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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나 Apr 16. 2022

# 10. 자유롭게 살고 싶어.

득조가연(得肇佳緣):비로소 아름다운 인연을 만났다


# 10. 자유롭게 살고 싶어.  


-미현: 네, 서미현입니다.

-영민: 바빠요? 잠깐 이야기 좀 하고 싶어서.. 여기 미현 씨 회사 근처입니다.

오전 11시 30분. 이 시간에 영민이 무슨 일일까?

미현은 책상 정리를 하고 박 과장에게 갔다.

-미현: 과장님, 잠깐 밖에 나갔다 올게요. 일 있으면 전화 주시고 저 신경 쓰지 말고 식사하러들 가세요.

-박 과장: 네네, 다녀오십시오.

회사 정문에서 전화를 했다.

-미현: 영민 씨 어디예요? 어디로 갈까요?

-영민: 바쁜데 미안해요. 길 건너 초밥집이에요. 주문해 놓고 있을게요.

초밥집? 초밥은 미현이 좋아하는 것 중에 하나이다.




미현은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미현: 여기까지 웬일이에요? 나 초밥 사 주려고 온 거?

-영민: 일단 주문해 놨어요. 미현 씨 초밥 좋아하니까..

미현은 초밥을 다 먹고 나자 영민 씨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미현: 커피는 제가 살게요.

-영민: 저기 미현 씨.. 그젠 말할 기회를 놓쳐서 말 못 했는데 오늘은 해야겠어서 여기까지 왔어요.

-미현: 네?

갑자기 사무적으로 변한 영민의 태도. 순간 미현은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를 감지했다. 영민이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이미 눈치채 버렸던 것이다.

-미현: 안 그래도 나도 그랬는데.. 내가 먼저 말해도 될까요?

영민은 살짝 당황한 듯했다.

-영민: 그래요, 말해봐요.

-미현: 영민 씨도 알겠지만 나 싫증을 잘 내는 편이에요. 긴지 아닌지 판단도 빠른 편이고요. 최근 3개월 동안 우리 즐거웠던 건 사실이니까 영민 씨가 별로 였단 말은 안 할게요. 근데 우린 여기까지 인 거 같아요. 다음 주부턴 늦게까지 일해야 해서 기다리게 하는 것도 그렇고.. 우리 그냥 여기서 정리하는 게 맞을 거 같아요.

미현은 화가 났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영민: 아.. 그랬군요. 사실 나 지난달에 부모님 권유로 선 봤거든요. 부모님도 괜찮다 하시고 나도 나쁘지 않아서. 아직 결정한 건 아니지만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거든요. 미현 씨가 이렇게 쿨한 사람인 걸 빨리 알았다면 마음고생 안 했을 텐데..

뭣이라! 넌 내가 쿨해 보이니!! 아 열 받아.. 미현의 머릿속은 이미 영민의 머리 끄덩이를 잡고 흔들고 발로 밟고 있었다.


-미현: 커피는 다음에 마실래요? 사실 나 빨리 들어가 봐야 돼서..

-영민: 그래요. 다음에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요.

미현과 영민은 초밥집을 나왔고 영민은 미현을 향해 웃어주며 차를 타고는 가버렸다.

젠장할.. 엄밀히 말하면 미현은 차인 것이다. 이제껏 차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차이다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강영민 이 자식!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놈!!

미현은 알코올이 필요했다.

점심시간도 거의 끝나가는데 근무 중 술은 말도 안 되는 것이고. 빨리 퇴근 시간이 오길 기다렸다.



어제 유라와 정미를 만난 터라 다시 나오라 하기 미안했다. 유라는 오늘도 야근이라고 했고. 정호 씨가 애들을 다시 봐줄지 어떨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전화기를 멍하니 보던 미현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태호: 어, 미현아.. 어쩐 일이야?

-미현: 오늘 시간 되냐? 나 술 좀 사주라.

-태호: 왜? 남자랑 잘 안됐어?

아뿔싸. 그러고 보니 남자와 헤어지고 난 후마다 태호를 찾았던 거 같았다.

-미현: 넌 내가 남자랑 헤어져야 널 찾는다고 생각하니?

-태호: 어디서 볼까? 내가 너네 집으로 갈게.. 근데 좀 늦을 수도 있어

-미현: 알았어. 집으로 와. 있다 보자.

미현은 태호가 너무 고마웠다. 대학 이후 쭈욱 연락을 하고 지내는 남자가 태호라니.. 친구도 아닌 연인도 아닌 관계. 뭐라 정리하기 힘든 관계이다.



일이 마치기 무섭게 미현은 집으로 왔다.

강영민! 이 자식이 남기고 간 흔적들을 모조리 처리하고 싶었던 것도 있고 태호와 마실 술과 안주를 준비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침대 시트를 벗기고 이불을 세탁기에 쓸어 넣었다. 깨끗이 지워지라고 세제도 듬뿍 넣었다.

그의 향기까지 없어지라고 섬유유연제도 두배로 넣었다.

청소기를 돌리고 화장실 청소까지 완벽했다.

안주를 대충 준비하고 냉장고를 열었다. 맥주는 시원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소주도 한편에서 미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빨래를 널자 섬유유연제 향기가 집안 가득이다. 산뜻한 향기

미현은 유난히 이 향을 좋아한다. 그 자식의 흔적을 모조리 지운 거 같아 뿌듯했다.

