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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나 Apr 19. 2022

# 11. 친구란...

득조가연(得肇佳緣):비로소 아름다운 인연을 만났다


# 11. 친구란..


-미현: 아~ 속 쓰려..


시계를 보니 6시였다. 평소 깨어나는 시간에 30분을 더 잤다.


평소 같으면 운동 나갈 시간인데... 미현은 오늘은 운동을 쉬기로 했다. 쓰린 속을 부여잡고 싱크대 서랍을 열었다.

다행히 라면이 세 개가 있었다.


-미현: 젠장 라면이나 끓여먹어야 하다니..


미현은 레인지에 물을 올렸다,

해장국이 먹고 싶었지만 혼자서 뭔 청승인가 싶어 라면으로 속을 달래기로 했다. 한숨을 쉬며 라면 봉지를 뜯을 찰나, 소파 위에 있던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려 댄다.

태호였다


-미현: 어?, 새벽에 웬일이야?

-태호: 늘 일어나는 시간 아냐? 일부러 늦게 전화한다고 한 건데..

-미현: 맞아, 이제 겨우 깼어.

-태호: 너네 집 다와 가는데 잠깐 들를게..

-미현: 지금?

미현은 레인지를 껐다. 혼자 청승스럽게 라면 먹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띵동~


태호였다.

미현은 문을 열었고 태호의 손이 쓰윽 들어오더니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봉투는 따뜻했다.


-미현: 뭐야?

-태호: 너 속 쓰릴 거 아냐? 우리 집 앞 24시 감자탕 집에서 사 왔어.

-미현: 허... 너 오래간만에 착한 일 좀 한다. 안 그래도 속 쓰려서 어떡하지 하고 있었는데..

-태호: 나 들어가도 될까? 나도 속 쓰리긴 마찬가지라..

미현은 태호가 들어올 수 있게 옆으로 비켜섰다.

-미현: 미안.. 들어와. 다 치우고 갔더라. 거실이 깨끗하길래 놀랐어.


태호는 식탁에 감자탕을 올려놓고 뚜껑을 열었다. 반찬과 밥도 들어 있었다.


-미현: 밥 없는 건 어떻게 알았어?

-태호: 어제 보니까 그렇더라. 밥은 해 먹긴 해?

수저를 놓으며 말했다.

최근 들어 영민이 미현의 집에 자주 오다 보니 집에서 해 먹는 날이 많았다.

-미현: 나 집에서 밥 잘해 먹어. 쓸데없는 걱정은 안 해도 돼.


속이 한결 좋아졌다.

이 녀석. 류태호.. 대학교 동창이자 2학년 때 잠깐 사귀었던 녀석. 가족 같은 녀석이었다.

태호가 가고 미현은 서둘러 출근 준비를 했다.


또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3일 후 금요일 저녁..


주말이고 곧 크리스마스이다. 올 크리스마스는 혼자 보내야 할 거 같은 불길함이 다가왔다. 미현은 제발 이게 현실이 아니기를 빌면서도 그래도 친구가 있다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휴대폰이 울린다. 승주였다. 몇 달만에 연락이다. 술 한잔 하자는 전화... 블루 씨로 오라고 하고는 끊었다.

다시 휴대폰이 울린다. 정미였다.


-미현: 어, 정미야..

-정미: 미현아. 뭐해? 나 좀 위로해봐라.

정미는 남편이랑 싸웠다며 집에서 탈출하고 싶다고 했다.


-미현: 준비하고 기다려 그리로 갈게..

미현은 매산동 푸르지오로 차를 몰았다. 퉁퉁 부은 얼굴에 정미가 미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를 타자마자 시작되는 정미의 수다.


-미현: 뭐 때문에 싸웠는데? 요즘 자주 싸우는 거 같다.

