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바퀴 위를 도는 다람쥐처럼, 나의 하루는 점점 단조로워졌다, 아이가 울면 모유 수유를 하고, 수유가 끝나면 트림을 시키고, 또 기저귀를 갈았다. 그렇게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반복되는 일상에서 점점 나를 잃어갔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미세하게 달랐다. 배가 고픈 건지, 어딘가 불편한 건지, 혹시 아픈 건 아닌지 나는 핸드폰을 들고 울음소리를 녹음했다. 울음소리를 몇 번이고 재생해 들으며 인터넷에 도움을 청했다. 그렇게 아이의 작은 신호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내 모습이 때로는 웃기기도, 또 애처롭기도 했다.
3개월의 육아휴직이 끝나면 회사로 돌아가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통증이 자꾸 발목을 잡았다. 맞벌이를 원했던 우리 부부는 나의 직장을 고려해 친정 근처에 신혼집을 얻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친정엄마가 아이를 돌봐 주시기로 이미 합의가 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출산 후 밀물처럼 밀려드는 통증에 마음 한구석이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들어앉은 듯한 답답함이 점점 커졌다.
출산 직후, 절개 부위보다 항문 쪽의 통증이 더 심했다. 회복 과정이라 여기며 참는 날이 많아졌다. 특히 아침 화장실에 가는 일이 고통의 시작이었다. 참다못해 제부의 도움으로 병원을 찾았고, 검사를 마침 의사는 ‘치질’이라고 말했다. 출산 시 과도한 힘이 항문에 손상을 주었고, 상처가 깊어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눈에서는 장맛비처럼 눈물이 쏟아졌다.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났고, 모두가 축복했지만, 정작 그 과정에서 나는 조금씩 부서지고 있었다.
두 곳의 병원에서 검사 결과 끝에 결국 수술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지만, 당장 수술을 할 수가 없었다. 아직 모유 수유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모유 수유는 평생 한 번이다. 그리고 내가 정한 기한도 정해져 있다.
그래, 버텨보자. 곧 지나갈 것이다. 나는 그렇게 마음속으로 되뇌며 결심했다.
매일 화장실을 갈 때마다 예상되는 고통 앞에서 두려웠지만, 이 시간도 끝난다는 것을 알기에 내가 선택한 것에 책임을 지기로 마음먹었다.
남편은 그런 나를 걱정했다.
“지금도 아침마다 울면서 화장실에 들어가면서 어떻게 네가 말한 1년을 견딜 수 있겠어?”
그 말에 대답 대신 아이를 바라보았다.
엄마를 응원하듯 작은 두 손에 주먹을 불끈 쥐고 나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그 모습 하나에 가슴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용기가 차올랐다.
반복되는 통증 속에서도 내가 지켜야 할 존재가 있다는 것이 이렇게 큰 용기를 가져다줄 줄은 몰랐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다시 아이를 안고 일어선다.
이제 몸은 분리되었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아이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며, 오늘도 아이를 안고 한 걸음씩 내디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