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앞에서 마주한 아빠의 사랑

by 고니비니SN

어릴 적부터 나에게 ‘결혼’이라는 단어는 설렘보다 불안으로 다가왔다.

아빠와 엄마의 모습을 보며, 나에게 결혼은 집에서 유일한 탈출구로 다가왔다.


엄마는 자주 우리에게 말했다.

“결혼해서 이 집에서 탈출해. 그래서 너희 마음대로 편하게 살아.”

엄마의 말 속엔 자신이 하지 못한 삶에 대한 바람이 숨어있었다.


대학교 졸업식 날 남자 친구가 졸업식에 오고 싶다고 말했다. 아빠도 참석하는 졸업식이었기에 잠시 망설였지만, 별일 없을 것 같아 허락했다. 아빠도 처음엔 웃으며 그를 맞아주었다.

하지만 점심 식사 자리에서 술이 나오자, 내 심장은 자동으로 뛰기 시작했다.

불안은 언제나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술이 들어가자, 아빠는 서서히 변해갔다.

아빠의 친절은 비난과 하소연으로 바뀌었다.

“난 네가 우리 딸이랑 사귀는 거 싫다. 당장 나가.”

아빠는 씩씩거리며 화를 냈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던 나는 남자 친구의 손을 잡고 나왔다.

걸어 나오는 동안 폭풍우가 눈에서 쏟아져 앞을 볼 수 없었다.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한참 동안 눈물로 흘러내렸다.


그날 이후, 우리 사이는 점점 멀어졌다.

그 사건이 있고 난 뒤 나에게 결혼은 아빠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상대를 찾는 미션이 되었다. 나의 가족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식들도 받아들이지 못한 아빠의 복잡한 감정을 온전히 받아 낼 수 있는 상대가 과연 있을까? 의문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의문의 끝에서 내가 내린 답은 단순했다.

나의 지옥 같은 삶에 누군가를 끌어들이지 말자.


그 후 나는 아빠에게 비밀작전을 수행하는 요원처럼 연애를 철저히 숨겼다.

3년을 만나고, 1년의 이별 끝에서 다시 만난 남자 친구는 아빠와는 360도 다른 사람이었다.

자상하고 이해심이 많으며,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술을 먹고도 술주정이 없었다.

남자 보는 기준이 아빠와 반대인 사람이라는 사실이 씁쓸했다.


이 사람과 결혼하면 내가 나답게 살 수 있겠다는 확신이 처음으로 생겼다. 하지만 동시에 아빠에게 소개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불안으로 가득 채웠다.


늘 그랬듯 나는 먼저 엄마에게 상의했다. 엄마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괜찮을 거야. 아빠 예전보다 많이 나아지셨어.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데려와.”

엄마의 말에도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내 유일한 마음의 안식처인 남자 친구를 놓치고 싶지도 않았다.


“아빠,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데려올 테니 한번 만나주세요.”

아빠는 놀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오! 결혼 안 한다던 우리 딸이 결혼할 남자 친구를 데려온다고?”

하며 크게 웃으셨다.


남자 친구를 아빠에게 소개하는 날, 다시금 식탁 위에 올라온 술병을 보며 속으로 기도했다.

“아빠, 제발 오늘만은 그냥 넘어가 주세요.”


남자 친구에게는 우리 가족사에 대해, 아빠의 술버릇에 대해, 내가 그동안 감내해야 했던 일들에 대해 솔직하게 말했지만, 불안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아 안절부절못했다.

이 자리가 남자 친구의 이해심과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자리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 달리, 아빠는 남자 친구에게 놀랄 만큼 친절했다.

다정한 말투로 질문을 건네고, 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했다. 딸을 사랑하는 남자의 진심을 확인하려는 듯 진지한 눈빛이 느껴졌다.


고기를 구워 남자 친구의 밥 위에 얹어주며 미소를 지은 아빠의 모습을 보며 눈물이 차올랐다.

아빠가 나의 마음을 이해하신 걸까?


식사가 끝나고 남자 친구를 보내고 돌아와 아빠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빠, 내 남자 친구 어때요?”


아빠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꼼꼼한 우리 딸이 골라 온 사람인데, 아빠는 우리 딸의 선택을 믿어.”


그 말에 기쁨도 잠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불안감에 억눌려있던 감정이 안도의 한숨과 함께 터져 나왔다.


언제나 나에게 두려움과 불안의 존재였던 아빠.

하지만 그날, 결혼이라는 인생의 큰 사건 앞에서 나의 선택을 믿어주던 아빠의 모습에서

그동안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깊은 사랑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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