시계는 7시 30분을 향해 가고 있었다. 태호는 아직 오지 않고 있다.

요란한 벨소리.. 깜짝 놀라 전화기를 보니 유라였다.

유라의 전화가 이리 반가울 수가..

-유라: 세화 결혼한다고 연락 왔던데.. 너 연락받았니?

-미현: 세화가 결혼한다고? 그 울트라 돼지가?

-유라: 너 세화 안 본 지 좀 됐구나? 독하게 살 빼더니 반토막 만해졌어.

그랬던가? 저마다 다 자기 짝을 만나 결혼하는구나.. 그래도 난 결혼보단 연애를 즐기는 게 더 좋으니까.

미현은 갑자기 아무 말 않고 가만히 있었다.

-유라: 너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순간 미현은 울컥했다.

-미현: 유라야!! 강영민 그 자식이!!

미현은 점심때 있었던 이야기를 유라에게 털어놓았다.

미현의 다른 모습.. 회사에서와 친구들 앞에서의 미현은 동일 인물로 보기 힘들 정도로 다르다.

자기 자신에게 냉철하고 일에 대해선 한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미현과 투정과 짜증이 많고 수다를 즐기는 미현을 동일 인물로 봐야 한다면, 의아해 할 수도 있겠지만

미현은 보기보다 너그러운 편이다. yes or no가 분명한 건 맞지만 우유부단함도 조금은 있다.



-유라: 뭐 그런 자식이 다 있어? 선도 보고 결혼 준비도 하면서 너랑 만났다는 거야?

-미현: 그렇대. 그 자식이 그러고 나를 만났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유라: 말이 되긴 하다. 너도 예전에 그랬잖아.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미현: 야!!. 넌 위로가 필요한 친구한테 그렇게 말을 해야겠어?

-유라: 털어버려. 돌이킬 수 없는 일이잖아. 너 답지 않게 왜 그래? 그런 거에 연연해하는 너 아니잖아.

힘내라 친구야. 술친구 필요해? 오늘 야간이라 좀 늦을 거 같은데

-미현: 아냐 누구 오기로 했어.

-유라: 넌 태호가 만만하지? 이제 그만 태호 좀 놔줘라

-미현: 내가 뭘? 태호는 그냥 친구야! 뭘 놔주고 말고 하냐!

-유라: 그래 친구지.. 친구랑 입도 맞추고 잠 도자고... 뭐 네가 알아서 하겠지만.. 그만 맘 풀고.

-미현: 하... 그래. 너도 수고해.

미현은 전화를 끊고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8시다. 태호는 아직 소식이 없다.

늦는다더니... 미현은 안주를 챙겨 거실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소주와 맥주를 꺼냈다. 혼자라도 마셔야 했기에 미현은 맥주 캔을 땄다. 티브이를 틀고 개그 채널을 틀었다. 전혀 재미있지 않았다. 주방으로 가 글라스를 가지고 와서는 소주와 맥주를 섞었다.

한 모금 들이킨 벨소리가 들렸다. 인터폰에는 태호의 실루엣이 비쳤다.

문을 열자 태호는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봉투 안에는 맥주와 미현이 즐겨가는 포장마차의 골뱅이 무침도 있었다.

-태호: 포장마차에 사람이 많더라. 기다린다고 조금 늦었어. 먼저 시작했나 보네.

태호는 미현의 뒤를 보며 말했다.

-미현: 들어와.

항상 그래 왔지만 태호는 미현의 이야기를 끝까지 잘 들어주었다.

결혼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한 유일한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자신의 뒤통수를 치게 될 줄이야..

-미현: 나, 아마 벌 받고 있는가 보다. 내가 너한테 잘못한 거 있음 용서해라.

태호는 씩 웃었다.

-태호: 네가 뭘 잘못한 건지 알긴 알고?

-미현: 맞아. 잘 몰라. 나 원래 그렇잖아. 필요할 때만 너 찾고. 나 참 나쁘다 그지?

-태호: 맞아, 너 정말 나빠. 잊을만하면 전화해서 또 두근거리게 하고..

-미현: 넌, 나 보면 아직도 두근거려?

-태호: 그러게.. 아직도 두근 거려. 술 김이 아니고 늘 그랬던 거 같아.

-미현: 거짓말한다.

미현은 맥주를 들이켰다.

-태호: 그래.. 거짓말 일지도 모르겠다..

태호는 미현을 보며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



태호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미현은 소파에 기대어 자고 있었다.

방문을 열어 이불을 젖히고 미현을 앉고 침대에 눕혔다. 건장한 남자와 같이 있음에도 미현은 너무도 편하게 자고 있었다.

태호는 미현의 이마를 만졌다.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 미현을 눈에 담았다. 잊으려고 애쓰고 있는데 벌써 10년이 넘어 버렸다.

중간에 다른 여자들도 만나 봤지만 가슴 한편에는 늘 미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첫사랑. 남자들에게는 절대 잊히지 않는 첫사랑...

이루어지지 않기에 더 기억에 남는 첫사랑이다.

태호는 거실로 가 술병과 캔들을 정리하고 미현의 집을 나왔다.

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또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태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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