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초기, 계속되는 부정출혈은 내 삶을 바꾸어 놓았다. 평생직장이라 믿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여직원의 정년이 보장되는 회사였기에, 힘들지만 버티면서 공부하고 배웠다.
주말부부까지 감수하고 친정 근처에 신혼집을 얻은 것도 나의 직장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이가 찾아온 순간, 나의 우선순위는 일에서 아이로 바뀌었다.
사정을 알게 된 국장님은 회사에 휴직 제도가 없음을 안타까워하시며, 퇴사 처리를 하되 아이를 낳고 난 뒤 3개월의 출산휴가를 갖고 다시 복귀하라고 배려해 주셨다.
국장님의 한 마디는 나에게 위로이자 희망이었다.
그렇게 나는 신혼집이 아닌 친정집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멈추지 않는 출혈로 불안감 속에서 나는 움직이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불안은 결국 나를 병원으로 이끌었다.
출근 도장을 찍듯 병원을 찾아오는 나를 보며 의사 선생님은 매번 괜찮다고, 아이는 건강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아이가 혹여나 잘못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불안은 멈추지 않았다.
안심이 되지 않아 또다시 찾았던 어느 날, 핏기 없이 말라버린 내 얼굴을 바라보시던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엄마가 불안하면 몇 번이고 와서 확인하세요.”
“아이는 건강하니까 걱정 말고, 엄마부터 힘내요.”
선생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눈물이 뚝 떨어졌다.
매일 맘 졸이며 바싹 말라가던 내 마음에 단비가 내렸다.
출혈이 멈추고 나서야 신혼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딸의 마음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챈 엄마는 말없이 매일 신혼집으로 출근 도장을 찍었다.
남편이 출근하기 전에 오셔서, 남편이 퇴근하면 저녁밥을 차려 놓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마치 이어달리기를 하듯, 남편과 엄마는 교대로 아이와 나를 지켰다.
긴 입덧으로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딸을 바라보던 엄마 눈 속에 어린 내가 있었다.
어릴 적 내가 엄마에게 한 말이 스쳐 지나갔다.
“엄마가 나에게 해 준 게 뭐 있어?”
“난 어릴 적부터 혼자 스스로 다했어.”
하지만 지금은 엄마 없인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7개월 동안 나는 거의 누워 지냈다. 할 수 있는 건 매일 기도하는 일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모든 신들을 부르짖으며 간절히 빌었다. 단 한 번도 편한 인생을 살아본 적 없는 삶이 원망스러웠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나와 아이를 지켜준 건 간절한 기도만이 아니었다.
힘겨운 시간 속에서 변함없이 내 곁을 지켜준 엄마와 남편의 사랑이었다.
지금, 나를 보며 밝게 웃는 아이를 보며 생각한다.
그 웃음을 볼 수 있는 오늘이 있다는 게 그저 감사하다고.
그리고 이제야 내 마음을 전한다.
엄마, 남편 날 지켜주고, 살려줘서 정말 고마워요.
인생에서 가장 두렵고, 불안했던 10개월.
그 기간 동안 나는 가장 깊고도 넓은 사랑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