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불꽃같은 사랑
득조가연(得肇佳緣):비로소 아름다운 인연을 만났다
# 13. 불꽃같은 사랑
대학생활 내내 짝사랑하던 정호선배..
정미는 졸업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정호선배에게 고백을 결심했다.
워낙 친 남매처럼 지냈던 터라 주위 사람들은 그들을 친한 선후배 사이로 기억했지 연인으로 기억하지 않았다.
자신이 짝사랑하고 있음을 지난 4년 동안 철저하게 숨겨왔던 정미는 이제 그만 짝사랑을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정미는 정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호: 어, 정미야..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정미: 저, 선배. 오늘 시간 있어?
-정호: 매일 보면서 시간 있냐고 묻는 건 뭐냐? 무슨 일이야?
-정미: 그게.. 일단 오후에 수업 없으니까 점심 먹고 잠깐 봐 선배.
-정호: 그, 그래 알았어..
정호는 정미의 전화가 마음에 걸렸다.
굳이 전화를 하지 않아도 수강 신청을 비슷하게 했기에 마주치고 싶지 않아도 마주치는 사이인데 갑자기 전화라니..
강의가 끝나갈 무렵 정호는 정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정호: 할 말이 뭐냐? 싱겁게 아침부터 전화해서는..
-정미: 지금 말 못 해주지.. 밥 먹고 천천히.. 가자 선배.
-정호: 설마 낮술 하자 뭐 이런 건 아니지?
정호는 정미의 주사를 잘 알고 있기에 또 워낙 술을 좋아하는 친구이기에 걱정스레 물었다.
-정미: 아니거든요!!
정미는 민아에게 나중에 보자는 말을 하고 정호와 강의실을 나갔다.
민아는 정미를 보며 파이팅이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정호: 너 면접 본건 어떻게 됐냐?
-정미: 잘 본거 같은데 아직 결과 안 나왔어. 선배는?
-정호: 나는 이달 말에 발표야. 괜히 떨리고 걱정되고. 다른댄 면접 봤어?
-정미: 다음 주에 또 면접 있어. 졸업할 때가 되니까 걱정이 많아지네.. 선배 뭐 먹을 거야?
-정호: 짜식. 네가 사는 거냐?
-정미: 뭐, 내가 살게.. 뭐 먹고 싶어?
-정호: 짜식 이제 선배 대접을 해주는구나? 그러고 보니 오늘 평소랑 좀 다른 거 같은데??
날이 날이니 만큼 신경 쓰고 온 게 사실이었다.
정호에게 전화를 거는 순간까지 정미는 많이 망설였다.
보통 남자가 고백이라는 걸 하는데.... 난 여자잖아.. 뭐 여자가 하면 어때? 좋아하는데 남자가 먼저, 여자가 먼저 고백하라는 법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정미가 고백을 결심한 이유는 차일 때 차이더라도 자신의 감정이 어떤지는 말해야 후회할 거 같지 않아서였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하지? 어디서 해야 좋을까? 어떻게 시작해야 하지?.... 며칠 동안 수만 가지 생각을 하던 중에 그냥 평소처럼 특별할 것도 없이 말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아침부터 옷 입기에 화장까지 신경 쓰고 나온 정미였다.
점심을 먹고 나자 정호는 커피는 자기가 쏘겠다며 편의점으로 갔다.
-정미: 에이 선배.. 점심 잘 얻어먹었으면 좀 분위기 있는 커피숍으로 가..
-정호: 여기 어때서? 싸고 맛있고..
-정미:................
-정호: 농담이고. 담배 하나만 사고 가자..
-정호는 담배를 사고 서둘러 나왔다.
길을 걸으면서 정호의 손이 정미의 손에 닿았다.
정미는 순간 확 달아올랐다.
심장이 터질 듯 쿵쾅 거렸고 약간 붉어진 얼굴로 정호를 쳐다봤다.
정호는 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커피숍에 들어서자 직원이 창가로 안내했다.
정미는 결심을 굳혔다.
그래 여기서 말하는 거야... 최정미.. 넌 할 수 있어...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두근거렸지만 정미는 애써 침착하게 의자를 빼고 앉았다.
-정호: 뭐 마실래? 나는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정미: 나도 같은 거 마시지 뭐.
-정호: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 주세요
주문을 받으러 온 아르바이트생에게 바로 주문을 했고 점원은 정호를 한번 쳐다보고는 카운터로 갔다.
아,. 어쩌지. 커피가 오면 말해야 하나? 정미는 속으로 타이밍을 계산하고 있었다.
-정호: 뭔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냐? 무슨 할 말이 있길래?
-정미: 아... 저.. 기 선배..
-아르바이트생: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아르바이트생은 다시 정호를 힐끔 쳐다보고 커피를 놓고는 카운터로 갔다.
정호는 큰 키에 쌍꺼풀이 있는 눈, 날렵한 턱선에 누구라도 한 번은 쳐다볼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정호: 뭘 그렇게 뜸 들이냐? 궁금하게...
-정미: 그냥 밥 먹자고.. 내가 오늘은 밥 사주고 싶어서..
정미는 생각과 다른 말이 입에서 나오고 있음을 말이 끝나고서야 알아버렸다.
-정호: 짜식 싱겁게.. 안 그래도 너랑 영화나 볼까 그 생각하고 있었는데 영화 볼 시간은 있어?
정미: 영화? 어.. 그래 보자.
오늘은 고백이 목적이었는데... 생각에도 없던 영화를 보게 생겼다. 오늘은 꼭 말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는데...
정미는 얼음까지 부셔 먹으며 자신의 머리에 꿀밤을 때렸다.
-정호: 웬 자학이야? 내가 때려줘?