-정미: 뭐긴 시부모님 때문이지.. 안 그래도 쪼들리는 생활에 생활비 조금 줄여 드리쟀더니 어찌나 성질을 내는지.. 지가 장남도 아니고 형이 둘이나 있는데 장남 노릇은 지가 다 하려고 한다니까.


미현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적응 안 되는 이야기들이다.

-정미: 너무 효자 남편도 힘들어. 나만 나쁜 며느리 만들잖아. 민호도 곧 학교 들어가는데 지가 더 벌거도 아니고 형님들한테 조금 더 내라고 하던가. 둘째 형님네는 십만 원 보내드린다더라. 십만 원.. 우리는 30이나 보내는데 나참 기가 막혀서.. 넌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블루 씨가 보인다. 미현은 그저 웃어 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주말이라 블루 씨 안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미현은 사장님을 보며 웃어줬고 사장은 창가 쪽으로 자리를 내줬-다.

미현은 전화기를 꺼내 유라의 번호를 눌렀다.


-유라: 여보세요?

-미현: 여기 블루 씨.. 빨리 와라.. 올 때 던힐 알지? 그냥 보루로 사와라.

-유라: 야!!

미현은 유라가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끊었다.


-미현: 아 맞다. 나 승주도 불렀어..


-정미: 승주? 유라도 올 거 아냐?

-미현: 맞아 올 거야. 좀 전에 승주한테 연락 왔길래 이리로 오라고 했어.

-정미: 분위기 애매모호하겠는걸..

-미현: 안 그럴걸.. 승주 아직 유라 좋아하거든.

-정미: 진짜?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미현: 나한테 말했으니까 알지... 어, 저기 오네.. 재도 양반은 아니야..


가게 문을 열고 승주가 들어오고 있었다. 여전히 큰 키에 잘생김이 묻어나는 얼굴이다.

-정미: 오랜만... 더 잘생겨진 거 같다.

승주는 미현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승주: 그러게 오랜만이네. 너 애들은 어떻게 하고 나왔어?


-미현: 남편님이랑 대판 하고 몸만 빠져나오셨단다.

-정미: 그런 건 설명 안 해줘도 돼. 쪽팔리게 넌....

-미현: 넌 결혼하고 나니 행복해? 난 네가 왜 이렇게 안타까운지 모르겠다.

-정미: 나쁜 것. 넌 죽을 때까지 혼자 살 거다.


술과 안주를 주문하고 셋은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몇 분쯤 지나자 유라가 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다.


-미현: 야! 한유라!! 사 오라는 건 사 왔어?

유라는 잠깐 멈칫하다가 다시 들어왔다.


-유라: 나쁜 계집애.. 넌 나보다 담배가 우선이지?


미현은 검은 봉지를 받아 들더니 급하게 포장지를 뜯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깊게 빨더니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유라는 겉옷을 벗고 의자에 앉았다.




-유라: 웬만하면 끊지. 어째 점점 골초가 돼가는 거 같냐?

-미현: 이 좋은걸 왜 끊어? 차라리 죽으라 그래라..

-정미: 유라야~ 너 며칠 전에 봤을 때 보다 좀 빠졌다. 얼굴은 더 좋아졌는데?? 너 화장품 바꿨어?

-유라: 그냥 좀 빠졌어. 넌 애들은 어떡하고 나왔니?

-정미: 신랑한테 맡기고 나왔지.. 어제오늘 대판 했거든.. 될 대로 돼라 하고 그냥 나왔어.

-미현: 그래, 한 번씩 그렇게 해. 그래야 너도 숨 좀 쉬지.. 잘했다.

-정미: 오늘따라 너네가 부럽구나.. 나올 때도 애들 눈치에 남편 눈치에... 이럴 줄 알았음 좀 있다 결혼할걸 싶다니까

-미현: 지랄한다. 애부터 만들고 결혼했으면서...

-정미: 너는 그걸 그렇게 콕 집어줘야 되니?

-유라: 과일안주 말고 마른안주도 시키지 그랬어.. 오늘따라 오징어가 당기네..

