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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나 Apr 21. 2022

# 12. 관계

득조가연(得肇佳緣):비로소 아름다운 인연을 만났다

# 12. 관계



태호는 늘 왔던 것처럼 익숙함으로 비밀 번호를 누르고 미현의 집으로 들어왔다.

잔뜩 취한 미현을 소파에 눕히고 신발을 벗겼다.

윗옷을 벗겨 옷걸이에 걸고 화장실로 가 젖은 수건으로 그녀의 손과 발을 닦았다.

피부가 유독 예민한 미현은 화장을 지우지 않고 자면 트러블이 생기는 터라 태호는 방으로 가 클렌징 티슈로 그녀의 얼굴을 닦았다.

미현의 눈과 입술 뺨을 보면서 태호는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몰려왔다.

그러다 얼굴을 닦던 손을 멈추고 태호는 한숨을 쉬었다.

-태호: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하......

생각할수록 자신이 너무 웃겼다.

애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친구도 아닌 관계.. 두세 달에 한 번씩 만나면서도 아직도 설레는 이 감정들..

자신이 생각해도 이 설명할 수 없는 관계에 정리가 필요했다.

-태호: 그래, 일단 내일... 내일이야....

태호는 미현을 안고 침대에 눕혔다.

변한 것이 없는 미현의 방이다.

태호는 미현의 침대 머리맡에 앉아 미현의 손을 사랑스럽게 만졌다.

이 손을 이제 놓아야 하는데... 늘 생각만 하고는 가슴은 그녀를 놓아주지 못하고 있다.



띵동~~ 띵동~~ 띵동~~

초인종이 쉴 틈 없이 들린다..

미현은 뒤척이다가 결국 일어난다. 인터폰에는 유라의 실루엣이 보였다.

-미현; 하.. 뭐야.. 피곤해 죽겠는데..

미현은 시계를 쳐다봤다. 오후 3시..

많이 자긴 했구나...

카디건을 걸치고 현관문을 향하면서 말했다.

-미현: 그만 좀 누르고 기다려. 가고 있잖아..

미현은 현관문을 열었다.

-유라: 준호 민호 안 들어가? 이모한테 인사해야지..

아이들이 정신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민호, 준호: 이모, 안녕하세요..?

-미현: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유라는 미현을 보고 활짝 웃었다.

-유라: 정미가 너한테 할 말이 많은가 봐.. 나는 집이 엉망진창이라서 가봐야 돼.. 즐거운 시간 보내고.. 아, 그리고 정호 씨한테 전화 좀 해봐. 내 전화를 안 받네. 신랑 화 많이 났나 본데 너도 얼른 풀고..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잖아.. 난 간다.

미현은 황당한 표정으로 유라를 쳐다봤다.

그러나 유라는 이미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고 문은 닫혔다.


-미현: 뭐야? 지금..

-정미: 아... 그게..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하면 안 될까?

정미는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신발들을 정리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미현: 이게 뭐 하는 거야? 무슨 상황인 거니?

-정미: 그게.. 어제.. 미현아....

정미는 미현을 안으며 정호 씨와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미현: 니 신랑처럼 착한 사람 세상 어디 없다더니.. 못 들어오게 현관 비밀번호까지 바꾸시고.. 무슨 부부싸움을 그리 요란스럽게 하니?

-정미: 그러게 말이다. 이 추운 겨울날 비밀번호를 바꿔버리면 나랑 애들은 어디서 어떻게 있으라는 건지..

-미현: 참... 너네 신랑 대단한 사람이네.. 착한 거 맞니?

-정미: 애, 착한 건 맞아.. 화가 나면 좀 성질이 지랄맞아져서 그렇지 보통 땐 얼마나 좋은데..

-미현: 그 와중에 너도 참.. 니 신랑 편들어주고 싶니? 야!! 시끄러워!! 소리 안 줄여!!

미현은 민호 준호에게 소리쳤다.

소리가 줄어들고 아이들은 소파에 앉았다.

유라와는 다른 분위기다.

-정미: 왜 괜히 애들한테 성질 내니? 애들이 무슨 죄야?

-미현: 니 아들들인 게 죄다. 알겠어?

미현은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받지 않는 전화..

-정미: 어디다 전화 거는 거야?

-미현: 어디긴 어디야? 니 착한 신랑이지..

-정미: 안 받을걸.. 화가 좀 많이 났거든.. 비밀번호 바꾼 거 보면 모르겠어? 참.. 충전기 어딨냐? 내 폰이 밥 달라고 하던데..

정미는 가방에서 폰을 꺼내더니 자기 집 마냥 미현의 방으로 들어가 충전기에 폰을 꼽았다.



미현은 유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놈의 계집애는 당최 전화를 받지 않는다.

민호 준호는 조용히 티브이를 보다가 뛰기 시작한다.

정미는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이리저리 만지고 있다.

미현은 이게 제발 현실이 아니길 빌었다.

-미현: 야!! 니 신랑한테 다시 전화해봐!!

-정미: 안 받는다니까.. 괜히 힘 빼지 말고.. 있다가 저녁쯤에 다시 전화해보면 돼!!

