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랑을 먹고, 나는 엄마가 되었다

by 고니비니SN

셀프 이사로 매일 짐과 사투를 벌였다. 정리되지 않은 방과 부엌, 거실을 오가며 물건을 서랍에 차곡차곡 넣는 일이 하루의 전부였다. 온전히 정리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친정엄마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매일 왕복 두 시간을 오가며 공동 육아를 자처하셨다.



수술 후 회복이 더딘 나를 대신해, 엄마는 내 손과 발이 되어주셨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분주해지는 엄마의 움직임은 하루도 예외가 없었다. 제일 먼저 손녀를 껴안고 인사한 뒤, 널브러진 물건들을 정리하고 바닥을 쓸고 닦았다. 이어 부엌으로 향해 딸이 전날 하지 못한 설거지를 마무리하신다. 그리고 본격적인 반찬 만들기가 시작된다.



나는 반찬 하나를 만드는 데에도 몇 시간을 들여야 했지만, 엄마는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다섯 가지 반찬을 뚝딱 만들어 내셨다. 반찬을 만든 후에는 손녀 육아에 돌입하신다. 기저귀를 수십 번 갈고, 이유식을 먹이며, 아이의 하루를 함께 채워 주셨다. 그사이 나는 밤새 자지 못한 잠을 조금이나마 보충할 수 있었다.


어릴 적, 나는 일찍이 엄마의 부재를 경험했다. 독립적인 아이가 되어 동생들을 챙기며 학교에 갔고, 학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엄마가 미리 준비해 둔 반찬으로 동생들과 저녁을 차려 먹었다. 그렇게 바쁜 일상의 반복 속에서 엄마 품에서 느낀 사랑은 멀게 느껴졌다.


임신과 함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고 나서야, 처음으로 하루 종일 엄마와 함께할 시간이 허락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더 자주 부딪혔다. 나는 책에서 배운 대로 아이를 키우고 싶었고, 엄마는 경험에서 우러난 방식대로 손녀를 돌보고자 했다.



“엄마, 난 엄마처럼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아. 그 결과가 바로 나잖아. 책에서 그렇게 키우지 말래.”

그때 내가 말한 ‘책’은 육아서도 아닌, 임신출산 대백과와 이유식 가이드가 전부였다. 그 안의 조언들이 내겐 육아의 기준이 되었다. 이유식은 개월 수에 맞춰 정량으로 먹여야 했고, 낮잠은 규칙적으로 재워야 했다. 아이를 업으면 다리가 휘어진다는 말에, 나는 포대기를 고수하는 엄마에게 힙시트를 강요했다.


엄마는 불편한 힙시트를 두르고 아이를 안고, 업고, 다시 주방으로 향해 설거지 하고 반찬을 만들었다. 시어머니보다 더 깐깐한 딸의 잔소리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엄마의 얼굴은 날마다 더 지쳐갔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걸레를 내려놓으며 한숨을 쉬었다.



“너처럼 하나하나 다 신경 쓰면 애 못 키운다. 책대로만 어떻게 애를 키우니? 그리고 엄마도 힘들어. 내가 이런 모진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지금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

엄마의 한이 섞인 목소리에, 나는 순간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땀으로 흠뻑 젖은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그 시절 내가 느꼈던 ‘사랑받지 못했다’라는 감정은, 어쩌면 외로움이 만든 오해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 외로움과 서운함은 분노가 되어, 엄마에게 고스란히 쏟아내고 있었다. 내 방식대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조바심이 짜증이 되어, 매일 같이 엄마에게 전해졌다.



엄마는 나와 손녀를 위해 매일 고단한 하루를 묵묵히 버텨내고 있었다.

엄마는 그때도, 지금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내 곁을 지키고 있었다. 말없이 집을 정리하고, 반찬을 만들고, 손녀를 돌보며 엄마가 보여준 사랑은 말이 아닌 행동이었다.


당연하게 느꼈던 엄마의 모든 행동이, 엄마가 되어보니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가족을 위해 손수 차린 따뜻한 밥상, 집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을 엄마의 모습이 하나하나 머릿속에 그려졌다.

엄마는 나에게 오랫동안 묵묵히 사랑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먹고, 나는 결국 엄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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