승주가 그 말에 피식 웃는다.

-승주: 여전하구나

-유라: 어..


미현은 오늘도 영민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태 쳐 줄걸 깊은 후회가 남는다고 했다.

-정미: 유라 넌 진짜 만나는 사람 없어?

-유라: 어? 글세 요즘 많이 바빠서.. 정신이 없다 보니 그렇게 되네

-정미: 승주는 그 모델 아가씨랑 잘 돼가?

-미현: 에이 걔랑 헤어진 지가 언젠데.. 지금은 그 간호사 언니 만나나?

승주는 그냥 피식 웃는다.

-미현: 언니~~ 여기 3000 하나 더~~ 아침이슬도 두병~~

-유라: 야! 그만 시켜.. 집에 안 갈 거야?

-정미: 이제 시작인데 뭘 말려. 오늘 뽕을 뽑아보자.

정말 끝을 볼 모양이다.


-유라: 너 태호랑 화요일에 뭐했어?

-정미: 태호? 뭐? 너 또 태호 만났어?

-승주: 태호? 설마 류태호?

-정미: 태호가 또 있겠어? 만나서 뭐했어? 빨리 말 안 해?


미현은 친구들의 반응에 당황스러웠지만 궁금한 건 못 참는 미현의 성격이다 보니 친구들도 당연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는 태호와의 일을 이야기했다.


-정미: 뭐 별거 없구먼. 난 또 같이 잤나 했지

-미현: 야!!

-승주: 풉! 아줌마 되면 원래 다 이렇냐? 우리 누나만 봐도 결혼 전엔 상상도 못 했던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더라고..

-정미: 아줌마라고? 나 어디 가면 아가씨 소리 듣거든!!

-승주: 아.. 그래그래, 미안 미안, 크크크크.


정미는 결혼에 대해 일장 연설을 했다. 미혼이라 그런지 셋은 아직 공감가지는 않았지만 결혼이 어떤 거라는 거 정도는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미현: 정미야~~ 나 다 이해한다. 네가 정호 씨랑 왜 싸우는 건지도 알겠고 얼마나 힘든 건지도 알겠어.. 우리 정미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내가 다~~ 이해해 줄게

미현은 취한 모양이다.

정미는 미현의 말에 울기 시작한다. 말 그대로 정미와 미현은 주사를 부리는 중이다.

-승주: 정미 좀 챙겨라. 미현인 내가 데려다줄게.

-유라: 어, 그래.. 너도 조심히 가고..

승주와 미현은 같은 화서동이기에 승주가 미현을 챙겨 데리고 나갔다.




영광 아파트에 다 와갈 때쯤 미현의 전화기가 울렸다.

승주는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받았다.


-승주: 태호냐? 짜식 오랜만이다.

-태호: 누구 승주? 허, 그러게 오랜만이네.. 근데 네가 왜 미현이 전화를 받냐..?

-승주: 그러게나 말이다. 술이 잔뜩 취해서 집이 같은 방향인 내가 어쩔 수 없이 이러고 있다.

-태호: 거기 어디야? 어?? 방금 32XX 너 차 맞지?

-승주: 너 어디냐?

-태호: 니 뒤다.

승주는 차를 세웠고 태호는 차에 탔다.


-태호: 헉 술냄새.. 얼마나 마신 거야?

-승주: 그러게나 말이다. 어떻게 된 게.. 여자들이 술이 더 쌔요. 미현이 만나러 온 거지? 109동 앞에 세워줄 테니까 네가 데려다줘라.

-태호: 그래 알았다.

109동 앞. 태호는 미현을 부축하려다 어깨에 짊어졌다.

승주에게 인사를 하고는 109동 안으로 유유히 들어가는 태호였다.

짜식 힘이 장사 구만. 

승주는 룸미러에 비친 그의모습을 보며 픽 웃고는 잠깐의 한숨을 쉬더니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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