-미현: 그럼 밖에 나와서 니 애들 좀 챙겨!!

-정미: 챙길게 뭐가 있냐? 지들끼리 알아서 잘 노는구먼.. 신경 쓰지 말고.. 일루 와서 너도 누워!!

미현은 어이가 없었다.

정신없는 와중에 어떻게 저렇게 태연할 수가 있는 건지..

전화가 울린다.

제발 정호씨여라..



미현은 식탁 위에 올려둔 전화기를 집었다.

승주였다.

-미현: 여보세요...

-승주: 깼네.. 근데 밖이야? 왜 이렇게 시끄럽냐?

-미현: 집이야.. 말해..

-승주: 티브이 소리야? 소리 좀 줄여!

-미현: 나도 줄이고 싶다.. 민호 준호 조용히 안 해!! 소파에 앉아서 티브이 봐!!

찌렁찌렁한 목소리에 승주는 웃었다.

-승주: 말에 아줌마 포스가 느껴진다야. 크크크 정미 애들 와 있나 봐.

-미현: 나 좀 살려주라. 갑자기 쳐들어 와서 내가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어.

-승주: 고생이 많다. 참 태호는 언제 갔냐?

-미현: 태호? 태호를 왜 나한테서 찾아?

-승주: 너 기억 안 나? 너네 집 앞에서 태호 만났었는데.. 너 들쳐 없고 안전히 모셔다 드렸나 어쨌나 궁금해서 걸었구먼... 태호 녀석 힘 좋더구먼... 그리고, 너 술 끊어야겠다.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마시는 거 얼마나 위험한 건데..

-미현: 태호가 데려다주고 갔다고?....

-정미: 태호가 뭐? 뭔 소리야?

-미현: 일단 알았어. 난 잘 들어왔고. 지금은 정신이 하나도 없네.. 나중에 통화하자.

-승주: 어, 그래. 고생해라.

미현은 전화를 끊었다.

 태호가 데려다줬다고?

지난밤 일을 생각해봤지만 블루 씨에서 승주에 손에 이끌려 차에 탄 거까지 밖에 기억에 없었다.

그럼 태호가 옷을 갈아입혔고..

그러고 보니... 화장도 지워져 있었다. 내가 지우고 잤던가?

아... 뭐야? 기억이 안 나...

-정미: 뭔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해?

-미현: 어제 태호가 나 데려다줬다는데...

-정미: 어제 승주가 너 데리고 나갔잖아..

-미현: 집 앞에서 태호 만나서 태호가 나 집까지 업고 왔나 봐..

-정미: 기억 안 나? 뭔 정신에 옷 갈아입고 화장 지우고 했냐?

-미현: 그러게.. 뭔 정신에 옷을 갈아입고 화장까지 지웠을까? 기억이 도무지 안 난다...

-정미: 뭐, 태호가 그리 했으려고... 설마.. 태호가?

미현은 멍하게 정미를 쳐다봤다.

-정미: 진짜? 태호가? 우와 대단해.. 걘 왜 그런다니? 너네 둘 뭐야? 영민 씨랑 헤어지자마자 다시 태호 만나는 거야?

-미현: 뭔 소리야? 그런 거 아니야..

정미는 미현을 쳐다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거실은 애들 덕에 순식간에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정호 씨는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고 정미는 폰게임에 빠져 애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있다.

정신없이 저녁을 먹고 미현은 넋을 놓은 채 식탁에 앉아있었다.

인터폰이 울린다.

누가 찾아온 것도 아니고...

분명 경비실이나 아랫집일 것이다.

미현은 자신이 점점 미쳐가고 있다고 감지했다.

-미현: 이놈의 새끼들!! 조용히 안 하아!! 하.... 네... 말씀하세요...

-아랫집 독거녀: 집에 전쟁 났어요? 지금 저녁 9시가 넘었어요. 낮부터 시끄럽던데 제가 많이 참다가 인터폰 하는 거거든요!!

-미현: 죄송해요, 조카들이 놀러 와서 주의시킬게요.. 오늘만 좀 참아주세요.. 미안해요..

인터폰을 끊고 미현은 정미를 찾았다.

아... 이 모든 게 꿈이길.. 정미는 미현의 침대에서 대자로 뻗어 자고 있었다.

-미현: 야, 니 신랑 뭐 한 대니? 전화 좀 해봐!! 안 일어나?

-정미: 알았어.. 있다 할게.. 어제 잠을 잘 못 자서 정말 피곤하다. 좀만 자고 일어나서 전화해볼게..

꿈쩍도 않는 정미다. 미현은 거실에 이불을 펴고 불을 껐다.

-미현: 민호 준호 빨리 이불속으로 들어 갓!!

민호 준호는 미현의 말에 즉각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미현: 이것아!! 내 침대에서 당장 내려와라~~

방으로 가 침대 밑으로 정미를 밀었고 정미는 화들짝 깨고는 거실에 가서 애들과 같이 잠을 잤다.

이 모든 게 꿈일 거야..

미현은 자고 일어났을 때 이들이 없길.. 현실이 아니고 꿈이길 바라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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