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첫사랑
참을 수 없는 인간, 훈 - 2
훈을 집으로 부른 것은 바깥의 소음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었고 야밤에 끝나는 일정 때문에 조용히 만날 곳이 없어서였기도 했다. 나는 이미 무서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으나 솔직히 훈과 무슨 일이 생길까 봐, 특히 남녀 간에 생길 수 있는 여러 일 같은 것, 사귈 때도 있지 않았던 접촉이 생길까 봐 겁이 나기도 했다.
새벽 1시에 집에 들어선 훈은 오랜만이야라는 흔한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짙은 술 냄새를 풍기면서 "야, 너 부자 동네에 사는구나? 여기 집값 엄청나지?"라고 말했다. 의사들끼리 들입다 술을 부었다면서도 그는 흐트러지지 않은 매무세와 눈빛을 지니고 한강이 보이는 소파에 앉았다.
훈과 나는 고향 작은 시골 학교에서 짝꿍이었다. 훈은 할아버지 때부터 이 마을의 의사인 집안의 아이였고, 그 병원을 다니지 않고 자란 동네 아이들이 없을 정도였다.
어린이들은 아프지 않고 자라는 법이 없었고, 허름하지만 가정집 같은 동네 의원을 누구나 한 번은 들락거렸기에 그의 할아버지가 치료가 끝나면 주는 커피 사탕, 박하사탕 같은 것들을 입안에 녹여서 천천히 먹어본 경험은 상당히 보편적이었다. 그것은 우리들에게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훈의 할아버지가 연로해 더 이상 의원을 운영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훈의 아버지가 이어서 운영을 하기 위해 도시에서 내려오셨다. 미모의 아내와 귀여운 외동아들 훈을 데리고.
훈의 아버지는 의원 간판을 떼 버리고 '***내과'라는 간판을 붙였다. 일 년이 지나자 가정집 같은 의원을 부수고 건물을 올렸다. 병원 건물이 찬찬히 올라가고 있을 때, 나는 귀에 진물이 차고 살이 썩는 냄새가 나는 병에 걸렸다. 역한 냄새는 어쩐지 자꾸만 맡고 싶어지는 마음을 들게 했지만 부모님은 기겁을 하며 부랴부랴 훈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임시 병원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바짝 뒤로 넘긴 머리조차 반짝반짝 빛이 나는 훈의 아버지는 내 귀를 들여다보더니 냇가에서 놀다가 귀에 들어갔을 물이 제때 제거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큰 종합병원으로 가지 않으면 청력을 잃게 될 거라고 말했다. 나는 진료가 끝나고도 진료실에서 나가지 않았는데 그것은 사탕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진료 다 끝났습니다."
웃음기 없는 훈의 아버지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하셨다. 얼른 나가라는 느낌을 채근받고서야 어정쩡하게 일어나 나는 발걸음을 옮기며 그의 책상 위를 훑었다. 어디에도 사탕 통은 없었다. 나는 훈의 할아버지가 그리웠다.
훈은 그때 이미 나와 같은 반 짝꿍이었다. 친구였나 하면 그것은 아니었다. 그냥 짝이었다. 서울에서 온 훈을 흠모하는 여학생들의 등쌀에 그와 이야기 나눌 때마다, 그가 내게 말을 걸어올 때마다 나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어제 아빠 병원에 어떤 여자애가 왔는데, 귀에서 냄새가 엄청났대. 살이 썩고 있었나 봐."
나는 흠칫 놀라며 훈을 바라봤다.
"너지? 너한테서 그런 냄새가 났어. 내가 말을 걸어도 대답도 잘 안 하고. 잘 안 들려서 그런 거였지?"
나는 토끼눈을 하고 그를 바라봤다. 그는 살살 녹는 사탕 같은 눈웃음으로 나를 바라봤다. 훈의 말은 어딘가 항상 차갑고 날카로웠는데 그 웃음 때문에 친절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훈이 그의 아빠를 닮아있어서 어딘가 불편했다. 구석구석을 훑으며 그의 할아버지의 모습을 찾으려 애썼지만 전혀였다.
전혀 없었다.
그 무렵 나는 오전 수업만 받고 엄마와 기차를 타고 도시로 나가 귀 치료를 받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치료는 1달을 넘었으나 차도는 별로 없었다. 2달째 치료가 되던 날 엄마는 더 큰 병원으로 진료를 보러 가자고 했다.
나는 청력이 더 악화된 상태에서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되었다. 2주 정도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훈의 아버지를 닮은 의사들을 많이 보았다. 눈은 웃고 있었으나 말은 차가운 사람들, 어쩌면 훈은 의사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수술을 받고 학교에 돌아온 날, 훈은 아이들이 없는 틈을 타 나에게 커피 사탕 한 움큼을 건넸다.
"할아버지는 늘 아이들이 진료받는다고 애썼다고, 빨리 나으라고 이 사탕을 주곤 하셨어. 나도 많이 먹었는데, 아빠는 병원에서 이런 사탕을 아이들에게 주는 것은 옳지 못하대. 나아서 다행이야."
나는 그날 처음 훈에게서 그의 할아버지, 따뜻하고 인자하고 느긋하고 말이 없어서 편했던 모습을 조금 느낄 수 있었다.
훈은 자주 내 곁을 맴돌았다. 다른 아이들이 놀릴 때 그러지 말라고 타일렀고, 가끔 혼자 집에 갈 때는 어디서 있었는지 튀어나와 이 방향에 볼 일이 있다며 같이 걸어주었다. 그와 나 사이는 가깝지 않았으나 끊길 듯 끊기지 않는 뭔가가 이어진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훈은 삼수를 해서 겨우 의대에 합격할 수 있었다. 집안의 가업인 병원을 이어가야 한다며 의대를 진학한 훈은 결국 시골이 아닌 서울 어디 페이닥터로 지내게 됐다고 했다. 시골은 지겹다고. 그리고 그와 나는 다른 길을 선택하면서 또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 시절 심심해서 나간 동창회에서 다시 훈을 만났다. 그도 여자친구와 헤어진 참에 심심해서 나왔다며 반짝이는 웃음을 흘렸다. 새벽까지 술을 진탕으로 마시고 택시를 잡아준다며 나와 같이 나온, 훈은 이렇게 말했다.
"여기 봐봐. 금니를 산대. 금니를 빼서 돈을 마련해야 하는 사람은 어떤 사연을 가졌을까."
훗날 훈은 그랬다.
'금니 삽니다'라는 금은방 문구를 본 순간 이렇게 말하면 나와 사귈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나는 진짜 그랬다. 나는 늘 훈에게 훤히 읽히는 인간이었고, 나보다 더 먼저 내 마음을 읽는 훈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어서 피곤했다. 훈과는 오래 만났다. 그리고 그 사이 자주 헤어졌다. 다시 만났어도 또 비슷비슷한 이유로 헤어졌다. 그 이유는 훈이 일방적으로 연락을 드물게, 드물게 하다가 안 하는 식. 다시 만날 때는 갑작스럽게, 아무렇지도 않게 "뭐해? 잘 지내?"라고 전화 오는 식.
나는 이 지겨운 인간에게 20대 내내 휘둘렸다가 그가 결혼하면서 겨우 끝낼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먼저 끊을 수 없는 종류의 사랑이었다. 아니, 그럴 수 없어서 사랑이었나.
"앉아봐. 얼굴 좀 보게. 그 사이 너도 늙었네. "
여전히 말은 차가워도 눈빛은 따뜻한, 어쩔 수 없는 변하지 않는 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