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그날이 선명하게 눈앞에 그려진다.
출산 후 1년이 지나서야 겨우 수술대에 오를 수 있었다. 생애 첫 수술이 치질 수술이라니.
누군가에게는 우스운 이야기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너무도 고통스럽고 긴 여정이었다.
모유 수유를 위해 견딘 1년, 덕분에 아이는 포동포동하게 잘 자랐지만, 나는 결국 두 번의 수술을 받아야 했다. 이걸 정말 잘 견딜 수 있을까?
수술을 결정한 병원의 의사 선생님은 나이가 지긋한 여자 선생님이셨다. 진료실에서 처음 마주한 선생님의 온화한 미소는, 초보 엄마로서 지쳐있던 내 마음을 처음으로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엄마, 아이도 낳았는데, 그 대단한 걸 해냈는데. 이건 금방 끝나요. 절개 부위가 넓어져서 두 번 수술 하는게 좋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제가 최선을 다해 볼게요.”
그 말을 들은 순간, 다시금 눈 앞이 캄캄해졌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라니...
1년 동안 아이와 마주치며 교감했던 순간들과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아이를 생각하며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는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여동생과 함께 병원에 갔다. 병원 입구에서부터 바들바들 떨고 있는 나의 손을 꼭 잡아주는 여동생의 손길은, 세상 어떤 난로보다 따뜻했다.
“언니, 금방 끝나.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수술 다 끝날 때까지 여기서 기다릴게.”
항상 나보다 더 의젓하고 든든한 동생의 말은 떨리는 내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다.
수술실로 이동하는 간이 침대에 누워 천천히 이동하던 순간, 눈물이 흐리기 시작했다. 말없이 내 손을 잡아준 간호사 선생님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많이 걱정되시죠? 아이도 낳으셨는데 이것도 금방 끝나요. 제가 손잡아 드릴테니 떨지 마세요.”
남들은 출산보다 더한 고통은 없다지만, 지금 이 순간 내 심장박동은 출산때와 마찬가지로 최고점을 찍고 있었다.
동생에 이어 간호사 선생님의 따뜻한 손길에 의지한 체 수술실에 도착했다.
차가운 공기, 분주한 손놀림, 귀에 익지 않은 의학 용어들 속에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마취과 선생님이 오시고, 곧 마취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마취는 연이어 실패했다. 세 번의 시도에도 하반신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계속 되는 마취 실패로 불안감을 최고조에 달했고, 담담 의사 선생님이 도착하자마자 울먹이며 말했다.
“선생님, 왜 마취가 안 되는 거에요? 오늘 수술 할 수 있는 거에요? 저 수술 두 번은 못하겠어요. 제발 한 번에 끝내 주세요.” 선생님은 내 손을 잡으며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엄마가 너무 말라서 마취가 잘 안 들어가는가 봐요. 한 번만 더 해 봐요. 그리고 수술은 한 번에 끝낼 수 있도록 제가 최선을 다해볼게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드디어 다리로 찌릿한 감각이 퍼졌다. 다리에 감각이 사라지며 마취가 성공했다.
그렇게 수술이 시작되었다. 하반신 마취로 정신은 온전히 깨어있었다.
수술대 위에서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지난 1년의 고통과 불안이 이 수술을 기점으로 모두 사라지길 말이다.
수술대에 오르기까지, 가장 힘들었던 건 통증이 아니었다. 나를 짓눌렀던 건 끊임없이 머릿속을 떠다니는 불안감이었다.
몸보다 마음이 무너질 것 같았던 그 시간 속에서, 나를 붙잡아준 건 결국 ‘사람’이었다.
언니를 사랑으로 감싸준 여동생의 따뜻한 손, 환자를 진심으로 걱정해준 의사 선생님의 다정한 눈빛, 수술실로 이동하는 내내 환자의 손을 놓지 않은 간호사의 공감.
그 마음들이 모여 불안을 이겨낼 수 있었다.
진심은 통증보다 더 깊이, 더 강하게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 나는 다시 살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