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소꿉친구
삶은 극복의 극복인 희영 _ 2
"파트니스 수업이 끝나면 항상 여기에 와서 크로와상 하나랑 아메리카노 하나를 아침 겸 점심으로 먹어. "
희영이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샐쭉 웃었다. 크로와상을 부스러기 없이 깔끔하게 먹는 희영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그 우아함과 세련된 행동을 위한 수만 시간의 노력을 떠올려보았다.
플라타너스 나무 밑에서 아홉 살 희영은 단팥방을 꺼내 반으로 쪼개서 흰 빵 부분과 팥 부분을 분리했던 것이 떠올랐다. 희영은 나에게 흰 빵으로 팥을 다시 감싸서 먹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엄지손가락 한 마디만큼씩의 분량을 먹으며 이렇게 하면 우아하게 먹을 수 있다고 알려주었던 희영은 그날도 많이 운 얼굴이었지만 나에게 속상하다고, 놀리고 괴롭히는 친구들이 밉다고,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가장 아픈 부분에 대해서 항상 함구하는 법을 아는 사람으로 태어난 듯했다. 극복되지 않은 부분도 티 내지 않는 법을 체득한 사람처럼 살아냈다. 희영은 자신을 어떻게 하면 가장 예쁘게 보일지, 매력적으로 보일지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 자주 고민하고 노력하는 좀 특이한 아이 었다.
나는 희영이 자신을 너무나 사랑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희영을 아는 동창들은 그녀가 열등감 덩어리라서 매일 거울을 보고 몸무게를 재며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려고 애쓰는 거라고 했다.
희영은 수업 시간에도 등을 꼿꼿이 세우고 앉아 눈을 반짝였고, 작은 다이어리에 자신이 바라는 모습과 해야 할 일들을 빼곡히 적고 그대로 행동하려고 애썼다. 친구들은 그런 모습조차 못마땅해했다. 노력하고 계획적인 사람을 아이들은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원하는 대로만 살려고 한다며, 희영의 노력을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이유로 평가절하했다. 아마 그 시절 아이들은 희영이 어떤 모습이었든 자신의 눈으로 재단하고 말을 갖다 붙였을 것이었다.
못난이 희영에게 남자 친구가 생긴 것은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그때 우리들 사이에서 인터넷 소설이 유행했고 그런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가 최고 인기였다. 난데없이 공고생 오빠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등하교하는 것도 멋있어 보였고, 교복 입고 담배 피우는 것만 봐도 설레던 시기였다. 희영은 여고 옆 공고에서 인기가 많은 동급생을 사귀였다. 아이들 말에 따르면 그 남자가 희영을 딱 찍어서 하굣길 골목 어딘가에서 똘마니들과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기다렸다가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아이들 보는 데서 고백했다고 했다.
희영은 공고 애인이 생긴 순간부터 자전거를 타고 500미터쯤 나와 골목 어디에 세워두고 남자 친구 오토바이 뒤에 타고 시내를 활보하며 다녔다. 공부도 잘하고 중학교 언제쯤 서울에서 검은 점을 빼고 와서 부쩍 예뻐진 희영이 공고의 제일 유명한 남자애와 사귀는 것은 어디서나 이슈가 되었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왔을 때 그들의 짧은 연애는 끝이 났고 희영이 겨울방학 동안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러 다녔다는 소문도 돌았다. 남자 친구랑 놀다가 임신을 했는데 낙태를 하기 위해 돈을 빌리러 다녔다는 것이다. 희영의 사정을 들은 친구의 엄마가 돈을 빌려주었는데 희영이 일주일 안에 갚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지 않자 절친이 소문을 내고 다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 소문이 진짜라고 찰떡같이 믿었고 누군가는 희영의 절친으로부터 직접 들었다고 했다.
희영은 고3이어서 그랬던가, 낙태를 해서 그랬던가, 소문이 나서 그랬던가, 친구에게 배신을 당해서 그랬던가, 빠짝 말라 있었고 잘 웃지도 않았다. 그냥 공부만 했다. 그리고 좋은 대학에 입학해 그녀를 둘러싼 무성한 소문을 시골에 남긴 채 떠났다.
나는 텔레비전에서 몇 번 방송 리포트를 하고 있는 희영을 본 적이 있었다. 혼자 라면을 끓여 먹다가 심심해서 튼 저녁시간 정보성 프로그램을 볼 때면 종종 희영을 만날 수 있었다. 희영은 텔레비전에 나올 때마다 얼굴에 빛이 났고 몸은 예뻐졌으며 옷은 선정적이었다. 얼마나 희영이 애 썼을지 안 봐도 안다. 그녀의 노력을 지켜본 타인 1호였으니까. 그 노력에 비해 프로그램 수준은 낮았고, 그녀는 그냥 성형 미인 정도처럼 보였고 분량도 짧았다.
그녀가 다녔던 피부과 의사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즈음에 희영은 더 이상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