안기엔 역부족이었다.

정확한 기준도 없이 감정에 따라 변하는 아빠의 방식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억울했지만 무서웠기에 마음속으로 삼켰다.


매번 엄마가 없는 날 시작되는 학용품 검사는 공포 그 자체였다.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삼 형제는 점점 포기를 배워나갔다.


어른이 된 지금도 체벌하면서 목 놓아 울었던 아빠의 모습이 생생하다. 그 울음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왜 자식들에게 공포를 주면서까지 규칙을 지키게 했을까?


나도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아이에게 처음 노트와 연필을 사 주던 그날 어릴 적 내가 떠올랐다. 어릴 적 나에게 엄마가 된 내가 꼭 전하고픈 말이 있다.



“너는 노트 위에서 벗어나도 돼. 줄을 맞추느라 애쓰지 않아도 돼. 여백의 미가 주는 아름다움을 느껴봐. 낙서로 네 안에 숨겨진 창의성을 마음껏 표출해 봐.



아이의 노트를 볼 때마다, 집에서 굴러다니는 연필을 볼 때마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아프다. 하지만 내가 받은 아픔을 아이에게 돌려주고 싶지 않아 나에게 하고 싶은 그 말을 아이에게 전한다.


엄마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네가 노트에 쓴 모든 그림과 문장을 있는 그대로, 전부 사랑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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