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소꿉친구

삶은 극복의 극복인 희영 _1

by 다다리딩

바로 다음날 시골집으로 내려가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은 한 곳에 머물면 바로 익숙해져 버리는 관성이 심한 탓이다. 내 기질이 그러한데 이건 잘 고쳐지지 않는다.


희영을 다시 만난 것은 집 앞 베이커리에 빵과 커피를 사러 나가서였다. 희영이 이 동네에 살고 있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희영은 오랜 친구였고 그녀의 부모와 나의 부모도 친구였다. 그녀를 오래 만나지 않아도 끊임없이 그녀 이야기를 전해들었던 것은 우리 인연의 뿌리가 깊게 얽혀서다.


삶에 별 의욕도 없고 최대한 편하고 조용하게 빨리, 죽음에 다다르고 싶다는 나의 마음과 별개로 식욕은 사그라들지 않아서 이 동네에 오니 또 매 주말마다 윤과 줄을 서서 사 먹던 빵이 그리워졌다. 그리하여 모자를 눌러쓰고 빵이 나오는 시간에 맞춰 나온 길이었다. 아는 이웃도 없고 산 기간도 얼마 되지 않은 동네에서 누군가 나를 아는 체한다는 것은 나의 경우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희영은 빵을 사고 막 나가려는 나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도 나인지 확신이 없었는지 불러서 돌아보면 확실히 아는 체하려 한 것 같았다. 나는 명명의 주체를 찾아 돌아섰다. 낯설게 예쁘고 늘씬하고 우아한 여자가 나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하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희영임을 바라본 순간 나는 마침내, 드디어 그녀가 그녀를 속박하던 굴레 속에서 벗어나 바라던 바대로 사는 강인한 인간이 되었음을 알아차렸다. 녀는 자신의 열등감을 극복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녀 스스로 오점이라 생각했던 외모가 어느 한 부분도 남아 있지 않아서 나는 하마터면 그녀가 희영인 줄 몰라봤을 테지만 희한하게도 희영만의 희영스러움이 전체적으로 남아 있었다. 부분을 고치고 지웠는데 전체는 희영이라니 그 점이 놀라울 뿐이었다.


우리가 겨울 햇빛이 잘 드는 창가에 앉아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희영은 능수능란하게 우리 사이의 어색함을 지웠다.


"여전해서, 예전과 달라진 점이 없어서 바로 너인 줄 알았어."


여전하다는 말을 좋아하지만 희영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 나는 움찔했다. 여전히 별 노력을 안 하고 너는 있는 그대로의 너대로 사는구나라는 탓처럼 들렸다. 분명 희영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는 너의 소식 종종 들었어. 사모님 됐다고."


"만약 다른 동창생이었으면 아는 척 안 했을 거야. 나에 대해 수군거리는 말들,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공격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아. 인간이란 참 그래. 그렇지?"


희영은 말끝마다 나를 그녀와 같은 범주에 넣었다. 나는 수군거리지 않고 공격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믿고 싶은 듯. 커피가 나오자 나는 이 미세한 불편함의 의미를 희미하게 자각하기 시작했다.


나도 뭔가를 끊임없이 극복하고자 하는, 그래서 궁극의 나에게 가닿기를 소원하고 갈망하는 존재라고 희영은 보고 있는 듯했기에 같은 범주로 엮은 것이리라. 나는 이제 그런 삶의 자세를 버렸기에 그 범주가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어지는 마음에 이게 뭐라고 싶어서,인간은 어차피 서로 오해하며 이해한다는 오만한 착각으로 사는데 싶어 자꾸 불편해졌던 것이리라.


나는 우리가 아주 꼬맹이었을 때 찢어진 눈을 하고 있는 희영을 기억했다. 얼굴에 검은 반점은 그녀가 상급반으로 진학할 때마다 따라 커졌다. 더운 여름날 그녀 목 뒤에 완두콩만 한 살덩이 때문에 혹부리 할멈이라는 별명이 따라붙어 머리를 절대 묶지도 자르지도 않던 그녀였다. 나는 태곳적 그녀를 기억하는 골목 친구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다시 만난 첫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