-정미: 어? 아.. 아니.. 다 마셨으면 나가자.
정호와 정미는 극장으로 향했다.
고백은 물 건너갔구나 생각을 하고 정미는 다음을 기약했다.
영화는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정호를 신경 쓰느라 영화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호는 상당히 재미있었던 모양인지 영화 이야기를 계속했다.
시간은 어느덧 6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정호: 이왕 나온 김에 저녁까지 먹고 가자. 점심은 네가 샀으니까, 저녁은 내가 쏠게.. 가자.
정호는 정미의 손을 잡고 끌었다.
정미는 순간 당황했다.
그래도 싫지 않았기에 정호의 손을 놓지 않았다.
식당에 다다르자 정호는 그제야 정미의 손을 놓았다.
-정호: 여기 샤부샤부 맛있던데 어때?
-정미: 선배가 쏘는 거니까 나는 괜찮아. 나 양 많은 거 알지? 선배 감당 안될 텐데..
-정호: 네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그러냐? 너랑 밥 한두 번 먹어보는 것도 아니고. 가자.
정미는 3인분의 고기에 칼국수에 죽까지 끝이 보일 때까지 꾸역꾸역 다 먹었다.
-정호: 오늘따라 너 진짜 많이 먹는 거 같다.
-정미: 그렇게 배가 터질 거 같아.
-정호: 커피 마시러 갈래?
-정미: 나 들어갈 자리 없는데..
-정호: 크크 너 그렇게 많이 먹으면 탈 나? 뭐 살도 찔 거고.. 적당히 먹어..
정호는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정미를 살폈다.
정미는 소화가 안되는지 배를 만지고 있었다.
-정호: 괜찮아? 소화제라도 먹을래?
-정미: 아무래도 그래야 될 거 같아. 속이 너무 더부룩하네...
-정호: 그리 먹을 때 알아봤다. 저기 약국 있네. 잠시만 기다려봐.
정호는 약국으로 들어가더니 곧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정미의 손을 잡고 가까이 보이는 편의점으로 갔다.
물을 한병 사고는 약을 뜯었다.
-정호: 먹어. 얼굴색 장난 아니다.
-정미: 그래? 빨리 집에 가서 누워야겠어.
정미는 정호가 건네주는 약을 먹고는 인상을 썼다.
당장이라도 먹었던 음식들이 다시 나올 거 같았지만 정미는 참았다.
-정호: 가자 데려다줄게..
정호는 택시를 탔고 정미는 토하지 않으려고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택시에 내리자마자 정미는 골목 끝으로 뛰었고 이내 구역질을 했다.
정호는 택시비를 계산하고 정미에게 다가갔다
-정호: 괜찮아?
정호는 정미의 등을 두드렸다.
-정미: 냄새나 선배, 저쪽으로 가..
-정호: 너 토하는 거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냐? 비싸게 주고 먹은 고기 다 토하고.. 다음엔 안 사준다.
-정미: 씨~~
정미는 가방에서 물티슈를 꺼내 입을 닦았다.
자신의 상황에 화가 났다.
모처럼 차려입은 옷에, 신경 써서 하고 나온 화장이 아무 의미 없게 돼버린 것도 또,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게 된 것도 화가 났다.
-정호: 왜 괜히 신경질이야!!
정호는 정미의 볼을 꼬집었다.
-정미: 하지 마!! 뭐 하는 거야??
정미는 정호의 손을 뿌리 쳤다.
정호는 다시 정미의 볼을 꼬집으며 웃었고 정미는 그런 정호를 보며 짜증을 냈다.
-정미: 그만하라고 했다!
정미는 몸을 돌려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순간 정호는 정미의 팔을 자신 쪽으로 잡아당겼고 정미의 입에 입을 맞췄다.
정미는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긴 입맞춤.. 정호의 입술은 따뜻하고 부드러웠고 정미를 배려하는 듯한 입맞춤이었다.
정미는 입술을 때며 말했다.
-정미: 나 토했는데.. 괜찮아?
-정호: 그게 뭐 중요한 거야?
-정미: 아니 그게 냄새 나잖........
정호는 다시 정미의 입술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정미: 선배... 지금 이거 뭐야?
-정호: 뭐긴 뭐야? 너 내 거 하자는 거지? 나도 고민 많이 했었는데 오늘 너 보니까 안 되겠더라. 너도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틀린 거 아니지? 영화 보는 내내 나 쳐다보는 너 보면서 생각했어. 오늘은 말해야지라고...
-정미: 그걸 봤어...?
-정호: 그럼 안보냐? 내 얼굴 구멍 날 정도로 그렇게 쳐다보는데... 너 영화가 무슨 내용인지는 아니?
-정미: 아니,.. 기억이... 잘 안 나서...
정호는 정미를 살짝 끌어 앉으며 말했다.
-정호: 너 오늘부터 내 거 하는 거다. 알았지?
-정미: 어? 어.....
정호는 정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는 가볍게 입을 맞추고 돌아갔다.
정미는 돌아가는 정호에게 손을 흔들었다.
자신이 먼저 고백하려 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정호가 고백을 해버린 것이다.
정미는 멍한 상태에서 집으로 들어왔고 방금 있었던 일을 생각하다가 인상을 썼다. 악.. 토하지만 않았어도..
정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날 이후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어디든 손을 잡고 다녔고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을 확인했다.
수업이 끝나면 늘 정호의 집으로 갔고 저녁 10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막차가 끊어지기 아슬아슬할 무렵 정호는 차에 오를 수 있었고 심지어는 막차를 놓쳐 집에까지 몇 시간을 걸어서도 갔다.
둘은 서로를 갈망했고 뜨겁게 원했다.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불타올랐다.