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현은 유라의 그다음 말을 듣기도 전에 끊어 버렸다. 유라는 분명 싫다고 할게 뻔했기 때문이다.
미현이 터득한 상대방이 거절 못하게 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미현은 오늘은 못 만날 거 같다는 말을 하기 위해 영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고객이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여자의 목소리..
다시 한번 더 걸어보지만 여자가 대신 받아준다. 미현은 바쁜가 보다 생각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끊음과 동시에 미현의 전화기가 갑자기 몸부림을 친다.
정미였다.
-미현: 어, 정미야..
-정미: 뭐하냐? 오늘 애들 아빠가 봐준다는데 얼굴 좀 보자
-미현: 너 자리 깔아야겠다. 안 그래도 방금 유라한테 전화했었는데 6시 반까지 블루 씨로 와.
-정미: 어머~ 계집애들 나 빼고 놀려고 했어?
-미현: 어머~ 넌 애들 보느라 바쁘잖아.
-정미: 일단 거기서 보자. 옷을 뭘입나~~
정미는 신이 난 모양이다.
늘 아이들에게 치여 살면서도 한 번씩 정호 씨가 애들을 봐주니까 그나마 밤에 나올 수 있다며
정호 씨 보다 좋은 놈 세상 어디에도 없다신다. 어찌나 자랑질을 하는지...
-미현: 나 먼저 퇴근해!!
-공 대리:차장님 수고하셨어요
-미현: 자기들도 빨리 퇴근들 해!! 급한 거 아니니까.
-박 과장: 그래야죠. 내일 뵙겠습니다.
사무실을 나오면서 노래를 흥얼거렸다. 늘 느끼는 거지만 미현은 자신의 뒤통수에도 눈이 달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놓고는 말을 못 하면서 뒤에서 하는 말들은 대부분이 독하다 이다.
철저하게 계산적이고 억척스러운 사람. 남들이 미현을 평가할 때 하는 말이다.
미현은 그 말들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자신이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올 때 그때보다 짜릿할 때가 없다.
이른 시간이라 블루 씨 앞 주차장은 차가 별로 없었다. 차에서 내리자 어디서 본 차가 들어온다.
-미현: 왔어?
-유라: 그래 왔다. 너무 피곤해 오늘은 짧게 가자.
-미현: 얼굴 보니 부은 거 같기도 하네.. 살살 달려 보자.
미현과 유라는 방으로 자리를 잡았다. 유라는 자리에 앉자마자 소파에 들어 눞는다.
술과 안주를 주문하고는 유라에게 한마디 날리는 미현
-미현: 이것아, 일어나!! 여기가 너네 집 안방이야?
-유라: 그래.. 여기가 내 방이었으면 좋겠다.
-미현: 두세 시간만 있다 갈 거니까 정신 차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미가 들어왔다. 잔뜩 멋을 부리고 나온 정미였다.
-미현: 너 어디 가? 뭘 그렇게 꾸미고 나왔어?
-정미: 꾸미긴 뭘 꾸며? 오래간만에 친구들이랑 한잔하는데 아줌마처럼 보일 순 없잖아.
-미현: 여기서 네가 제일 아가씨 같거든.. 그 빨간 주댕이 좀 닦아!
미현은 냅킨을 던졌다.
-유라: 무슨 할 말이 있는 거야?
유라는 지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미현: 할 말은 뭘 그냥 얼굴 좀 보자는 거지..
-정미: 너 그 기획이사랑 잘 돼가고 있는 거야?
-미현: 모르겠다. 요즘 좀 시들시들하긴 해. 어젠 내가 우리 집 말고 자기 집에서 보자고 했더니 알았어도 아니고 생각해보겠다고 하더라. 섭섭한 건 왜인지...
-유라: 너 진짜 영민 씨 마음에 있는 거야? 너 섭섭한 거 별로 안 느끼고 사는 애잖아.
-정미: 그러게 너 영민 씨 이야기할 때 보면 전에 만났던 놈들이랑은 느낌이 좀 달라.
-미현: 그랬나? 글세.. 결혼 까진 생각 안 해봤고.. 잠자리 궁합은 잘 맞는 거 같아. 근데 안기는 거에 너무 집착하는지 늘 안겨만 있어. 내가 숨 참느라고.. 에효.....
-유라: 너 지금 나한테 자랑질하는 거야?
-정미: 그래 그런 건 나랑 얘기해. 유라 2년째 혼자인데 그런 거 잘 모를 거야..
유라는 냅킨을 정미에게 던졌다.
-유라: 네가 더 나빠 알아?
-정미: 그래서.. 더 말해봐..
-유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미현은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미현: 사실 내가 3개월 이상 누굴 만나 보지 못해서 이게 무슨 감정인지는 모르겠는데 영민 씨가 처음이랑은 많이 달라 보이는 건 사실이야. 벌써 권태기 인가 싶기도 하고. 스킨십도 요즘은 예전 같지 않고...
-정미: 나, 집에 갈란다. 지금 고민이 있어서 만나자는 게 아니고 지 자랑질하자고 만날라고 했구먼!!
유라는 하품을 했다. 전날 11시까지 야근한 탓에 잠이 모자란 것도 있지만 미현의 이야기가 듣고 싶지 않은 것도 있었다.
-미현: 아 미안해! 미안하다고!! 됐지?
-정미: 결론은 이제 영민 씨와도 헤어질 때가 됐다는 거잖아.
-미현: 아직 그런 거 생각 안 해봤는데..
-유라: 네가 영민 씨를 많이 좋아하는 거 같긴 하다.
유라와 정미는 평소와는 다른 미현의 사랑이 계속 이어지길 바랬다.
30대 초반이라지만 곧 중반일 테고 지금도 듣고 있는 노처녀란 소리가 썩 좋지 많은 않기 때문이다.
-미현: 너넨 어떨 때 남자가 멋져 보이냐?
-유라: 나 집에 보내고 나서 이야기하면 안 될까?
-정미: 그냥 들어.. 너도 애인 생기면 알아 둬야 되잖아.
-유라: 그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
-미현: 애인이 없어도 남자가 멋져 보일 때가 있잖아. 내 남자가 아니라도 말이야. 연예인의 복근, 팔 근육, 넓은 어깨 크크.. 나는 입맞춤하기 바로 30초 전이 제일 멋져 보여. 입을 맞출지 어떨지 할 듯 말 듯 아직 모르는 순간. 분위기 상으론 입맞춤을 해야 할거 같은데 저 남자가 다가올까? 안 오면 어쩌지? 그거 나무 짜릿하지 않냐?
-정미: 나는 요즘 송승헌이 좋더라. 가슴에 폭 안겨봤으면 원이 없겠다 싶을 정도로... 울 신랑한테선 볼 수 없는 가슴 근육.. 딱딱한 배.. 생각만 해도 두근거린다.. 유라 넌 어때?
-유라: 글세.. 난 일하는 남자? 그냥 일만 하는 남자 말고 셔츠 단추를 두 개정도 풀고 팔을 걷어 올린 상태에서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 당연 그 사람이 리더여야겠지. 탁월한 언변술, 처세술.. 생각만 해도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